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부시 행정부 당시 이뤄진 이라크 침공은 구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중동 질서를 태동시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당시 미국이 원했던 것은 막대한 석유 자원을 확보한 이라크에 미국에 우호적인 정권을 수립하고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점차로 일이 엉뚱한 방향으로 발전해서 오랬동안 후세인 정권의 철권 통치에 억눌려 있던 종파간, 인종간 갈등이 폭발하는 양상으로 발전했습니다. 결국 이 지역의 오랜 민족, 종파 갈등이 폭발하면서 2014 년에 시리아 - 이라크 지역은 거의 내전 상태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이 지역에서 최근 전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단체는 수니파 무장세력인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 (Islamic State in Iraq and the Levant, ISIL)' 입니다. 이 단체는 다른 표현으로는 ISIS (Islamic State in Iraq and Syria) 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아랍어로는 الدولة الاسلامية في العراق والشام (ad-Dawlat al-Islāmiyya fī’l-‘Irāq wa’sh-Shām) 라고 표기합니다.
(ISIL 이 2014 년 장악한 부위, 단 현재 세력권이 급격하게 변하과 있어 한 시점의 대략적인 세력도임을 감안해야 함. 대충 시리아와 이라크에 걸쳐진 세력권을 가지고 있음
ISIL 의 탄생은 대략 10 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수니파 원리주의자들이 세운 유일신과 지하드 (Jama'at al-Tawhid wal-Jihad, "The Organization of Monotheism and Jihad" (JTJ)) 라는 명칭으로 시작된 무장단체가 몇차례의 이름 변경과 리더들의 변경 (대부분 죽거나 체포되었기 때문에) 거쳐 현재의 ISIL 이 되었다고 합니다. 다만 이 과정은 매우 복잡한 역사를 거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2004 년 ISIL 의 전신에 해당되는 단체의 리더인 아부 무사드 알 - 자르카위 (Abu Musab al-Zarqawiأبومصعب الزرقاوي) 는 알 카에다의 오사마 빈 라덴에게 바이야 (Bay'ah بَيْعَة) 를 맹세했는데 이는 이슬람 세계에서의 충성 맹세라고 합니다. 이후 이 단체는 이름을 두강을 가진 국가 (즉 이라크) 의 지하드 조직 본부 (Tanzim Qaidat al-Jihad fi Bilad al-Rafidayn, "The Organization of Jihad's Base in the Country of the Two Rivers" (TQJBR)) 로 변경하는데 이 명칭 보다는 이라크 알 카에다 (al-Qaeda in Iraq, AQI) 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ISIL 의 전신에 해당되는 조직을 이끌었던 알 자르카위. 39 세를 일기로 폭사함 )
알 - 자르카위는 2006 년 6월 7일 F-16C 전투기에서 발사한 500 파운드 유도 폭탄에 운명을 달리하지만 이라크 알 카에다와 비슷한 이슬람 저항 단체들은 서로 합병해서 더 큰 단체로 다시 태어나게 되며 2006 년 10 월에는 몇몇 이라크 부족들과 힘을 합쳐 '이라크 이슬람 국가' (Dawlat al-'Iraq al-Islamiyya, "Islamic State of Iraq" (ISI)) 라는 새로운 무장 단체를 설립하게 됩니다. 이는 ISIL 의 보다 분명한 전신 조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2009 년 155 명이 죽고 721 명이 다친 바그다드 폭탄 테러를 비롯해 각종 테러 활동을 벌이면서 이라크 정부의 가장 큰 위협 요인 중에 하나가 됩니다.
물론 미국과 이라크 정부가 이걸 그대로 보고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계속되는 테러 소탕 작전에서 ISI 혹은 이라크 알 카에다 (라고 스스로가 부른 적은 없지만 외부에서는 그렇게 불리는 경우가 많았음) 는 적지 않은 희생을 치뤘는데 2010 년에는 이 조직의 리더인 아부 아유브 알-마스리 (Abu Ayyub al-Masri) 는 이라크 정부군과의 교전에서 사망했습니다. 이외에도 적지 않은 간부들과 조직원들이 사망했지만 그럼에도 이들이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도록 한 몇가지 자양분이 있었습니다.
첫번째는 역사적인 배경입니다. 오날날 이라크 - 시리아 지역에서 내전이 심각하게 발생하는 배경에는 강대국에 이해 관계에 따라 국경선이 마음대로 나눠진 역사가 있습니다. 1916 년, 1 차 대전 당시 독일 편에 선 오토만 제국을 분할하기 위한 사이크스 - 피콕 (Sykes-Picot Agreement) 협정이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비밀리에 맺어졌는데 이는 이 지역의 민족 (예를 들어 쿠르드족 문제), 종교 (시아파와 수니파) 문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적당히 영토를 반으로 쪼갠 것이었습니다.
