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화석 (trace fossil) 혹은 생흔 화석은 생물의 생활의 증거가 화석으로 남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인 것 가운데 하나는 발자국 화석으로 이 동물이 실제 어떻게 걸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무리를 이뤄 이동했는지 등의 단서를 제공하는 결정적인 증거이기 때문에 학술적으로 큰 가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특히 그 동물이 사람속 (genus homo) 에 속하는 동물이라면 우리에게는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죠. 그것은 인간의 조상에 해당하던 호미니드의 화석이기 때문입니다. 두발로 걷는 인간의 발자국은 매우 선명하게 다른 동물과는 다른 형태의 발자국을 남기게 됩니다. 인간 같은 방식으로 두 발로 걷는 포유류는 드문 정도가 아니라 사실 유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퀸 메리 대학 지질학과 (Queen Mary's School of Geography), 런던 대영박물관 (British Museum), 영국 국립 자연사 박물관 (Natural History Museum) 의 합동 연구팀은 최근 영국의 노퍽 (Norfolk) 의 북동쪽에 있는 하피스버로 (Happisburgh) 해변가 에서 무려 80 만년 전의 호미니드의 발자국 화석을 발견했습니다. 이는 호미니드가 기원했던 아프리카 밖에서는 보기 드물 만큼 오래된 발자국 화석으로 최소한 유럽에서 (그리고 아마도 아프리카 이외의 지역 전체에서) 가장 오래된 호미니드 발자국 화석이라고 합니다.
(80 만년된 발자국 화석 Area A at Happisburgh: View of footprint surface looking south, also showing underlying horizontally bedded laminated silts.
Credit: Photo by Simon Parfitt / From: Ashton N, Lewis SG, De Groote I, Duffy SM, Bates M, et al. (2014) Hominin Footprints from Early Pleistocene Deposits at Happisburgh, UK. PLoS ONE 9(2): e88329. doi:10.1371/journal.pone.0088329)
(발자국 화석 하나를 카메라 렌즈 뚜껑과 비교한 것 Undated handout photo issued by the British Museum Friday Feb. 7, 2014 of some of the human footprints, thought to be more than 800,000 years old, found in silt on the beach at Happisburgh on the Norfolk coast of England, with a camera lens cap laid beside them to indicate scale. (AP Photo/British Museum))
인간은 물론 살아가면서 수많은 발자국을 남기게 마련이지만 그중 화석화 되는 것은 극도로 드문 경우 입니다. 누군가 발자국이 잘 남을 수 있는 진흙 같은 지형을 걸은 후 이 흔적이 사라지기 전에 화산재나 혹은 산사태 따위로 갑자기 그 위가 덮혀야 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렇게 남은 흔적이 극도로 운 좋게 누군가에 의해서 밝혀져야 합니다. 참고로 이보다 오래된 발자국 화석도 몇개 없는데 대표적인 것은 탄자니아의 라에톨리 (Laetoli) 에서 발견된 350 만년 전의 발자국 화석과 케냐의 코비 포라 (Koobi Fora) 에서 발견된 150 만년전 발자국 화석입니다.
연구팀은 이 발자국이 80 - 100 만정도 된 것으로 어린이와 어른이 섞여 있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가족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발자국은 모두 50 개로 완전한 것은 12 개 정도입니다.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이렇게 오래 살아남은 발자국 화석이 영국의 사나운 폭풍으로 인해 발굴 2 주만에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북해의 악명높은 파도의 위력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그러나 연구팀은 - 이들은 고대 호미닌의 화석을 찾아 지난 10 년간 퇴적물을 제거해왔음 - 이 귀중한 흔적 화석이 사라지기 전에 디지털 사진기술과 3D 이미지 기술을 통해서 완벽한 3D 이미지를 확보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오랜 세월 고생해서 찾은 귀중한 화석이 사라지기 전 필사적으로 이를 보존하려 했던 과학자들의 노고가 떠올려지는 사례입니다. (아래 영상 참조) 개인적으로는 시간이 더 있었다면 아예 화석 자체를 완전히 분리했을 수도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 발자국의 주인공은 최소한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왜냐하면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는 20 만년 이전에는 없었고 이 발자국은 최소한 80 만년은 넘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후보가 될 수 있는 것은 호모 에렉투스 (Homo erectus) 나 그 근연종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고대 호미닌들이 영국을 걸어다닐 무렵에는 영국이 비교적 온화한 시기였다고 생각됩니다. 당시에는 매머드나 코뿔소를 비롯 지금 영국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다양한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었고 아마도 해안가에서는 이들보다 더 만만한 식량 자원인 굴이나 조개들을 쉽게 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이 무슨 목적으로 걸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 시기의 영국은 호미닌들이 살만한 동네였을 것입니다.
