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빅뱅후 인플레이션의 증거 그리고 중력파의 검증




 대략 137 - 138 억 년 쯤 빅뱅이 발생했을 때 우주는 급팽창 (cosmic inflation) 을 겪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우주 초기의 인플레이션은 우주가 왜 현재 이런 모습 (짧은 시간안에 급격히 팽창했기 때문에 우주의 모습이 어디나 비슷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음) 인지 설명하는데 매우 중요한 과정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우주 초기 인플레이션에 대해 많은 이론적 연구 결과들을 내놓았지만 정작 문제는 이를 실제로 입증할 관측 증거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과학에서 실제 관측이나 실험으로 입증하기 전에 우선 이론이 나오는 경우는 드물지 않지만 그 이론이 견고한 기반 위에 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과학적 증거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이를 입증하기 위한 여러 관측 시도가 있었지만 사실 아주 오래전 우주에서 발생한 일에 대한 증거를 찾는 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단순화 시킨 우주의 역사. 우주는 계속 팽창해 왔지만 특히 초기에 인플레이션이라는 급격한 팽창시기를 겪었던 것으로 생각되어 왔음.  Credit: NASA/WMAP Science Team )


 나사의 JPL, 하버드 스미소니언 천체물리학 연구소, 캘리포니아 공대, 미네소타 대학, 샌디에고 대학, 토론토 대학 등 여러 연구 기관과 대학들이 합동으로 진행 중인 BICEP & Keck Array 는 남극에 설치된 우주 배경 복사 실험 기구로 특히 그 중에서 BICEP2 는 우주 배경 복사의 편광 현상 (polarization of CMB) 을 측정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하고 있습니다.   





(BICEP2 의 기지 소개 영상)  




 지난 2010 년에서 2012 년 사이 관측을 진행한 BICEP2 는 150 GHz 로 작동하는 26 cm 구경의 일종의 망원경으로 우주 극초기 이후에 생긴 빅뱅의 흔적에서 배경 복사의 파동을 검출하는 것이 주 임무입니다. 이 데이터를 분석한 과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의 직접적인 증거를 발견하는데서 나아가서 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태양빛은 지구 대기를 통과하면서 대기 중 원자와 반응해서 산란되거나 편광 (polarized light  빛은 횡파이며 진행방향을 포함한 면 안에서 진동하고 있있는데, 이중 특정 방향이 탁월한 빛을 편광이라고 함) 될 수 있습니다. 우주 배경 복사 역시 전자기파의 일종이므로 동일하게 우주 안의 원자와 전자와 반응해 편광 현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연구팀이 찾고 있던 것은 B-mode 라고 불리는 특정한 타입의 편광현상으로 이는 고대의 빛이 겪었던 일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중력파 (gravitational wave) 로 이것은 우주 배경 복사가 지나는 시공간을 왜곡시키기 때문에 이 B-mode 에 특수한 방향으로 소용돌이 치는 패턴을 만들게 됩니다. 그런데 연구팀이 실제로 이것을 측정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이는 최초로 중력파를 검출한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21 세기 과학사의 쾌거로 손꼽힐 만한 업적입니다.  






(실제 측정 영상. 검은색 막대는 편광의 방향을 그린 것. 아래는 일부를 확대한 사진.  This image provided by the BICEP2 Collaboration shows slight temperature fluctuations, indicated by variations in color, of the cosmic microwave background of a small patch of sky and the orientation of its polarization, shown as short black lines. Researchers say since the cosmic microwave background is a form of light, it exhibits all the properties of light, including polarization. The changes in a particular type of polarization, indicated here, are theorized to be caused by gravitational waves. These waves are signals of an extremely rapid inflation of the universe in its first moments. (AP Photo/BICEP2 Collaboration))


 중력파는 아인슈타인에 의해 1916 년 그 존재가 예측되었으며 현재의 상대성 이론이 옳다면 반드시 존재할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그 동안 이를 측정하기 위해서 무수히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으나 이를 직접 검출하는 일은 극도로 어려웠습니다. BICEP2 의 결과는 중력파를 직접 관측한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인 방법으로 이를 측정해 실제로 존재한다는 강력한 관측 증거를 남겼다는 데 큰 의의가 있습니다. 이제 과학자들은 중력파가 실제로 우주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한 측정이 가능할지 모릅니다.


 이번 연구 결과는 1980 년 이론 물리학자 앨런 구스 (Alan Guth) 가 이론적으로 예언한 우주 초기의 인플레이션을 강력히 지지하는 결과를 담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98 년만에 중력파에 대한 이론을 실제로 검증한 것은 물론 34 년전 나왔던 인플레이션 이론을 검증한 것이기 때문에 과학적으로 매우 중대한 실험으로 인정받는 분위기 입니다.  


 물론 과학의 특성상 앞으로의 검증과 후속 연구는 필연적이지만 앞으로 검증 과정을 거쳐 살아남는다면 이 관측 결과는 21 세기 초반에 행해진 가장 중요한 과학적 관측으로 역사에 남게 될 것 같습니다. 인플레이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모습을 결정했고 중력파는 우주에 사는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힘이기 때문이죠. 이것에 대한 이해 없이는 왜 우리가 이런 우주에 살고 있고 어떤 힘의 지배를 받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그리고 결국 이것의 이해 없이는 우리가 누구이고 왜 이곳에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답하기 힘들 것입니다. 이 연구는 그래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참고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9000년 전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다.

( The final reconstruction. Credit: Oscar Nilsson )  그리스 아테나 대학과 스웨덴 연구자들이 1993년 발견된 선사 시대 소녀의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유골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역의 테오페트라 동굴 ( Theopetra Cave )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9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유골의 주인공은 15-18세 사이의 소녀로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괴혈병, 빈혈, 관절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았던 시기는 유럽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이 초기 농경으로 이전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을 것이며 평균 수명 역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아무튼 문명의 새벽에 해당하는 시점에 살았기 때문에 이 소녀는 Dawn (그리스어로는  Avgi)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골에 대한 상세한 스캔과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서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모습은.... 당시의 거친 환경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긴 턱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 그랬듯이 질긴 먹이를 오래 씹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하고 억센 10대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억세보이는 주인공이라도 당시에는 전염병이나 혹은 기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평균 수명은 길지 못했겠죠. 외모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의 거친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해 흥미롭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18-01-te...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