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식성 박테리아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델로비브리오의 경우 운동에너지를 이용해서 다른 생물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매우 독특한 메카니즘을 가지고 있습니다. 효소를 분비해 집단으로 사냥하는 Myxococcus xanthus 역시 매우 독특한 박테리아입니다. ( https://blog.naver.com/jjy0501/100202441247 참조) 여기에 더해 이름부터 독특한 포식성 박테리아인 Vampirovibrio chorellavorus 역시 생물 진화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제 책인 포식자에서는 지면 관계상 소개하지 못했지만, 블로그에선는 소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뱀피로비브리오는 0.6 µm크기의 작은 그람 음성균으로 처음 발견됐을 때는 델로비브리오의 일종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후속 연구를 통해 이들이 델로비브리오와 상이한 종류라는 점이 확실해졌습니다. 무엇보다 독특한 부분은 먹이를 먹는 방법입니다. 뱀피로비브리오는 흔한 녹조류인 클로렐라 (Chlorella)의 천적입니다. 클로렐라보다 훨씬 작은 뱀피로비브리오가 클로렐라를 잡아먹을 수 있는 비결은 이름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 세포질을 흡입하는 데 있습니다.
뱀피로비브리오는 클로렐라의 세포벽에 들러붙은 후 여기에 구멍을 내고 체액에 해당하는 세포질을 빨아먹습니다. 이를 위해 뱀피로비브리오는 표면에 type IV secretion system (T4SS)를 지니고 있어 클로렐라에 달라붙은 후 100종에 달하는 분해효소를 분비해 내부를 녹이고 액화시켜 흡수합니다.
사실 잡아먹는다는 표현보다는 빨아먹는다는 표현이 더 적합한데, 마치 흡혈 박쥐나 거머리처럼 식사를 한 후 숙주의 표면에서 분열을 통해 증식한다는 점이 다른 흡혈 동물과 차이점입니다. 물론 빨아먹을 수 없는 핵과 일부 세포내 소기관을 제외한 클로렐라는 껍데기만 남은 시체가 됩니다. 이런 섭식 방법은 다세포 동물에서는 흔히 볼 수 있지만, 단순한 박테리아에서는 보기 드문 것 입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뱀피로비브리오가 사실은 시아노박테리아의 일종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들의 선조는 본래 광합성을 하는 생물이었지만, 힘들게 광합성을 하는 대신 남이 광합성한 영양분을 가로채는 방식으로 진화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뭔가 얌체 같지만, 인간을 포함한 모든 종속영양 생물이 사실 이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델로비브리오와 마찬가지로 뱀피로비브리오 역시 생물의 진화에는 정해진 틀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줌과 동시에 인간에게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독성 녹조류를 컨트롤하기 위해 천적인 뱀피로비브리오를 활용하는 것이죠. 다만 인간 마음대로 배양이 어려워서 실제 그런 목적으로 사용하기는 어려운데 앞으로 방법이 개발되면 불가능한 일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참고
Guerrero, Ricardo, et al. "Predatory Prokaryotes: Predation and Primary Consumption Evolved in Bacteria." Evolution and Microbiology 83 (1986): 2138-142.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U.S. National Library of Medicine.
Hugenholtz, P., and Soo, R.M. 2015. Recent summary of research on Vampirovibrio chlorellavorus that was also partially discussed at the March 2015 Department of Energy Joint Genome Institute Genomics of Energy and Environment Meeting. Personal correspond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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