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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세균을 깨워 증식하는 바이러스


 

(The paride phage (purple) is one of the few phages to attack dormant bacteria. (Graphic: Fabienne Estermann & Enea Maffei / ETH Zurich))

박테리아는 면역 시스템이나 항생제를 회피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수단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겨울잠을 자는 것처럼 휴면 상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조용히 죽은 척 하고 있으면 면역 시스템에 걸리지 않을 수 있고 주로 세포 분열 과정에 끼어드는 항생제의 공격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런 휴면 상태의 세균도 깨울 수 있는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박테리아에 기생하는 바이러스인 박테리오파지입니다. 박테리오파지는 숙주인 박테리아의 물질을 이용해서 증식하는 만큼 잠자는 박테리아를 깨워야 증식이 가능합니다.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대 (ETH Zurich)의 과학자들은 이런 박테리오파지 가운데 인체에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에 기생하는 박테리오파지를 찾아냈습니다.

파라이드 Paride는 인간에 위험한 세균인 녹농균 (Pseudomonas aeruginosa)에 기생하는 박테리오파지입니다. 녹농균은 상처 감염부터 폐렴, 요로 감염 등 각종 감염을 일으킬 뿐 아니라 최근에는 항생제 내성을 지닌 경우가 늘어나 의료 현장의 골치거리 중 하나입니다.

연구팀은 파라이드가 잠자고 있는 녹농균의 99%를 제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 바이러스가 세균 표면에 붙은 후 바이러스 증식에 필요한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분자 스위치를 켜서 다시 가동시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기서 신기한 부분는 파라이드가 모든 녹농균을 제거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바이러스가 살려면 숙주도 있어야 하기 때문인지 일부는 살아남아 다시 증식하게 허용합니다.

하지만 바로 이때 카바페넴 같은 항생제를 함께 사용하면 수면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훨씬 잘 제거할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이런 방법으로 녹농균을 100% 제거했습니다. 카바페넴이 수면 상태인 녹농균에 효과가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고무적인 결과입니다.

파라이드를 실제 임상에서 감염치료에 사용할 수 있을 지는 모르지만; 이번 연구는 항생제 내성균 치료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균을 어떻게 깨우는지만 알아내면 꼭 박테리오파지를 사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실제 임상에서 적용하기가 더 쉬울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이 맞는 답을 찾아낼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참고

https://newatlas.com/medical/virus-phage-kills-sleeping-bacteria-superbugs/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23-441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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