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무어의 법칙은 끝났을까? (5)





  앞서 포스트들에서 최근 10년간 소비장용 CPU 성능 향상이 둔화된 중요한 원인으로 시장 독점 구조를 설명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공감을 표시하는 댓글과 더불어 사실 공정 미세화에 따른 문제점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사실 이 점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공정 장벽이라는 용어는 사실 정식 용어가 아니라 제가 설명의 편의를 위해서 사용한 말이지만, 공정 미세화에 따른 어려움이 프로세서 성능 향상에 큰 장벽처럼 작용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고전적인 의미의 무어의 법칙은 사실 끝났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로 연재 포스트를 마무리 할까 합니다. 


 - 공정 미세화 


 당연히 현대적인 반도체는 매우 복잡한 공정으로 제조됩니다. 기본적으로 설명하면 얇은 실리콘 위에 매우 미세한 회로를 새기기 위해 리소그래피라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강한 빛이나 전자빔으로 표면을 선택적으로 없애 회로를 새기는 방식이죠. 하지만 리소그래피는 반도체 제조 공정의 한 단계이고 이것이 반도체 제조의 전부를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좀 된 영상이지만, 여기에 대해서 잘 설명한 영상이 있어 아래에 소개합니다. 



(동영상) 


 아무튼 여러 단계를 거쳐서 실리콘 웨이퍼 표면에 매우 미세한 회로를 새기는데 당연히 회로의 크기가 줄어들수록 정확히 새기기가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기술적 어려움이 있어왔지만, 제조사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공정 미세화의 장벽을 뚫어왔습니다. 하지만 대략 100nm 이하 미세 공정은 제조 공정이 복잡해지는 데다 리소그래피 (노광장치) 등 핵심 장비의 비용이 급상승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웬만한 자본력을 갖춘 기업이 아니고서는 뛰어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미세 공정일수록 대기업만 남게 되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GPU 생산 부분에서도 65nm 공정까지는 TSMC 이외에 다른 파운드리도 있었으나 40nm 공정 이하에서는 사실상 TSMC 가 독점하는 현상이 일어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메모리 부분에서도 삼성, SK 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몇 개 기업만 남은 이유도 설명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막대한 자본력과 기술력을 지닌 대기업이라도 미세 공정의 벽은 뚫기 쉽지 않습니다. TSMC의 경우 2010년 40nm 공정을 도입할 때 이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미세 공정 양산도 어려운데 엔비디아와 AMD에서 주문한 GPU가 워낙 큰 빅칩이라서 제조가 매우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 결과 신제품 출시가 계속 지연되거나 수량이 불충분해 당시에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2012년에 28nm 공정 도입은 이보다는 순조롭게 이어졌지만, 28nm 이하 GPU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역시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16nm FinFET 공정의 GPU가 등장한 것은 4년 후인 2016년이었습니다. 16nm 공정을 개선한 공정인 12nm 공정은 그 다음해에 등장했지만, 전에 설명했던 대로 웨이퍼 처리 공정 중 후처리 부분에 속하는 BEOL (Back end of line) 공정을 개선한 것이었습니다. ( https://blog.naver.com/jjy0501/220963311135 참조) 


 인텔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은데, 특히 인텔은 14nm 공정에서 10nm 공정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상당한 지연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65->45->32->22nm 공정까지는 어느 정도 문제가 없었는데, 14nm 공정 도입에서 한 번 지연되었다가 10nm 공정은 엄청나게 지연되고 있습니다. 


(과거 인텔의 로드맵, 출처: 인텔 )


 과거 인텔 로드맵에서는 2011년 22nm 공정 도입후 2013년 14nm 공정 도입, 2015년 10nm 공정 도입, 그리고 2017년 7nm 공정 도입을 예상했으나 2018년 현재 14nm 공정까지만 실제로 진행되었고 7nm 이하는 예정도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공정 미세화에 따른 어려움을 제조사조차도 완전히 파악하기 어려웠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무튼 이로 인해 인텔은 브로드웰/스카이레이크/카비레이크/커피레이크 (5-8세대) 프로세서를 모두 14nm 공정에서 생산할 수밖에 없었는데, 비록 14nm, 14nm+, 14nm++로 공정을 조금씩 개선하긴 했지만, 과거 인텔에서는 보기 어려운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에도 공정을 개선해서 1년 후에는 트랜지스터 밀도를 더 높인 경우가 많았지만, 이걸 90nm+ 식으로 표현한적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TSMC의 12nm 공정 역시 비슷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반도체 제조사들이 팹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하거나 혹은 연구에 집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포스팅 한 것처럼 주요 제조사들은 미세 공정을 도입하기 위해서 천문학적인 투자를 진행 중입니다. 다만 그래도 쉽지 않은 장벽이라는 것이죠. 물론 이와 같은 노력으로 10nm의 벽을 뚫고 더 미세 공정 도입이 가능할 것입니다. 