당연히 발자국이 있었던 이야기는 이 호미닌의 어딘가 여기서 살았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발굴은 계속될 것이고 결국 이들과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화석이나 혹은 도구등 다른 흔적 화석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퍼즐들이 맞춰진다면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호모 속이 왜 영국까지 왔는지, 그리고 혹시 영국을 비롯한 유럽 대륙에서 어떻게 적응했고 왜 결국 사라졌는지 등 여러 궁금증이 풀리게 될 지 모릅니다.
한편 이 발자국의 주인공들은 현재 영국인들의 직접적인 조상은 아니지만 (영국인도 물론 동아프리카에서 15 - 20 만년전 진화한 호모 사피엔스의 후손들입니다) 아무튼 영국의 역사를 거의 100 만년 까지 끌어올린 것 같습니다. 이를 기념해서 영국의 국립 자연사 박물관은 '영국 : 백만년의 인간 이야기 (Britain: One Million Years of the Human Story)' 라는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고 합니다.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영국인들에게는 꽤 기념할 만한 일이겠죠.
(그리고 사족 : 갑자기 이 소식을 들으면서 생각난 오래된 우스개 소리가 하나있습니다.
"독일의 고고학자들이 독일의 한 지역에서 50 cm 정도 발굴을 한 끝에 구리 조각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러자 그 다음날 독일 신문에는 '독일에서 5000 년 전의 유선 통신의 증거 발견' 이라는 기사가 실렸죠. 이를 본 프랑스 고고학자들은 가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1 미터를 파들어간 끝에 유리조각을 하나 발견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 다음날 프랑스 신문에는 '프랑스에서 1 만년전의 광통신 증거 발견' 이라는 기사를 특종으로 내보냈습니다.
사태가 여기에 이르자 영국의 고고학자들 역시 가만 있을 수 없었겠죠. 그러나 불운하게도 그들은 2 미터 이상 파들어갔지만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의 기자들도 독일이나 프랑스의 동업자들에게 지지 않으려면 뭔가 특종을 써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날 신문 1 면에 아래와 같은 특종을 보도했습니다.
'영국에서 2 만년전의 무선 통신의 증거가 발견되다'
마지막은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을 것을 근거로 무선 통신을 했을 것이라고 과대 추측 보도를 한 것인데 물론 이웃 나라간 라이벌 의식과 언론의 과장 보도를 소재로한 유머입니다.
아무튼 현실 세계에서는 과학자들의 노력으로 영국이 거의 100 만년 정도 호모 속이 살았던 유서 깊은 나라라는 사실을 밝혀냈으니 위의 유머와는 반대가 될 것 같네요)
참고
Journal Reference:
- Nick Ashton, Simon G. Lewis, Isabelle De Groote, Sarah M. Duffy, Martin Bates, Richard Bates, Peter Hoare, Mark Lewis, Simon A. Parfitt, Sylvia Peglar, Craig Williams, Chris Stringer. Hominin Footprints from Early Pleistocene Deposits at Happisburgh, UK. PLoS ONE, 2014; 9 (2): e88329 DOI:10.1371/journal.pone.0088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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