(Photograph of Astyanax mexicanus, surface form with eyes (top) and cave form without eyes (bottom) swimming together. Credit: Daniel Castranova, NICHD/NIH)
멕시칸 장님 동굴물고기 (blind cavefish (Astyanax mexicanus)) 이름처럼 동굴에 사는 눈이 퇴화한 물고기입니다. 눈이라는 상당히 비용이 많이들어가는 장기를 없애므로써 동굴 환경에 적응한 것이죠. 있어도 무방할 것 같지만, 동굴 환경에서는 눈이 없는 쪽이 에너지 효율 면에서 좀 더 뛰어나므로 생존의 기회가 좀 더 높을 수 밖에 없고 결국 1%차이라도 매 세대 당 생존율에서 차이가 나면 수천년 후에는 모든 개체에서 눈이 퇴화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그다지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지만, 놀라운 점은 그 다음입니다. 과학자들은 멕시칸 장님 동굴물고기와 그 근연 관계에 있는 민물고기의 유전자를 조사하고 사실은 거의 차이가 없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이 둘은 이종 교배가 가능한 수준으로 외형상의 큰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완전히 종분화가 일어난 것도 아닙니다. 가장 놀라운 부분은 장님 물고기도 눈을 만드는 유전자를 모두 가지고 있으며 여기에는 별로 큰 돌연변이도 없다는 점입니다.
미 국립 의료원의 브란트 웨인스타인 박사(Brant M. Weinstein, Ph.D., senior investigator at NIH's Eunice Kennedy Shriver National Institute of Child Health and Human Development (NICHD))를 비롯한 연구팀은 이 장님 물고기의 비밀이 바로 후생유전학 (epigenetics)적 변화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밝혀냈습니다. 즉 DNA 자체에는 변이가 없지만, DNA 메틸화를 통해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표현형이 달라지는 방식입니다.
멕시칸 장님 동굴고기는 눈을 만드는데 필요한 광범위한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해 장님이 되는데 이 과정은 발생 과정에서 수정 후 수일 간 진행된다고 합니다. 흥미롭게도 이 유전자 가운데 26개는 인간에서도 발견되며 인간의 눈의 유전적 이상에도 연관이 있습니다. 어쩌면 일부 눈 질환이 비슷한 기전을 공유할지도 모릅니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멕시칸 장님 동굴고기에서 메틸화가 많이 된 DNMT3B 유전자를 다른 종의 물고기인 제브라피쉬에서 돌연변이를 일으켰더니 더 큰 눈을 지닌 물고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유전자가 눈의 크기와 활성을 조절하는 데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 결과입니다.
후생유전학은 DNA 염기 서열 이외에도 생물 진화를 촉진하는 다른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습니다. 최근 이에 대한 이해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과학자들은 생물의 진화와 표현형의 변화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고
Aniket V. Gore et al, An epigenetic mechanism for cavefish eye degeneration, Nature Ecology & Evolution (2018). DOI: 10.1038/s41559-018-05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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