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권 혹은 이산화탄소 배출권 거래 (Emission trading, 혹은 ETS ; Emission Trading Scheme, cap and trade) 는 국가나 기업별로 배출량을 정해놓고 이를 미달하면 여유분을 판매하거나 혹은 초과하는 경우 추가로 구매하는 제도입니다. 그 뿌리는 1997 년의 교토 의정서까지 올라갈 수 있는데 아무튼 일부 유럽 선진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이 온실 가스규제에 별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유럽 연합 이외에는 사실 배출권 거래 제도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 배출권 거래에서 온난화를 막기 위한 CO2 의 가격이 톤당 적어도 32 달러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이 가격은 현재 유럽 시장의 가격의 5 배 수준으로 현재 유럽 연합의 기준 마저도 온난화를 막기에는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수준입니다.
기후 변화에 의한 경제 비용 분석의 전문가인 니콜라스 스턴 (Nicholas Stern) 과 그의 동료 사이먼 디에츠 (Simon Dietz, at the Grantham Research Institute on Climate Change and the Environment) 가 이코노믹 저널 (The Economic Journal) 에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강력한 온실 가스 억제를 위해서 필요한 이산화탄소의 가격은 2015 년에 톤당 32 달러에서 103 달러에 달하며 이 가격은 앞으로 20 년 이내로 82 - 260 달러까지 인상되어야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와 같은 가격인상으로 얻을 수 있는 성과가 대기 중 온실 가스 농도를 425 - 500 ppm 이내로 억제시켜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섭씨 1.5 - 2 도 선에서 억제할 수 있는 정도라고 내다봤습니다. 사실 이정도로 상당한 기상 이변은 불가피하지만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온건한 온난화 시나리오라고 보는 것입니다.
사실 현재의 유럽 탄소 배출권 거래 (European Union Emissions Trading Scheme (ETS)) 자체도 다른 지역에서는 유래를 보기 힘든 수준의 강도 높은 온실 가스 규제로 불리고 있습니다. 유럽의 ETS 시스템은 2013 년까지 이미 11000 개에 달하는 공장, 발전소 및 다른 시설을 포함하는 규제로 발전했으며 28 개 유럽 연합 회원국과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리히텐슈타인을 포함 31 개국에 그 규제가 미치고 있습니다.
현재는 3 단계 (Phase III : 2013 - 2020) 로 배출권 거래가격은 5.7 유로 (약 7.7 달러) 선에서 가격이 정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실 32 - 103 달러는 현재 어느 국가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강력한 규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석탄 발전소. 탄소 배출권 거래 제도를 강화한다면 이런 류의 발전소는 매우 불리할 수 밖에 없음 A coal power plant in Germany. Due to emissions trading, coal may become a less competitive fuel than other options. Coal power plant in Datteln (Germany) at the Dortmund-Ems-Kanal Image by Arnold Paul cropped by Gralo CC BY-SA 3.0)
경제적으로 보면 사실 배출권 거래 제도는 상당한 규제라고 할 수 있으며 대다수의 국가와 기업들이 필요성에는 공감해도 선뜻 실천에 나서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유럽 연합의 배출권 거래 제도는 그래서 선구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의미있는 온실 가스 규제를 위해서는 아직은 상당히 부족한 수준인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이 연구 결과는 배출권 거래를 포함한 온실 가스 규제를 더 서둘러야 한다는 내용을 지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더 음미해볼 것은 한국의 경우입니다. 현재 배출권 거래제를 선택한 국가는 유럽 연합 28 개국을 포함해서 38 개국 정도로 독일 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주로 1 인당 온실 가스 배출량이 적은 국가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한국 같은 수출 산업 위주 신흥국이 이 대열에 참가하면 탄소/이산화탄소 거래제에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입니다. 가능하다면 말이죠.
한국의 경우 온실 가스 배출이 많은 중화학 산업 위주이다 보니 사실 지금까지 온실 가스 배출 규제에 매우 소극적 (이라기 보단 온실 가스 배출을 계속 늘려왔음. http://jjy0501.blogspot.kr/2014/05/2011-GHG-emission-in-Korea.html 참조) 이었는데 전임 이명박 행정부 시절 갑자기 녹색 성장을 국정 화두로 꺼내면서 선진국 수준의 정책을 국제적으로 약속했습니다.
그 중 배출권 거래 제도는 사실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2015 년부터 실행 예정이지만 배출권 거래 1 차 계획 기간 (2015 - 2017) 이 다가오자 산업계와 환경부가 서로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입니다. 재미있는 건 전임 행정부가 세운 계획이지만 정작 약속은 다음 행정부가 지켜야 했다는 점과 더불어 이 계획이 발표된 이후 현재까지 재계에서는 현실성이 없다고 강력 반발하는 반면 환경부는 관철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점입니다.
과연 한국에서 탄소 배출권 거래제도가 정착될 수 있을지는 쉽게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한국은 다른 OECD 국가와는 달리 온실 가스 배출량이 상당히 높게 증가하는 국가인데 여기에는 중화학 공업과 수출 위주의 산업 구조가 한몫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배출량 총량을 규제하게 되면 수출 기업, 특히 석유 화학, 금속, 철강 같이 배출량이 높은 부분은 타격이 불가피합니다. 이제까지 구매하지 않던 배출권을 구매하거나 혹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추가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이죠.
재계에서는 1 차 기간 동안만 추가 부담액이 5조9천762억원에서 최대 28조4천591억원에 이를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중 철강 업종에서 부담하는 금액만 8천461억∼4조291억원으로 이중 75% 는 포스코 한 업체에서 부담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막대한 비용 부담은 가격 경쟁력 약화와 물가 상승, 그리고 산업 공동화를 부추킬 것이라는 게 산업계의 판단입니다.
만약 위의 저자들이 주장하는 수준으로 이산화탄소 거래가격을 올린다면 아마 그 부담은 더 천정부지로 솟아 오를 것입니다.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필요성에는 대부분 공감하지만 과연 그 돈을 누가 부담할 것인가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역시 선뜻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게 어쩌면 우리 인간의 당연한 본성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입니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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