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 생식은 사실 매우 번거로운 일입니다. 짝을 찾지 못하면 번식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후손을 남길 수 없어 적자 생존의 경쟁에서 밀릴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후손없이 사라진다는 것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유전자가 사라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짝을 찾을 수 있다고 해도 번식하는 과정 자체가 만만치 않습니다. 따라서 이런 엄청난 투자와 리스크를 감안하고 유성생식을 하는 이유는 그만큼 얻는 게 있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유성 생식의 이득으로 흔히 언급되는 것이 다양한 변이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유성 생식을 주로 하는 척추 동물 같은 큰 다세포 생물체는 개체수가 작고 세대가 길어 단순한 돌연변이만으로는 충분한 유전적 변이를 확보하지 못해 다양한 유전자를 확보하기 위해 유성생식을 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가장 훌륭한 설명이긴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유성 생식의 또 다른 이점은 유성 생식을 통해 유전자를 보존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계속해서 자가 분열을 통해서 증식하는 박테리아의 경우 모든 유전자가 두 개로 복제되면 다행이지만, 아쉽게도 일부는 복사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결손 유전자가 계속해서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걱정 없는게 많은 박테리아가 동료와 유전자를 공유할 수 있는 신기한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여러 개의 세포로 구성된 다세포 동물은 그렇게 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각기 세포마다 가진 유전자의 조합이 다르면 그것도 큰 문제이고 유전자를 쉽게 주고 받을 방법도 없습니다. 물론 앞서 소개했듯이 예외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다세포 생물은 유전자를 쉽게 교환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일생에 한 번은 큰 기회가 있습니다. 바로 유성생식을 통해 번식할 때 다른 개체와 유전자를 혼합해 리스크를 분산할 수 있는 것이죠.
메릴랜드 대학 에릭 하그 교수(Eric Haag, a professor of biology at UMD)가 이끄는 연구팀은 과학 실험용으로 널리 사용되는 Caenorhabditis 속의 선충을 이용해서 무성생식과 유성생식의 차이를 조사했습니다. 이들에 의하면 Caenorhabditis briggsae의 경우 주로 무성생식의 형태로 번식을 하는 반면 Caenorhabditis nigoni는 독특하게도 항상 유성생식을 통해 번식합니다.
연구팀은 가까운 두 종의 선충의 유전자를 비교해서 무성생식을 하는 C. briggsae의 유전자가 7000개나 더 적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아마도 이 선충은 무성생식을 통해 전체 유전자의 1/4을 잃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이렇게 유전자를 많이 잃어도 다세포 생물이 죽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놀랍지만, 이 연구 결과는 유전자를 보존하는 데 있어 유성생식의 유리함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은 모든 유전자를 균등하게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고 역시 당장 급하지 않은 유전자부터 손실하는 선택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생존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유전자를 잃은 개체는 태어나지 못하거나 곧 죽을 테니 당연한 결과겠죠.
연구팀에 의하면 손실된 유전자 가운데 "male secreted short" (mss)의 경우 정자의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사용됩니다. 이는 무성생식을 하는 생물에게는 사실 필요없는 유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먼저 도태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유성생식의 진화와 생존에서의 이점은 아직도 흥미로운 질문이 많은 분야입니다. 점차 많은 연구가 이뤄지면 계속해서 재미있는 결과들이 나올 것으로 예상합니다.
참고
"Rapid genome shrinkage in a self-fertile nematode reveals sperm competition proteins" Science (2018). science.sciencemag.org/cgi/doi … 1126/science.aao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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