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5억 2000 만년전의 뇌와 신경계



 화석은 우리에게 까마득한 고대 생물들의 정보를 전달해 주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긴 하지만 불행히 그 정보가 제한적일 때가 많습니다. 우연에 의한 기록이기 때문에 전체가 다 기록이 남지 않게 되며 연조직 등 화석화가 어려운 부분은 대부분 기록에 남지 않게 됩니다. 화석에서 이를 상세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경우는 아주 극도로 운이 좋은 경우이죠. 예를 들어 신경 조직 같은 경우가 그렇습니다.


 애리조나 대학의 닉 스트라우스펠드 (University of Arizona Regents' Professor Nick Strausfeld) 와 런던 자연사 박물관의 그레그 에지컴브 (London Natural History Museum's Greg Edgecombe) 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은 새로운 방법으로 5억 2000 만년전에 살았던 생명체의 신경 시스템을 연구했습니다. 


 이들이 연구하는 대상은 갑각류와 절지 동물의 조상뻘에 해당하는 동물로 캄브리아기 초기와 중기에 번성한 Alalcomenaeus  속의 생물입니다. 이들은 커다린 부속지 (great appendage) 를 가진 생물로 그리스어로 큰 발톱을 뜻하는 megacheirans 이라는 명칭으로도 알려져 있는 그룹입니다. 기본적으로 6 cm 미만의 작은 절지 동물인 이들은 주로 얕은 바다에서 서식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중국의 윈난성 쿤밍 부근의 청장 화석층 (Chengjiang formation) 에 이 그룹에 속하는 3 cm 정도 되는 화석을 발견했습니다. 이 화석의 주인공은 현대의 새우나 전갈처럼 앞쪽에 가위 같은 큰 부속지가 있고 체절을 가진 몸통에는 여러개의 다리 같은 부속지가 있어 바다 밑을 헤엄치거나 기어 다녔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생물체는 오늘날에는 매우 흔하지만 5억 2000 만년전에는 새로운 몸을 지닌 생명체였을 것 입니다. 



(새로 발견된 Alalcomenaeus  화석    This is a close-up of the head region of the Alalcomenaeus fossil specimen with the superimposed colors of a microscopy technique revealing the distribution of chemical elements in the fossil. Copper shows up as blue, iron as magenta and the CT scans as green. The coincidence of iron and CT denote nervous system. The creature boasted two pairs of eyes (ball-shaped structures at the top). Credit: N. Strausfeld/University of Arizona)



(측면이 보존된 화석. 현재의 새우와 비슷한 느낌  This is the fossil of the megacheiran Alalcomenaeus, a distant relative of scorpions and spiders. Credit: N. Strausfeld et al.


 이 작은 납짝한 화석에서 신경계를 별도로 확인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연구팀은 매우 보존이 잘 된 이 화석에서 신경계가 화석화될 때 특히 많이 침투하게 되는 철을 특수한 이미징 기술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푸른색은 구리이고 철은 자홍색 (붉은색 + 푸른색) 입니다. 연구팀은 이를 CT 로 확인하고 다시 이를 3D 로 재구성했습니다. (아래 그림)  



(재구성된 신경계의 모습 This is an illustration of the nervous systems of the Alalcomenaeus fossil (left), a larval horseshoe crab (middle) and a scorpion (right). Diagnostic features revealing the evolutionary relationships among these animals include the forward position of the gut opening in the brain and the arrangement of optic centers outside and inside the brain supplied by two pairs of eyes. Credit: N. Strausfeld/University of Arizona)


 그 결과 이 동물의 신경계는 오늘날의 살아있는 화석인 투구게나 혹은 전갈과 비슷했습니다. 이것은 이들이 같은 공통 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이들이 협각아문 (Chelicerata, 절지 동물의 한 아문으로 투구게류, 바다전갈류, 거미류, 바다거미류 등을 의미) 한 그룹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것보다 더 원시적인 협각아문이나 절지 동물의 공통 조상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한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이렇게 오래된 화석임에도 불구하고 뇌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가장 오래된 뇌의 화석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완전히 복원된 신경계로써는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3 cm 정도 되는 작은 화석에서 이렇게 오래된 신경계를 다시 재구성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경이로운 일이라고 해야겠죠.


 이 연구는 네이처에 실렸습니다. 


 참고  


Journal Reference:

  1. Gengo Tanaka, Xianguang Hou, Xiaoya Ma, Gregory D. Edgecombe, Nicholas J. Strausfeld. Chelicerate neural ground pattern in a Cambrian great appendage arthropod. Nature, 2013; 502 (7471): 364 DOI:10.1038/nature12520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9000년 전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다.

( The final reconstruction. Credit: Oscar Nilsson )  그리스 아테나 대학과 스웨덴 연구자들이 1993년 발견된 선사 시대 소녀의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유골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역의 테오페트라 동굴 ( Theopetra Cave )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9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유골의 주인공은 15-18세 사이의 소녀로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괴혈병, 빈혈, 관절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았던 시기는 유럽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이 초기 농경으로 이전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을 것이며 평균 수명 역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아무튼 문명의 새벽에 해당하는 시점에 살았기 때문에 이 소녀는 Dawn (그리스어로는  Avgi)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골에 대한 상세한 스캔과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서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모습은.... 당시의 거친 환경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긴 턱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 그랬듯이 질긴 먹이를 오래 씹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하고 억센 10대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억세보이는 주인공이라도 당시에는 전염병이나 혹은 기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평균 수명은 길지 못했겠죠. 외모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의 거친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해 흥미롭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18-01-te...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