 미세 공정의 벽을 뚫을 무기 가운데 하나는 바로 새로운 리소그래피 장치입니다. 극자외선 (EUV) 리소그래피 장치는 현재 사용되는 193nm 장비 대신 13.5nm의 짧은 파장을 이용해서 더 미세한 회로를 새길 수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짧은 파장의 노광장치가 안정적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일은 엄청난 기술적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반도체 업계가 협력해 새로운 차세대 노광장비를 개발했고 이제 상용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주요 반도체 제조사들은 7nm 팹에서 이 EUV를 도입할 것이며 5nm 공정까지는 무난하게 통과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에도 그런 것처럼 생각보다 7nm 공정에 돌입하기 어려울 수도 있고 5nm 공정 이전도 생각처럼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실 5nm 이하의 초미세 공정에서 제조된 반도체가 의도대로 작동하게 하는 일 역시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그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미세 공정 관련해서 새로운 소식이 들어오면 다시 포스팅 하게 될 것 같습니다. 


 - FinFET/3D 트랜지스터 


 공정 미세화에 따른 문제점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 주변에서 사용하는 CPU와 스마트폰 AP, GPU 들은 모두 이 문제를 극복한 결과물로 결코 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회로 선폭을 줄여 미세한 회로를 만드는 것 자체도 쉽지 않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회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회로 폭이 너무 줄어들면 이제 이 회로로 충분한 전자가 지날 수 없게 되어 주변으로 전자가 빠져나가는 누설 전류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이 문제는 특히 32/45nm 공정에서 이슈가 되었습니다. 반도체 제조사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는데, 가장 큰 효과를 거둔 방법은 멀티게이트 방식의 트랜지스터입니다. 과거의 평면(planer) 트랜지스터는 사실 2차원적으로 회로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3차원적으로 입체 게이트를 만드는 것입니다. 상세한 내용은 몇 년전 기술한 3D 트랜지스터 관련 포스트에 있습니다. 






 (왼쪽의 전통적인 평면 트랜지스터이고 오른쪽이 3D 혹은 Trigate 트랜지스터. 출처: 인텔) 



 인텔 이외의 제조사들은 FinFET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 둘은 개념적으로 유사한 멀티게이트 기술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인텔은 22nm에서 이 방식을 도입해 누설 전류 문제를 극복했으며 삼성, TSMC 등 다른 제조 역시 10/14/16nm 공정에서 이를 도입해 공정 미세화에 따른 문제를 극복했습니다. 하지만 이 역시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기 보다는 완화시켰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22/14/10nm 공정의 단면. 회로 선폭이 좁아짐에 따라 전자가 지날 수 있는 공간 확보를 위해 점점 높아지는 모습을 볼 수 있음. 출처: 인텔)


 아무튼 이런 방법으로 계속 미세 공정을 개발하면서 인텔은 10nm 공정에서는 1x1mm 공간에 1억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주장대로면 14nm 대비 2.7배 정도 기록 밀도가 증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인텔의 10nm 공정이 실제로 도입되면 과거보다 트랜지스터 숫자가 훨씬 많은 빅칩을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인텔은 22nm 공정에서 18개, 14nm 공정에서 최대 30개의 범용 x86 코어를 집적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10nm 공정에서는 40-50개 이상의 코어를 집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일반 사용자용 CPU의 코어를 몇 개까지 늘릴지는 역시 시장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만약 AMD의 라이젠이 7nm 공정으로 이전하면서 코어 수를 더 늘리고 성능도 향상시킨다면 메인스트림 8코어 프로세서 등장은 시간 문제일 것입니다. 이미 지금 14nm 공정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까요. 다만 그렇게 되면 지금 더 비싸게 파는 상위 라인업이 꼬이게 되므로 경쟁사의 CPU 상황을 봐가면서 조절을 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공정 미세화에 의한 문제는 물론이고 칩의 크기가 커지면서 생기는 문제까지 아직 이야기 하지 않은 문제가 더 있기 때문에 이를 다음에 기술하고 이번 연재 포스트를 마칠까 합니다. 아래 영상은 참고로 3D 반도체에 대한 이야기인데, 3D 낸드나 HBM 같은 적층형 메모리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공정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라고할 수 있습니다. 




 참조 : 3D 반도체 기술 (동영상)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잘 쓰지도 않을 방법을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아무래도 효율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생대에 박쥐가 등장하면서 플로팔랑곱

9000년 전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다.

( The final reconstruction. Credit: Oscar Nilsson )  그리스 아테나 대학과 스웨덴 연구자들이 1993년 발견된 선사 시대 소녀의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유골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역의 테오페트라 동굴 ( Theopetra Cave )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9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유골의 주인공은 15-18세 사이의 소녀로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괴혈병, 빈혈, 관절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았던 시기는 유럽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이 초기 농경으로 이전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을 것이며 평균 수명 역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아무튼 문명의 새벽에 해당하는 시점에 살았기 때문에 이 소녀는 Dawn (그리스어로는  Avgi)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골에 대한 상세한 스캔과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서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모습은.... 당시의 거친 환경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긴 턱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 그랬듯이 질긴 먹이를 오래 씹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하고 억센 10대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억세보이는 주인공이라도 당시에는 전염병이나 혹은 기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평균 수명은 길지 못했겠죠. 외모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의 거친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해 흥미롭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18-01-teenage-girl-years-reconstructed.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