(당시 오스만 영토를 A/B 로 쪼갠 사이크스 - 피콕 협정 Map of Sykes–Picot Agreement showing Eastern Turkey in Asia, Syria and Western Persia, and areas of control and influence agreed between the British and the French. Royal Geographical Society, 1910-15. Signed by Mark Sykes and Francois Georges-Picot, 8 May 1916. Royal Geographical Society (Map), Mark Sykes & Francois Georges-Picot (Annotations) )
대충 보더라도 별로 고민 없이 영토를 A/B 로 케익 자르듯이 쪼갠 것을 알 수 있는데 덕분에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과 북동부의 수니파, 그리고 중부에서 남부에 이르는 지역의 시아파 무슬림들이 하나로 섞여 이라크가 탄생하게 되었으며 시리아 내륙의 수니파들 역시 지중해 인근의 시아파 분파인 알라위파와 섞여 하나의 국가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두번째 문제는 아이러니한 이야기지만 독재 정권들이 무너지거나 혹은 여기에 저항운동이 발생한 것입니다. 지난 세월 독재 정권들이 각 민족과 정파를 억압하면서 이런 갈등은 표면으로 노출되지 않았으나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아랍의 봄 이후로 오히려 이런 갈등이 표면으로 노출되어 심각한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2011 년 부터 발발한 시리아 내전은 미국의 이라크 철군과 더불어 ISIL 의 성장에 큰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이 혼란한 틈을 타 ISI 는 이름도 ISIL 로 변경하고 (2013 년) 시리아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시리아의 내부적 갈등과 더불어 미국 등 서방이 이 문제에 적극 개입하기 어려운 시대적 상황을 잘 이용한 것입니다. 국내에서는 주로 레반트로 번역하는 al-sham 은 레반트 혹은 대 시리아를 포함하는 지역으로 사실 이들이 주장하는 지역은 레바논과 이스라엘까지 포함하는 지역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수니파 말고 시아파나 알라위파도 상당수 거주하고 있죠. 이는 시아파 이슬람들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2014 년 6 월의 시리아내 세력도
Controlled by the Syrian government Controlled by Kurdish forces Controlled by the Islamic State of Iraq and the Levant Controlled by other rebels Occupied by the Israeli military
세번째 문제는 바로 현 이라크의 알 말리키 (Nouri Kamil Mohammed Hasan al-Maliki) 정권 자체의 문제입니다. 알 말리키는 반 후세인 운동을 벌이다가 사형선고를 받고 24 년간 망명 생활을 했던 인물로 이라크를 민주화시킬 수 있는 적임자로 생각되어 총리로 뽑혔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하는 행동은 후세인의 뒤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2006 년 총리가 된 후 알 말리키는 권력을 독점하고 반대파를 축출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이라크는 이슬람 전체에서는 소수파인 시아파가 60% 정도를 차지하고 35% 는 정도는 수니파가 차지하고 있는 국가입니다. 이들 종파간 갈등을 잘 봉합하고 소수 민족인 쿠르드족까지 포용하면서 전쟁으로 피폐해진 이라크를 재건하는 것이 알 말리키 총리가 해야할 막중한 임무이지만 시아파인 알 말라키는 정적과 수니파를 탄압하면서 이라크를 내전 상황으로 몰고간 주범으로 뽑히고 있습니다.
