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사람 속의 뿌리는 유연성에 있다 ?




 인간 (호모 사피엔스) 가 속한 사람 속 (genus Homo) 은 대략 180 - 240 만년 사이 진화한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호모 속이 진화한 장소는 호미니드와 인류의 요람인 아프리카로 당시 환경은 기후가 춥고 건조해지면서 숲 대신 초원이 발달한 환경이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긴 다리로 먼거리를 직립 보행할 수 있는 호모속이 진화했다고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미스소니언의 고인류학자인 리처드 포츠 (Smithsonian paleoanthropologist Richard Potts) 과 뉴욕대의 인류학 교수인 수잔 앤톤 (Susan Anton, professor of anthropology at New York University), 그리고 웨너그렌 재단 인류학 연구소의 소장인 레슬리 아이엘로 (Leslie Aiello, president of the Wenner-Gren Foundation for Anthropological Research) 등은 합동 연구를 통해서 우리가 생각했던 것 보다 초기 호모 속의 조상들이 더 다양할 뿐 아니라 환경 변화에 유연했다는 가설을 제시했습니다. 



(180 - 210 만년전 존재했던 초기 호모속의 조상들은 생각보다 더 높은 다양성을 지니고 있었음. 위의 두개골 화석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존재했던 초기 호모속의 그룹 가운데 케냐에서 발견된 그룹인 KNM-ER 1470/KNM-ER 1813 (왼쪽 두개), 그리고 KNMER 3733 (오른쪽) 및 조지아 (그루지아) 에서 발견된 그룹인 Georgian fossil Dmanisi Skull 5 의 모습.  Between 2.1 and 1.8 million years ago, the oldest known species of the human genus, Homo, exhibited diverse traits. These species include the 1470 Group and the 1813 Group, based on the Kenyan fossils KNM-ER 1470 (left) and KNM-ER 1813 (second from left), respectively. By 1.8 to 1.9 million years ago, the species Homo erectus had evolved in Africa and started to spread to Eurasia. Early populations of this long-lived species are represented by the Kenyan fossil KNMER 3733 (right) and the Georgian fossil Dmanisi Skull 5 (second from right). The three lineages -- the 1470 group, the 1813 group, and Homo erectus -- overlapped in time for several hundred thousand years. The Kenyan fossils, from the site of Koobi Fora in the Lake Turkana region of Kenya, are housed in the National Museums of Kenya. Fossils from Dmanisi are housed in the Georgian National Museum. Credit: Kenyan fossil casts – Chip Clark, Smithsonian Human Origins Program; Dmanisi Skull 5 – Guram Bumbiashvili, Georgian National Museum)


 연구팀은 최초의 호모속이 등장하던 시기의 고기후 데이터를 다시 재구성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호모속의 화석을 비롯한 화석 데이터도 같이 통합해서 비교했습니다. 250 - 150 만년전 동아프리카의 기후는 지구 전체의 기후 변화에 따라서 매우 역동적으로 변하면서 불안정했습니다. 당시에는 매우 강한 우기와 건기가 번갈아 나타났으며 이는 당시 이 지역에 살던 호미닌 (Hominin) 들에게 새로운 생존의 문제를 야기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진화된 호모속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도 쉽게 대응할 수 있는 다양성과 다재 다능한 유연성 (flexibility) 였습니다. 연구팀은 이 시기의 초기 호모속들이 하나가 아니라 다양한 그룹으로 진화했으며 심지어 이는 지리적으로 겹치는 곳에 있는 그룹들도 그랬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300 - 150 만년 사이 호미닌의 진화  Hominin evolution from 3.0 to 1.5 Ma. Green: Australopithecus, Yellow: Paranthropus, Red: Homo. The icons indicate from the bottom the first appearance of stone tools at ~2.6 Ma, the dispersal of Homo to Eurasia at ~1.85 Ma, and the appearance of the Acheulean technology at ~1.76 Ma. The number of contemporaneous hominin taxa during this period reflects different strategies of adaptation to habitat variability. The cultural milestones do not correlate with the known first appearances of any of the currently recognized Homo taxa. Credit: Anton et al., Science, 2014 ) 


