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공룡은 파충류의 일부로 여겨졌기 때문에 이들이 차가운 피를 지닌 변온 동물 (ectotherms) 일 것이라는 가설에 추호의 의심조차 품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20 세기 후반부터 일부 수각룡 공룡과 조류의 유사성이 발견되고 최소한 일부 공룡들은 항온동물 (endotherms) 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발견되면서 공룡에 대한 인식은 극적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모든 공룡들이 쥐라기 공원에서 나온 것처럼 이제는 따뜻한 피가 흐르는 항온 동물일까요 ? 뉴멕시코 대학 (University of New Mexico) 의 연구자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뉴멕시코 대학의 존 그래디 (John Grady, a graduate student at UNM) 와 그의 동료들은 대다수의 공룡들이 아마도 중온 동물 (mesothermic) 이었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았습니다. 사실 현재 지구상에 있는 대부분의 동물은 항온동물이거나 변온동물이지만 알을 낳는 오스트레일리아 가시 두더지 (echidna : 원시적인 단공류 포유류로 알을 낳는 종류) 나 백상아리 (great white sharks) 는 그 중간쯤에 있는 중온 동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이들은 포유류나 조류처럼 체온이 아주 일정하게 유지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는 체온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동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연구자들은 공룡이 여기에 속한다고 알 수 있었던 것일까요.
사실 공룡이 변온 동물인지 항온 동물인지 아니면 아예 그 중간쯤에 속하는 동물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있었으며 현재까지도 완전히 결론이 나지 않은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디와 그의 동료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공룡의 자라는 속도를 연구했습니다. 동물이 자라는 속도는 에너지 사용량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많은 먹이를 섭취하고 대사량이 많은 동물은 빨리 자라게 될 것이고 반대로 먹이를 적게 섭취하고 대사량이 적은 동물은 느리게 자랄 것입니다. 물론 인간 같은 예외는 존재하지만 대개는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공룡을 비롯해서 고생물학자들이 구축해놓은 공룡의 성장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해 이를 현대의 동물들과 비교했습니다. 연구팀의 일원인 에바 데트웨일러-로빈슨 (Eva Dettweiler-Robinson) 에 의하면 이 작업은 무려 3 만줄이 넘는 데이터 (Collecting more than 30,000 rows of data) 를 분석하는 엄청난 작업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공룡 21 종과 현생 동물 360 종의 성장률을 분석했는데 공룡처럼 멸종된 동물의 경우 뼈 화석에 나이테 처럼 존재하는 성장선을 참고 했습니다.
(현생, 그리고 멸종한 동물들의 성장 속도 및 항온성 Growth rates across an evolutionary tree. Dinosaurs growth rates fall in between warm blooded mammals and birds ('endotherms') in red, and cold-blooded fish and reptiles ('ectotherms') in blue. They are closest to living mesotherms. Credit: John Grady. )
(Energy use in dinosaurs and other vertebrates. Credit: John Grady)
그 결과 대다수의 공룡들은 실제로는 중온 동물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위의 그래프 참조) 연구 결과에 의하면 깃털 공룡들과 초기의 원시적인 조류들은 후손인 현생 조류에 비해서 자라는 속도가 더 느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다수의 공룡들은 사실 악어보다는 훨씬 빨리 자랐지만 현재의 조류와 포유류보다는 느리게 자란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연구팀은 이와 같은 중온성이 어쩌면 공룡의 성공의 비결이었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연구팀의 지도 교수인 펠리사 스미스 (Professor and PiBBs Director Felisa Smith from the University of New Mexico) 는 만약 사자가 T-rex 만큼 거대했다면 에너지 대사량을 충족시킬 수 있는 먹이를 구하기 매우 어려웠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따라서 엄청난 덩치를 가지는 반면 완전한 항온성을 진화시키지 않은 것은 적절한 전략이었습니다. 덩치 덕분에 어느 정도 온도를 유지하기 쉬웠을 것이기 때문이죠.
반면 공룡이 진짜 중온 동물이라면 파충류보다는 훨씬 대사량이 높기 때문에 이들과의 경쟁에서 생태학적 우위를 차지하는 데 유리했을 것으로 연구팀은 보고 있습니다. 즉 적절한 중용을 선택한 것이 공룡이 중생대에 번성할 수 있는 비결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이론은 일부 소형 수각류 공룡이 어쩌면 완전한 항온성을 획득한 동물이었다는 주장과도 배치되지 않습니다.
사실 이전에도 공룡이 불완전 항온 동물이라거나 큰 몸집을 이용한 관성 항온 동물 (즉 큰 몸집 덕에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라는 주장들이 있어왔습니다. 그러면 거대한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먹어야 하는 문제와 거대한 몸의 체온을 적당하게 유지하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수십 톤짜리 공룡이 도마뱀처럼 햇빛을 받아서 몸의 체온을 올린다는 것은 다소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 반대로 체온을 떨어뜨리는 것도 매우 어려운 문제)
다만 공룡이 따뜻한 동물인지 아닌지는 진짜 쥐라기 공원이라도 짓지 않는 이상 직접 확인을 해볼 길이 없기 때문에 모든 주장들은 어느 정도 가정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연구 역시 현생 동물의 성장률은 직접 측정했지만 공룡은 화석에 의한 간접 증거로 대체했죠. 따라서 이 연구가 오랜 논쟁 거리 (공룡은 온혈 vs 냉혈 동물, 아니면 그 중간) 를 완전히 종식시킬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룡에 대한 또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이 연구는 사이언스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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