알 말리키 총리는 2010 년에는 아예 국방부, 내무부, 정보부 장관을 본인이 겸임해 권력 독점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으며 2012 년에는 수니파인 타리크 알하쉬미 부통령에게 사형이 선고되어 (국내 테러를 지시한 혐의로) 이라크내 수니파의 강력한 반발을 사게 됩니다. 2012 년 이후 이라크내 수니파는 반정부 성향이 강해졌으며 이에 따라 ISIL 역시 세력을 더 크게 확장할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사정이 이런만큼 미 의회 내에서도 알 말리키를 도와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론이 나올 정도입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알 말리키 총리 President Barack Obama shakes hands with Iraqi Prime Minister Nouri al-Maliki after a joint press event on Camp Victory, Iraq, April 7, 2009. Obama spoke to hundreds of U.S. troops during his surprise visit to Iraq to thank them for their service. US Army)
이런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데다 이라크 전 종전을 선언하고 군비를 감축한 미국의 사정까지 더해져 이라크 내전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6월 초-중순에는 ISIL 이 모술을 점령한 후 바그다드까지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오는 듯 했으나 다시 이라크 정부군의 반격이 이어지며 향후 어떻게 상황이 진행될지 예측이 어려운 상황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ISIL 이 모술을 점령 한 후 피난가는 이라크인들 )
그런데 이 내전이 국제적 종교전쟁을 비화할 우려도 같이 상존합니다. 위기에 빠진 이라크 정부는 당장 지상군을 보내주기 힘든 미국 대신 같은 시아파 형제국인 이란에 도움을 요청했는데 이란 - 이라크 전쟁이 벌어진 1980 년대만 해도 생각하기 힘든 일이지만 이란은 이 요청에 응답해 이란 혁명수비대 민병조직인 '바시즈'(basiji) 산하 1500 명을 포함한 2000 명의 병력이 이라크 국경을 넘었고 이외에도 이란의 혁명수비대의 정예부대 '쿠드스'(Quds) 사령관인 카심 술라이마니 소장이 바그다드에 파견되는 등 이란 - 이라크간 군사 협력이 강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이 지역에서 시아파 맹주를 자처하는 이란의 계산에서 나온 것으로 이를 위해서는 심지어 오랜 앙숙인 미국과도 협력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게 이란의 입장입니다. 반면 이 지역에서 수니파 맹주를 자처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과의 오랜 우방 관계에도 불구하고 물밑에서는 ISIL 를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국제전으로 비화될 우려까지 상존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우디 입장에서는 이라크 내전이 확대되면 국제 유가가 상승할 테니 손해보는 장사는 아니지만 미국 및 서방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적극적으로 나서서 ISIL 을 지원할 가능성은 희박하긴 합니다. 다만 이란이 끼어드는 것 만으로도 국제전 양상으로 비화될 우려는 존재합니다)
또 한가지 문제는 사실 지금 ISIL 이 위협하는 바그다드와 이라크 중남부 지역은 수니파가 아닌 시아파 우세 지역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지역의 시아파를 자극하면서 2014 년 6월의 상황은 더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수니파이던 후세인 시절에 탄압을 받았던 과거를 회생하면서 이 지역의 시아파들이 결집하고 있어 이라크 전은 종파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이라크 시아파 최고성직자 알리 알시스타니의 호소 이후 시아파들의 자원입대와 민병대 조직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시아파 최고 지도자 알리 알시스타니의 연설. )
ISIL 과 이라크 정부는 서로 수많은 적군을 처형하거나 사살했다고 주장하면서 이제 결국 대규모 유혈 사태는 피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이 전쟁의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ISIL 이 더 남쪽으로 진출한다면 국제 유가에 대한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세계 경제를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세계 원유 생산량에서 이라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3 년에는 1.9 % 에 불과했으나 계속해서 생산양을 늘려 2013 년에는 4.1% 까지 확대되었고 2014 년 1-5 월 사이에는 4.37% 까지 증가했습니다. 배럴로 따지만 2003 년에는 전세계 생산량 7025 만 배럴 가운데 132.5 만 배럴을 생산했지만 2013 년에는 전세계 생산량 7516 만 배럴 가운데 308 만 배럴을 생산해 대략 2.5 배 정도 증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OPEC 국가들이 유가를 고려해 수출량을 줄일 때도 이라크는 전후 복구 사업과 군사력 증강을 위해 대규모로 석유를 수출했기 때문입니다. 이라크는 국제 유가를 100 달러 선에서 안정시킨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라크 남부의 석유 생산 시설이 타격을 입으면 어느 선까지는 국제 유가가 상승할 수 밖에 없고 그 가능성은 저 멀리 떨어진 한국까지 긴장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2014 년 6월 중순에는 앞으로 어떻게 진행이 될 것인지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현재는 ISIL 이 파죽지세로 남쪽으로 밀고 내려오고 있지만 미국과 서방국가들은 경제에 끼칠 악영향을 고려해 어떻게든 ISIL 이 이라크 남부로 진출하지 못하게 막을 것이고 이 지역의 시아파 역시 순순하게 ISIL 의 진출을 허용하지 않으려 들 것입니다.
여러가지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작용할 수 있는 만큼 현 시점에서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한가지 확실한 점은 꼬일 만큼 꼬인 문제들이 쉽게 해결되긴 어렵겠다는 점입니다. 과연 이 지역에 평화가 다시 찾아오는 것은 언제가 될 지 궁금합니다. 가능하면 모두를 위해서 평화가 빨리 정착되어야 겠지만 말이죠.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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