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과에 속하는 동물들 가운데는 크기와 형태는 비슷한 반면 얼굴 생김새는 매우 극단적으로 다양한 종류들이 많습니다. 특히 극단적으로 큰 코를 가지고 있다든지 아니면 형형 색색의 독특한 털과 생김새를 가지고 있는 종들이 존재합니다. 이와 같은 다양하고 화려한 얼굴을 가지는 중요한 원인은 짝짓기에 있다는 것이 흔한 가설인데 여기에 더해서 실제로 일부 구세계 원숭이들은 이종간 교배 (interbreeding) 를 막기 위해 각 종마다 알아볼 수 있는 독특한 얼굴 모양을 하게 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종간의 교배는 종의 정의를 감안해 보면 사실 쉽게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사실 종 (species) 의 구별이라는 것 역시 어느 정도는 임의적인 것이어서 아종으로 구별할 지 독립된 종으로 구별할 지 논란이 있는 종들이 존재하며 심지어는 의심의 여지없이 별개의 종이었는데 실제로는 둘 사이의 교배가 가능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종의 분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실제 생식 가능한 2세를 낳기 어려울 만큼 완전히 분리가 되기 전에도 두 종 사이의 명확한 차이가 나타나기 때문에 이를 우리가 다른 종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사자와 호랑이를 같은 종으로 인식하지는 않지만 두 종 사이의 교배가 가능하고 다시 그 잡종 사이에도 교배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북극곰과 갈색곰 역시 자연 상태에서 상호 이종 교배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최근 기후 변화와 더불어 두 종간의 서식 지역이 격리되지 않고 겹치기 시작하면서 자연 상태에서의 교배종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또 오래된 일이지만 현생 인류와 호모 네안데르탈시스 역시 이종 교배가 가능했죠. (이런 사례들은 아래 링크 참조)
따라서 가까운 종의 원숭이들 끼리 이종 교배가 가능하다는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뉴욕 대학과 엑스터 대학 ( New York University and the University of Exeter) 의 연구자들은 지리적으로 같은 지역에서 사는 서로 근연종인 원숭이들이 어떻게 이런 이종 교배를 피할 수 있는지 궁금해 했습니다. 같은 지역에 사는 근연종이라도 먹이나 생태에 따라서 사실 종분리가 일어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이종 교배의 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다른 원숭이에게 같은 종인지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니까요.
물론 이종 교배의 결과로 태어나는 잡종이 더 좋은 형질을 가지는 경우들도 존재하지만 어느 정도 종 분리가 일어난 상태에서는 이렇게 태어난 2 세대들은 대개 생식력이 없거나 떨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자손을 퍼트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생명체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를 회피하는 것은 진화적으로 매우 타당한 전략입니다.
뉴욕 대학의 인류학 연구소의 제임스 하이함 교수 (James Higham, an assistant professor in NYU’s Department of Anthropology) 는 "우리의 연구는 이들이 시각적인 신호에 의해 종을 구별하는데 도움을 받는다는 증거를 제시한다 (Our findings offer evidence for the use of visual signals to help ensure species recognition)" 고 언급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들의 아이디어는 오래전에도 제시된 바 있는 가설이었습니다.
(일부 원숭이들이 다양한 외형을 가진 이유는 이종 교배를 막기 위해서라는 주장이 제시되었습니다. 사진은 같은 속에 속하는 두종의 긴꼬리 원숭이. Guenon monkeys have undergone a remarkable evolution in facial appearance as a way of avoiding interbreeding with closely related and geographically proximate species, researchers from NYU and the University of Exeter have found. Shown here are two species of guenon (top Cercopithecus wolfi and bottom C. ascanius).)
1980 년대 옥스퍼드 대학의 동물학자였던 조나단 킹돈 (Jonathan Kingdon) 역시 자연 상태에서 긴꼬리 원숭이의 관찰을 통해 같은 가설을 생각한 바 있었지만 이를 입증할 구체적인 증거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연구팀은 무려 18 개월에 걸쳐 특수 카메라 촬영을 통해 1400 여장의 사진을 구했고 이를 서식지와 종에 따라 분류한 끝에 이 가설을 입증하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사진과 종, 서식지등을 분석한 결과 연구팀은 비슷한 종이 많이 분포하는 지역에 사는 긴꼬리 원숭이들이 얼굴을 포함한 외형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는 알록 달록한 다양한 외모가 서로 다른 종을 구분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가설을 지지하는 결과였습니다. 독특한 외모를 가진 원숭이 들이 아무 목적 없이 그런 외형을 한 것이 아니라 상당히 목적에 부합하게 외형을 가지게 된 것은 자연 선택에 의한 당연한 결과로 보입니다. 흥미로운 이야기긴 한데 앞으로 더 연구는 필요해 보입니다.
이 연구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실렸습니다.
참고
Journal Reference:
- William L. Allen, Martin Stevens, James P. Higham. Character displacement of Cercopithecini primate visual signals. Nature Communications, 2014; 5 DOI:10.1038/ncomms5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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