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해적처럼 갈고리를 던지고 대포를 쏘는 박테리아



 (The diagram shows the hunting process of Aureispira, from capturing to killing the prey. (Schema: after Yun-Wei Lien, et al. Science, 2024))



(The structure of grappling hooks from a cellular to molecular scale. (Image: Yun-Wei Lien / ETH Zurich))



(Top Image: Cryo-electron tomogram (left) and 3D model (right) of the onboard cannon of the hunting bacterium Aureispira. (Images: Yun-Wei Lien / ETH Zurich))

박테리아는 주변에 모든 것에서 에너지를 얻습니다.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에너지를 얻는 경우는 물론이고 각종 화학 반응을 통해 광합성과 독립적으로 에너지를 얻는가 하면 이미 존재하는 유기물을 섭취하거나 다른 생물체의 유기물을 빼앗기도 합니다. 박테리아는 가장 작은 생물체이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 큰 생물체 안으로 침투해 영양분을 가로챌 수 있습니다.

박테리아가 영양분을 가로채는 대상은 크기와 종류를 가리지 않습니다. 당연히 같은 박테리아도 그 대상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서 박테리아는 놀라운 창의성을 발휘합니다. 크기가 자신과 거의 비슷한 상대의 영양분을 가로채기 위해 어뢰처럼 다른 세포안으로 뚫고 들어가는 방법이나 뱀파이어처럼 영양분을 빨아드는 세균도 그중 하나입니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의 마틴 필호퍼 (Martin Pilhofer, Professor at the Department of Biology)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다른 박테리아를 사냥하는 박테리아를 발견했습니다. 바다에 살고 있는 아우레이스피라 (Aureispira)는 영양분이 충분한 상황에서는 다른 박테리아처럼 주변에서 영양분을 얻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살고 있는 해양 환경은 종종 영양분의 농도가 너무 낮아져 번식과 성장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놓이면 아우레이스피라는 숨겨둔 무기를 꺼내들고 사냥감이 될 다른 세포에 다가갑니다. 이들은 마치 해적선처럼 갈고리 (grappling hook)을 발사해 상대 세포의 편모 (flagella)를 묶어서 도망가지 못하게 만듭니다. 편모는 세포가 이동하는 데 필요한 동력 기관이기 때문에 여기가 잡히면 상대는 꼼작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더 놀랍게도 대포 같은 장치를 이용해 상대 세포에 발사체를 날려 세포에 구멍을 뚫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나온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입니다. 물론 공격당한 세포는 대개 죽게 됩니다.

(The time-lapse sequence shows how the predatory bacterium Aureispira hunts Vibrio cells. The following sequence shows sections through a cryo-electron tomogram and a 3D model illustrating the penetration of the contractile injection system into the prey cell. (Video: Yun-Wei Lien)

흥미로운 사실은 이 과정에 상당한 에너지가 들어가는지 영양분이 충분할 때는 무기를 아껴둔다는 것입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져 해적질을 하는 것이지 사실 먹고 살만 할 때는 그냥 주변에서 평화롭게 영양분을 섭취한다는 사실도 재미있습니다. 아무튼 작은 세포 속에 들어있는 예상치 못한 정교한 공격 시스템이 정말 놀랍습니다.

참고

https://newatlas.com/biology/microscopic-pirates-cellular-cannons-grappling-hooks/

https://ethz.ch/en/news-and-events/eth-news/news/2024/10/catching-prey-with-grappling-hooks-and-cannons.html

Lien YW, Amendola D, Lee KS, Bartlau N, Xu J, Furusawa G, Polz MF, Stocker R, Weiss GL, Pilhofer M. Mechanism of bacterial predation via ixotrophy. Science, Oct 17th 2024. DOI: external page10.1126/science.adp0614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잘 쓰지도 않을 방법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아무래도 효율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생대에 박쥐가 등장하면서 플로팔랑곱

9000년 전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다.

( The final reconstruction. Credit: Oscar Nilsson )  그리스 아테나 대학과 스웨덴 연구자들이 1993년 발견된 선사 시대 소녀의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유골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역의 테오페트라 동굴 ( Theopetra Cave )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9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유골의 주인공은 15-18세 사이의 소녀로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괴혈병, 빈혈, 관절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았던 시기는 유럽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이 초기 농경으로 이전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을 것이며 평균 수명 역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아무튼 문명의 새벽에 해당하는 시점에 살았기 때문에 이 소녀는 Dawn (그리스어로는  Avgi)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골에 대한 상세한 스캔과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서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모습은.... 당시의 거친 환경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긴 턱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 그랬듯이 질긴 먹이를 오래 씹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하고 억센 10대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억세보이는 주인공이라도 당시에는 전염병이나 혹은 기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평균 수명은 길지 못했겠죠. 외모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의 거친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해 흥미롭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18-01-teenage-girl-years-reconstructed.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