 포츠는 "우리 인류의 유연성의 뿌리는 우리 조상이 겪었던 불안정한 기상 환경이 이를 선호했기 때문 (Unstable climate conditions favored the evolution of the roots of human flexibility in our ancestors)" 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한가지 환경이 아니라 계절에 따라 극단적으로 바뀌는 환경에서 살면서 적응한 것이 오늘날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이 가능한 인류의 유연성과 다양성의 뿌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다양성을 바탕으로 초기 호모 속들은 아프리카를 떠나 유라시아로 정착했습니다. 이전까지 호미닌은 아프리카에 국한되어 있었으나 보다 다양한 환경에 적응이 가능해 지면서 더 멀리까지 뻗어 나간 것입니다. 그러면서 초기 호모속의 다양성은 더 커진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면 연구팀이 비교한 조지아 (그루지아) 공화국의 180 만년된 호모속 두개골 5개는 비슷한 시기의 아프리카 친척 호모 에렉투스와는 다른 특징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편 198 만년전 살았던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세디바 (Australopithecus sediba) 역시 환경 변화에 적응해 치아와 손에서 호모속과 비슷한 진화를 경험하고 잇었습니다. 당시 아프리카에서는 몇개의 다른 호미닌 및 호모속들이 같은 지역에서 공존하는 환경이었습니다. 이들은 몸 크기에서는 큰 차이가 없었으나 형태적이나 해부학적 (예를 들어 뇌의 크기) 에서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는 물론 급격히 변하는 환경에 적응한 결과입니다. 



(호모속 및 초기 호모 에렉투스의 형태학적, 행동학적 변화  Evolutionary timeline of important anatomical, behavioral and life history characteristics that were once thought to be associated with the origin of the genus Homo or earliest H. erectus. Credit: Anton et al., Science 2014


 연구의 공저자인 아이엘로는 좀 더 구체적으로 호모속이 섭취했던 먹이가 다른 종들과는 좀 달랐다고 지적했습니다. 호모속은 고기를 포함해서 매우 다양한 먹이를 섭취했으며 이는 한가지 먹이 (예를 들어 뿌리와 견과류) 를 섭취하는 것보다 더 다양한 생존 전력을 개발하도록 자극했을 것입니다. 결국 이런 잡식성이 도구를 이용한 사냥과 더불어 넓은 지역을 모험하고 탐색하는 과정을 촉진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수백만년 전부터 진화된 호모속의 유연성과 창의력, 그리고 적응력은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중요한 유산을 남겼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류는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만 국한되었던 초기 호미닌과는 달리 전 지구로 뻗어나갔으며 매우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는 유연성과 창의력에서 어떤 다른 종도 따라잡을 수 없는 능력을 과시했습니다. 


 소식은 사실 여기까지이지만 문득 드는 엉뚱한 생각이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이와 같은 호모속의 자랑스런 역사에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누군가 한국 교육 시스템의 문제는 100 명의 학생에게 100 가지 능력이 있을 수 있는데도 100 명의 학생에게 한가지 기준과 목표로 교육을 시키는데 있다고 했습니다. 제가 배웠을 시절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게 크게 달라진 건 없어 보이는데 다양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성과 창의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교육은 수백만년은 뒤로 가 있는 게 아닌가한 엉뚱한 생각이 들었네요.  


 이 연구는 사이언스에 실렸습니다. 


 참고 


Journal Reference:
  1. S. C. Anton, R. Potts, L. C. Aiello. Evolution of early Homo: An integrated biological perspectiveScience, 2014; 345 (6192): 1236828 DOI:10.1126/science.1236828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9000년 전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다.

( The final reconstruction. Credit: Oscar Nilsson )  그리스 아테나 대학과 스웨덴 연구자들이 1993년 발견된 선사 시대 소녀의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유골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역의 테오페트라 동굴 ( Theopetra Cave )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9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유골의 주인공은 15-18세 사이의 소녀로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괴혈병, 빈혈, 관절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았던 시기는 유럽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이 초기 농경으로 이전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을 것이며 평균 수명 역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아무튼 문명의 새벽에 해당하는 시점에 살았기 때문에 이 소녀는 Dawn (그리스어로는  Avgi)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골에 대한 상세한 스캔과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서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모습은.... 당시의 거친 환경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긴 턱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 그랬듯이 질긴 먹이를 오래 씹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하고 억센 10대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억세보이는 주인공이라도 당시에는 전염병이나 혹은 기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평균 수명은 길지 못했겠죠. 외모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의 거친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해 흥미롭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18-01-te...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