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oxoplasma protein GRA24 (long, light blue) binds very tightly to two copies of p38α, the human protein that triggers our inflammatory response. Credit: Matthew Bowler/EMBL)
톡소포자충(톡포플라즈마 곤디)은 가장 성공한 기생충 가운데 하나입니다. 유럽 국가에서는 전체 인구의 1/3이 감염되었다는 보고가 있고 국내에서도 전체 인구의 5%에서 항체를 발견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면서도 대부분 아무 증상이나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것도 사실 놀라운 일이죠.
톡소포자충에서 놀라운 부분은 숙주의 정신을 조정하는 것과 더불어 바로 면역 억제입니다. 톡소포자충이 체내에 들어오면 당연히 면역 반응이 일어나 이를 제거하려 들지만, 이 면역 반응은 금방 감소할 뿐 아니라 톡소포자충이 낭포 (cyst)를 형성하고 그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결국 톡소포자충에 감염되면 오랜 시간 체내에 기생충이 생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인체의 면역 시스템을 생각하면 좀 이상한 일입니다.
유럽 분자 생물학 연구소 (European Molecular Biology Laboratory)의 매튜 보울러 (Matthew Bowler)와 그의 동료들은 기생충 감염 면역에 관여하는 단백질인 p38α 경로를 연구했습니다. 이 단백질은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여러 단계 가운데 하나로 기생충 감염시 세포핵에 들어가 전체적인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톡소포자충은 GRA24이라는 단백질을 분비해서 p38α에 매우 단단히 결합합니다. (위의 개념도) 따라서 결과적으로 면역 반응을 억제하게 되는 것이죠. 물론 인체의 면역 반응은 매우 복잡해서 한 가지 경로를 막는다고 모든 면역 시스템이 마비되지 않습니다. 기생충 입장에서는 숙주의 모든 면역 반응이 정지되면 숙주도 감염으로 죽게 되므로 적당한 선에서 억제하는 셈이죠.
단 면역 기능이 떨어진 환자나 인체의 면역이 감소되는 정상적인 상황 - 예를 들어 임신 - 에서는 이것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아무튼 톡소포자충이 면역 시스템을 콘트롤 하는 기전 중 하나가 밝혀지므로써 앞으로 다양한 응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면역 기능이 약해서가 아니라 면역 기능이 엉뚱하게 작동해서 생기는 질병이 의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자가 면역 질환은 더 이상 희귀질환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질병입니다.
톡소포자충의 면역 억제 기전을 알아내면 안전하게 문제가 되는 면역 반응만 억제하고 지나친 면역 억제로 인한 부작용은 없는 약물을 개발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기생충이라고 하면 흔히 질병을 일으키는 나쁜 존재로 인식되고 있고 톡소포자충 역시 예외는 아니겠지만, 어쩌면 이 기생충에 질병 치료의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 모릅니다.
참고
Erika Pellegrini et al. Structural Basis for the Subversion of MAP Kinase Signaling by an Intrinsically Disordered Parasite Secreted Agonist, Structure (2016). DOI: 10.1016/j.str.2016.1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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