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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cm 주둥이를 지닌 나방이 진화한 이유는?


 (Hawkmoths and flowers can fall into an evolutionary arms race, with the moths developing longer proboscises to feed on nectar while flowers evolve deeper nectar tubes to ensure the moth continues to pick up pollen. Credit: Florida Museum photo by Jeff Gage)

찰스 다윈에 대한 유명한 일화 중 하나는 처음 보는 꽃을 관찰한 후 미지의 곤충의 존재를 예측한 것입니다. 1862년, 찰스 다윈은 마다가스카르 섬에 자생하는 별난초(Angraecum sesquipedale)를 받아 관찰한 후 꽃관 (nectar spur)의 길이가 매우 긴 것을 보고 주둥이의 길이가 30cm 되는 곤충이 마다가스카르에 존재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터무니 없는 이야기로 들렸고 다윈 역시 살아 생전에 그런 곤충를 보지 못했지만, 그가 죽은 후 1903년에 실제 다윈박각시나방(Xanthopan praedicta)이 발견되면서 다윈의 선견지명이 맞다는 것이 확인됐습니다.

이 사례가 중요한 이유는 단지 특이한 곤충의 존재를 알아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대목은 공진화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는 데 있습니다. 이렇게 특이한 식물은 혼자 존재할 수 없고 같이 진화한 꽃가루 매개 곤충이 존재해야만 합니다.

다윈 박각시나방은 이렇게 공진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이 어떻게 진화했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알려지지 않은 부분들이 많습니다.

플로리다 박물관 맥과이어 나비 및 생물다양성 센터 소장인 아키토 카와하라 (Akito Kawahara, director of the Florida Museum's McGuire Center for Lepidoptera and Biodiversity)와 크리스천 코치 (Christian Couch)는 박각시나방의 주둥이 (probosics, 평소엔 말려 있다가 빨대처럼 펼쳐지는 주둥이)의 진화를 연구했습니다.

연구팀은 먼저 300개 이상의 표본에서 DNA 염기서열을 분석하여 전 세계 1,600여 종의 박각시나방 중 약 20%를 포괄하는 유전 계통도를 구축했습니다. 이 계통도를 바탕으로 박각시나방의 혀 길이를 조사하여 먹이 섭취 행동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각 표본의 주둥이 길이를 측정하기 위해 박물관의 나비목 표본에 있는 박각시나방 표본의 말려 있는 혀를 잘라내어 이완 용액에 담근 후 자로 늘려 길이를 측정했습니다. 혀가 긴 종은 성충이 되어 먹이를 섭취하는 반면, 혀 길이가 1.27cm 미만인 종은 먹이를 섭취하지 않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초기 박각시나방은 성충이 되어 먹이를 섭취하지 않았으며, 야생 누에나방과(Saturniidae)에 속하는 가장 가까운 친척 종들 대부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은 애벌레 시기에는 모든 식물을 다 갉아먹다가 성충이 된 후에는 짝짓기를 하고 알을 낳은 후 죽는 생활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성충 상태에세도 먹이를 먹을 수 있으면 생존 기간을 늘려 짝짓기 기회를 늘릴 수 있고 알을 더 많이 낳을 수 있습니다. 박각시나방에서 성충이 먹이를 섭취하기 시작했다는 최초의 증거는 약 4400만 년 전에 나타났으며, 그 이후로 이 특징이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진화는 매우 다양한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박각시나방은 단순히 먹이를 먹는 종과 먹지 않는 종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종들이 여러 차례 이 특징을 획득하고 잃어버리면서 먹이를 먹지 않는 종에서 먹이를 먹는 종으로, 다시 먹이를 먹지 않는 종으로 전환된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러한 전환이 500만 년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나기도 하는데, 이는 진화의 시간 척도에서 보면 매우 짧은 순간입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박각시나방이 진화 과정에서 긴 혀를 잃게 되는 구체적인 원인을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변화가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일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단서를 얻었습니다. 긴 주둥이를 가진 종들은 입안의 복잡한 근육을 이용하여 혀를 펴고 꿀을 빨아먹습니다. 하지만 꿀을 빨아먹지 않는 박각시나방은 기능적인 입 부분이 없더라도 이러한 근육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해부학적 구조는 환경이 바뀌어 혀를 다시 길게 늘려야 할 때 박각시나방에게 매우 유리한 조건을 제공합니다.

따라서 다윈 박각시나방처럼 30cm 정도 길이의 주둥이를 지닌 나방이 주둥이가 짧은 나방에서 진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쉽게 먹을 수 있는 꿀을 노렸겠지만, 식물 역시 꿀만 빨고 날아가지 못하게 꽃관을 더 길게해 더 깊은 곳에 꿀을 숨겼고 박각시나방은 여기에 대응하는 진화적 군비 경쟁을 통해 더 주둥이를 늘렸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서로 없이는 살 수 없는 극단적 공진화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아무튼 연구 내용과는 상관 없이 직접 본다면 식겁하게 생긴 거대 나방인 것 같습니다. 잘 모르면 드론인 줄 알 정도로 큰 나방인데, 우리 나라에서는 없어서 다행입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26-05-evolutionary-arms-hawkmoths-extremes.html

Christian D. Couch et al, The evolution of proboscis length and feeding behaviour in hawkmoths (Lepidoptera: Sphingidae), Royal Society Open Science (2026). DOI: 10.1098/rsos.251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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