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브라질 월드컵의 그림자


 2014 년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다른 월드컵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장면들이 연출되었습니다. 그것은 월드컵 개최에 항의하는 브라질 국민들을 향해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는 장면입니다. 브라질 주요 도시에서 엄청난 수의 시위대가 쏟아져 나왔고 정부는 공권력을 동원해 이를 저지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7 년 브라질이 월드컵 개최지로 결정되었을 때의 환호성을 생각하면 정말 생각하기 어려운 일일 뿐 아니라 사실 일반적인 시각에서도 상상하기 쉽지 않은 일입니다. 



(Protests during the World Fights against the Cup Day at Avenida Presidente Vargas, downtown Rio de Janeiro.  Fernando Frazao/Agencia Brasil  CC BY 3.0)



(돌을 던지는 시위대와 최루탄을 쏘면서 전진하는 경찰들의 모습이 어딘지 우리의 과거를 생각나게 만드는 장면)


 이와 같은 브라질 민중들의 불만에는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브라질의 빈부 격차 수준은 비록 지난 10 여년간 과거보다 감소했다곤 하지만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심각합니다. 국민의 대다수는 여전히 빈곤한 반면 일부 자산가들은 지난 10 여년간 경제 성장으로 인해서 더 부자가 되었습니다. OECD 통계에 의하면 브라질 상위 10% 의 소득은 하위 10% 의 50 배 이상으로 독일, 스웨덴, 덴마크 같은 유럽 선진국의 5 배나 한국, 일본, 이탈리아, 영국등의 10 배 보다 훨씬 높은 빈부 격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는 요인은 인플레이션입니다. 


 브라질 정부는 월드컵 및 리우데자네이루 하계 올림픽 개최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면서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는데다 경기장과 기반 시설을 지으면서 부동산 가격이 치솟아 돈없는 서민들은 갑작스럽게 오른 월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길가로 쫓겨나는 실정입니다. 수많은 서민들이 대도시 외곽으로 쫓겨났고 일부 빈민들은 월드컵 개막 1 달전부터 상파울루 주 경기자에서 3 km 떨어진 지점에 불법 텐트촌을 건설했는데 이는 곧 4000 가구로 늘어났다고 합니다. 


 '집 없는 노동자 운동'(MTST) 같은 빈민 단체들은 상파울루 시 동부 지역에 2천채의 서민 주택을 지어달라는 요구를 하면서 극렬한 월드컵 반대 시위를 하다가 결국 정부가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하자 시위를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브라질 연방정부에 의하면 브라질이 이번 월드컵을 준비하는데 사용한 돈은 258 억 헤알 (약 11.7 조원) 규모입니다. 이는 지난 2010 남아공 월드컵 대비 3 배 정도 되는 돈이지만 GDP 가 2 조 달러가 넘는 브라질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꼭 무리하다고만 볼 수는 없는 규모입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실제 투입된 돈이 보다 훨씬 많으며 그나마 제대로 준비조차 하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반대파들이 지적하는 문제는 대다수 브라질 국민들이 아직도 불충분한 교육과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돈을 월드컵에 지불했다는 점입니다. 이 돈을 시급한 교육과 보건 부분에 투자해야 한다는 시위대의 요구가 현재 브라질의 상황에서는 절대 무리한 요구라고만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브라질의 이런 구조적인 문제에 더불어 인플레 압력은 사정을 더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현재처럼 부동산과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는 상황에서는 인플레 압력도 아주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2002 년 이후 브라질의 인플레이션은 


2002  12.53%
2003   9.30%
2004  7.60%
2005  5.69%
2006  3.14%
2007  4.46%
2008  5.91%
2009  4.31%
2010  5.90%
2011  6.50%
2012  5.84%
2013   5.91%

 에 달했는데 2014 년에는 6.5% 도 넘어서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미 브라질 중앙은행은 금리를 11% 까지 끌어올린 상태입니다. 이렇듯 주택 임대료 (일부 지역에서는 거의 2배로 올랐다고 함) 의 급등은 주택을 가진 자산가들에게는 좋은 소식이지만 매달 월세를 내고 사는 서민들에게는 비극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일반 소비자 물가도 폭등해 현지에서는 높은 물가로 인해 많은 서민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빅맥 한개가 미국에서 4.62 달러인 반면 브라질에서는 무려 6.7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만약 감자튀김과 콜라까지 같이 주문할 경우 그 가격은 8.9 달러에 이른다고 하네요. 대다수 브라질 서민들의 소득을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가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런 인플레는 고정된 낮은 수입으로 살아가는 서민들을 옥죄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의 CNBC 가 한 연구기관 자료를 인용해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2013 년 브라질의 백만 장자 수는 19 만 2000 명이었으나 5 년후인 2018 년에는 22% 가 증가한 23 만 4000 명에 이르며 이들의 자산 총액도 9660 억 달러에서 1조 3000 억 달러로 증가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이들의 자산 증식을 돕는 이슈는 바로 부동산의 성장으로 월드컵과 올림픽 특수가 이들의 자산을 불리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브라질은 사상 유래없는 최루탄 월드컵을 치루고 있습니다. 룰라 전 대통령의 인상적인 개혁도 사실 브라질의 근본적인 문제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셈입니다. 특히 고삐가 풀린듯이 올라가는 물가는 브라질이 월드컵과 올림픽을 계기로 선진국 반열에 드는게 아니라 다시 과거로 회귀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키우고 있습니다.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브라질 정치 지도자들이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특히 물가) 2016 년 올림픽도 비슷하게 최루탄속에서 치뤄지지 않을지 우려됩니다. 


 참고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잘 쓰지도 않을 방법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아무래도 효율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생대에 박쥐가 등장하면서 플로팔랑곱

9000년 전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다.

( The final reconstruction. Credit: Oscar Nilsson )  그리스 아테나 대학과 스웨덴 연구자들이 1993년 발견된 선사 시대 소녀의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유골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역의 테오페트라 동굴 ( Theopetra Cave )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9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유골의 주인공은 15-18세 사이의 소녀로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괴혈병, 빈혈, 관절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았던 시기는 유럽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이 초기 농경으로 이전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을 것이며 평균 수명 역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아무튼 문명의 새벽에 해당하는 시점에 살았기 때문에 이 소녀는 Dawn (그리스어로는  Avgi)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골에 대한 상세한 스캔과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서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모습은.... 당시의 거친 환경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긴 턱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 그랬듯이 질긴 먹이를 오래 씹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하고 억센 10대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억세보이는 주인공이라도 당시에는 전염병이나 혹은 기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평균 수명은 길지 못했겠죠. 외모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의 거친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해 흥미롭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18-01-teenage-girl-years-reconstructed.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