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방 정부 셧다운 사태 (2013) 와 디폴트 위기가 막판까지 치킨 게임 양상을 보이다가 현지 시각으로 10월 16일, 마침내 극적으로 타결되었습니다. 해리 리드(네바다) 민주당 원내대표와 미치 매코널(켄터키) 공화당 원내대표가 대표로 나서 일단 미봉책이긴 하지만 합의안을 도출해 냈고 상원이 이를 가결함에 따라 하원에서 통과시키고 (역시 가결됨) 오바마 대통령이 이에 서명하므로써 일단 이 사태는 일단락 될 수 있습니다.
합의안을 보면 일단 부채 한도에 대해서 2014 년 2월 7일까지 미국 재부무는 한도 없이 국채를 더 발행해 빚을 빌릴 수 있게 됩니다. 새로운 부채 한도 합의에는 실패했지만 일단 디폴트 상태를 막기 위해 한시적인 조치를 시행한 셈으로 다시 부채 한도를 두고 양당간의 힘겨루기가 내년 초에 또 나타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연방 정부 지출 연장안 역시 급한 불을 끄기 위한 미봉책으로 2014 년 1월 15일까지 기존 수준에서 지출이 가능하다는 선까지만 합의했습니다. 연초부터 논란이된 시퀘스터에 대해서는 일단 유지하는 방향으로 잠정 합의했지만 이 역시 민주 - 공화 양당간의 입장 차이가 적지 않아 과연 추가 협상에서 타결이 가능할지는 두고봐야 알 수 있습니다.
민주당은 오바마케어를 관철시키려고 하는 반면 공화당은 이에 맞서 오바마케어를 최소한 축소하든지 아니면 폐지하려는 의도를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단 오바마 대통령은 오바마케어에 대해서 어떤 양보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시점까지는 공화당에 밀린 건 아니지만 공화당 역시 완전히 포기한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이 대립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하원 의장인 존 베이너 (공화당) 는 우리는 잘 싸웠지만 당장 이기지는 못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오바마케어의 축소 및 폐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언급했는데 이는 내년초까지 진행될 예산안 및 부채 한도 협상 역시 순조롭지 않을 것임을 시사하는 것입니다. 현재 민주 공화 양당은 상하원 합동으로 장기적인 재정 적자 감축을 위한 초당적 위원회를 구성 12월 13일까지 메디케어/메디케이드, 그리고 사회 보장 연금등에 대한 조정을 포함한 예산안을 내놓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양측의 입장차이가 적지 않아 쉽게 결론이 내려지리라 믿기는 어려운 상태입니다.
이전 포스트에서 이번 셧다운의 배경에 대해서 설명드리긴 했지만 사실 간단히 설명하기는 곤란할 만큼 여러가지 문제가 첨예하게 얽혀 있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합니다. 민주 공화 양당이 서로 쉽게 합의하기 힘들 정도로 의견 차이가 크며 이들이 셧다운 상태는 물론 국가 디폴트 위기 까지 감수하고서라도 정쟁을 벌일 준비도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번 사태가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습니다.
(2013 년 10월 1일. 셧다운으로 인해 폐쇄된 자유의 여신상.
지난 10월 8일부터 14일 사이 블룸버그에 의하면 세계 제일의 안전 자산으로 여겨진 미국 국채 금리는 1 개월물을 기준으로 리보 (런던 은행간 금리) 를 넘어섰습니다. 이는 2001 년 이후 블룸버그가 해당 자료를 작성한 이래 처음있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미국 국채, 다시 말해 미국에 대한 신뢰가흔들린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것은 좀더 범위를 좁히면 미국 정치권이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신뢰성과 예측 가능성은 경제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인데 미 정치권의 극한 대립은 이전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상황 (즉 셧다운 + 디폴트) 까지 가능할 지 모른다는 우려를 현실화 시켰습니다. 미국 국채가 가장 중요한 안전 자산으로 분류되는 이유는 어떠한 경우에도 디폴트는 없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인데 미국 정치권이 전혀 그래야할 이유 없이 이 신뢰를 흔드는 행동을 한 것입니다. 16.7 조 달러라는 막대한 돈을 빌렸으면 채권자들에게 '아무 문제 없이 돈 돌려 받을 수 있다' 라고 확신 시켜야 하는데 정 반대의 행동을 한 셈이죠. 그것도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과는 무관한 정쟁 때문에 말입니다.
미국 안팍에서 이에 대한 비판 여론은 매우 거센 상태입니다. 워렌 버핏 버크셔 헤서웨이 회장은 합의안이 성사되기 전 CNBC 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치권의 대치를 '정치적 대량 살상 무기' 라고 비난했습니다. 핌코의 빌 그로스도 '워싱턴의 기능장애는 불치병' 이라고 원색적인 비판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투자자들과 IMF, 세계은행등 주요 경제 기관의 책임있는 사람들이 모두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힐 디폴트 마저 기꺼이 감수하려는 일부 미국 정치인의 태도에 실망을 금치 못했습니다.
물론 실제 디폴트까지 이르지 않고 그전에 합의를 본 점은 다행이긴 하지만... 한계 시간 하루 전에서야 극적 타협 (이라기 보단 미봉책) 을 마련했다는 점은 실망스럽습니다. 계속해서 비슷한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아예 부채 한도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 개인 의견입니다. (사실 이전에도 언급한 바와 같이 부채 한도를 의회에서 법률로 정하는 국가는 몇 안됩니다. 워렌 버핏도 이 점을 지적하면서 부채 한도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죠. 참고로 우리 나라도 부채 한도는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셧다운 및 디폴트 위기 사태에서 미국이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대신 미국은 신뢰를 잃었습니다. 미국 정치권은 국가 부도 위기 사태를 앞에 두고도 극한 대립을 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세계에 보여줬습니다. 신뢰를 얻는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잃는데는 한순간이면 충분합니다. 더 이상 신뢰를 잃기 전에 큰 틀에서의 합의가 절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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