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요리가 인간을 만들었다?


 인류 진화에서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은 치아가 작아지고 씹는 힘이 감소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촌인 고릴라나 침팬지와 비교하면 이 점은 두드러진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사람과에 속하는 멸종된 호미닌 가운데는 아주 크고 튼튼한 턱을 진화시켜 단단한 식물과 씨앗을 먹는데 특화된 것들도 존재하지만, 호모 에렉투스를 포함 호모 속의 호미닌들은 작은 턱과 치아를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사실 사람과 다른 대형 영장류를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인간이 호리호리한 체격에 작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사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침팬지나 고릴라는 음식을 먹는데 하루 중 상당 시간을 보내며 살고 있습니다. 초식 동물은 거의 깨어있는 시간 내내 풀을 씹거나 혹은 다시 한 번 더 되새김을 하는 데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인간은 먹는데 들이는 시간을 아주 짧게 할 수 있습니다. 비결은 음식을 그대로 먹지 않고 가공해서 먹기 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인류가 불과 도구를 사용한 것은 이미 수백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불을 이용해 음식을 먹기 편하게 만들고 도구를 이용해 잘게 나눠서 힘들게 물어 뜯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식사 시간이 아주 짧아도 되는 것이죠. 물론 먹기가 매우 편해진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덕분에 인간은 몸집에 비해 비교적 작은 입과 치아를 가지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버드 대학의 다니엘 리버만 교수(Daniel Lieberman, the Edwin M. Lerner II Professor of Biological Sciences)와 케이트 징크(Katie Zink)는 음식을 조리 하는 것(processing food)이 얼마나 음식을 섭취하는데 에너지를 덜 소모하는지 연구했습니다.
 자원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그냥 큰 날고기 덩어리보다 단순히 날고기를 잘라서 작은 조각으로 만드는 것 만으로도 20% 정도의 상당한 에너지 절약이 이뤄지는 점이 확인되었습니다. 쉽게 생각해서 고기를 굽지 않더라도 잘게 잘라서 육회처럼 먹는 것과 아예 덩어리를 씹어서 먹는 것은 하늘과 땅차이입니다.
 만약에 아무 처리도 하지 않고 먹는 경우 인간의 치아 구조 자체가 날고기를 효과적으로 먹지 못하게 되어 있어 먹을 수는 있다하더라도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게 만듭니다. 이는 한정된 먹이로 살아야 하는 야생 상태에서 생존을 가르는 문제입니다.
 결국 인류의 오랜 조상은 음식을 도구와 불로 요리를 해먹는 방법을 아주 일찍부터 개발했고 덕분에 인간은 '먹는데' 드는 에너지를 최소화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치아와 턱 구조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소화 기관에도 영향을 줘서 상대적으로 짧은 소화기관을 가지고도 효과적인 음식 섭취를 가능하게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남는 에너지와 자원의 상당 부분은 바로 거대한 뇌를 지탱하는 데 투입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더 좋은 손과 뇌는 음식을 더 먹기 편하게 요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에는 그것이 너무 과도해져서 높은 열량을 가진 음식을 대량으로 소비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아무튼 이는 인류 진화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을 것입니다.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음식을 다양하게 요리해 먹는 것은 인간의 특징이지만, 바로 이 특징이 우리 인간을 지금처럼 진화시킨 원동력이라는 사실 역시 흥미롭습니다.
 참고
 Impact of meat and Lower Paleolithic food processing techniques on chewing in humans,nature.com/articles/doi:10.1038/nature16990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9000년 전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다.

( The final reconstruction. Credit: Oscar Nilsson )  그리스 아테나 대학과 스웨덴 연구자들이 1993년 발견된 선사 시대 소녀의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유골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역의 테오페트라 동굴 ( Theopetra Cave )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9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유골의 주인공은 15-18세 사이의 소녀로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괴혈병, 빈혈, 관절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았던 시기는 유럽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이 초기 농경으로 이전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을 것이며 평균 수명 역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아무튼 문명의 새벽에 해당하는 시점에 살았기 때문에 이 소녀는 Dawn (그리스어로는  Avgi)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골에 대한 상세한 스캔과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서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모습은.... 당시의 거친 환경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긴 턱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 그랬듯이 질긴 먹이를 오래 씹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하고 억센 10대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억세보이는 주인공이라도 당시에는 전염병이나 혹은 기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평균 수명은 길지 못했겠죠. 외모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의 거친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해 흥미롭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18-01-te...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