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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국가 부채 문제는 괜찮은가 ? (2)





 2. 유동성의 함정


 1991 년에서 1992 년 사이 일본 은행 (Bank of Japan) 과 일본 정부는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여러가지 조치들을 시행합니다. 그 중에 하나는 금리를 거의 0 에 가깝게 유지하는 제로 금리 정책입니다. 이 정책은 여러 비판을 받았는데 실제 일본 경제에 도움이 되었는지 아니든지 간에 일단 일본 경제를 구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훗날 여러가지 이유로 금리를 올릴 수도 없어 제로금리는 기복은 있었어도 꽤 장기간 유지되었습니다. 일본은 최근 2011 년 11월에도 기준 금리가 0 - 0.1 % 로 동결되 글자 그대로 제로 금리 입니다. 그런데 이것 만으로도 충분치 않아서 일본 은행은 자산 매입 프로그램을 가동해서 양적 완화 정책을 시행합니다. 


 이렇게까지한 최초 이유는 엄청난 디플레이션 가능성 및 자산 가치 폭락 때문이었습니다. 당초 일본의 주식과 부동산은 지나치게 과열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후 수년간 그 가치가 1/2 - 1/3 수준으로 폭락하면서 여기에 투자했던 개인은 물론 금융 기관 및 기업 - 특히 80 년대 말 당시 여유 자금이 있던 기업들은 재테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면서 이런 거품 자산에 엄청난 돈을 투자 - 들이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어야 했습니다. 


 그 결과 내수 시장은 얼어붙고 돈이 돌지 않는 디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게 됩니다. 이후 일본정부는 20년간 계속 간헐적인 유동성 공급에 치중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증가된 유동성이 일본 경기를 의미있는 수준으로 - 물론 2000년대 초중반엔 다소 회복세를 보임 - 되돌리지는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 미국의 경제 학자 폴 크루그먼은 일본이 유동성 함정 (liquidity trap) 에 빠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유동성의 함정이란 경제주체들이 돈이 넘처나는데도 돈을 움켜쥐고 시장에 내놓지 않는 상황을 이야기 합니다. 이는 케인즈가 1930 년대 처음 사용한 용어로 대공황을 설명하기 위한 용어 중 하나였으나 현재는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Lost decade : 현재는 잃어버린 20 년이라고 해야 할 상태) 를 설명할 때 더 널리 언급되는 용어입니다. 


 90 년대 초반에는 어느 정도 이런 상황이 이해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당시 퇴직금이나 연금을 모두 주식에 쏟아부었다가 알거지가 된 50 대, 60 대의 사연은 별로 특별할 것도 없는 흔한 이야기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따라서 90 년대 초반 일본의 내수 소비가 급격히 위축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상황이 일시적이 아니라 상당히 오래 지속되었다는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급격히 위축된 내수 경기를 진작하고자 여러 차례에 걸쳐 1000 억 달러 규모의 경기 부양책을 내놓았습니다. 이 중에는 훗날 효과가 상당히 의심되는 것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여러 사회 간접 자본 시설 확충입니다. 


 본래 일본은 산지가 많고 지진에 대한 내진 설계도 필요하기 때문에 도로 건설에 많은 돈이 들어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잃어버린 10 년간 건설된 수많은 도로 가운데는 정작 건설해 놓고 전혀 사용하지 않는 도로 들도 꽤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민자를 유치해 도로를 건설하고 통행세를 걷어 자금을 회수하려는 계획은 정작 통행료 때문에 교통량이 극히 미미해 노루나 사슴이 차량보다 더 많은 웃기는 일이 실제로 현실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렇게 아무도 다니지 않는 도로나 승객이 없는 공항은 꼭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사례들이 존재하는 데 일본에서는 이와 같은 일이 더 심각하게 일어났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도로를 열심히 건설한 덕분인지 2011 년 일본 통계에 의하면 일본에는 무려  1,203,600 km 의 도로가 존재합니다. 이 중 일반 고속 도로는 5만 km, 국가 고속 도로 (national express highway) 는 7600 km 가 존재합니다. 


 문제는 이렇게 해서 돈을 풀었는데도 불구하고 경제 주체들이 소비와 투자를 전혀 늘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90년대 초의 손실이 너무 큰 탓에 공포심리가 자리잡은 것도 이유였습니다. 즉 막대한 자산 손실을 본 이후 안전 자산에 대한 선호 심리가 커져 여유 자금이 저축이나 일본 국채로 몰리기 시작했고 소비나 투자로 연결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 일본 정부가 한번에 과감한 경기 부양책을 쓴게 아니라 여러차례에 나눠서 소극적인 정책으로 일관한 것도 나중에는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됩니다. 이 선례로 말미암아 2008 년 글로벌 경제 위기 때는 각국 정부가 더 과감한 경기 부양책을 동원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 성장율은 정체되어 세수는 줄어든 반면 경기 진작을 위해 적자 재정을 편성하다 보니 일본의 국가 부채가 점점 증가하게 됩니다. 본래 일본의 국가 부채는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90 년대 부터 시작된 경기 부양책과 세수 감소로 인해 1996 년 경에 GDP 의 100 % 에 도달합니다. 사실 경기 부양책이라고 실시된 토목 공사가 경기는 부양하지 못하면서 부채만 잔뜩 늘렸기 때문에 일본 경제의 새로운 재앙으로 떠오른 것입니다.


    
(세계 주요 국가의 GDP 대비 부채 증가. 1995 년에 일본의 부채 (J) 는 다른 미국 (USA), 이탈리아 (I), 영국 (UK), 독일 (D) 프랑스 (F) 와는 차원이 다른 수준으로 증가하기 시작  http://en.wikipedia.org/wiki/File:Dept.svg ) 


 일본이 이렇게 경기 부양책을 위해 오랜 시간 많은 비용과 유동성을 공급했는데도 경기가 진작되지 못한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가 지목될 수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효과를 보는데 시간이 오래걸리는 사회 간접 자본 투자에 비중을 너무 많이 할애했고 그 마저도 상당히 비효율적으로 투자되었습니다. 일본 경제의 주요 주체들이 버블 붕괴의 악몽을 너무 오래 간직하고 있어 적극적인 투자와 소비에 나서지 않았던 것도 주요 이유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안할 때 한가지 더 언급해야 하는 것은 90 년대 일본의 자산 가치 하락 폭이 너무 커서 왠만한 수준의 부양책으로는 해결하기 힘든 수준이었다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일본의 부동산 가치는 90년에 2455 조엔에서 2000 년에 1535 조엔으로 10년에 걸쳐 큰폭으로 하락했습니다. 처음에는 버블 붕괴후 대규모 불량 채권이 그리고 나중에는 디플레가 계속 부동산 가치를 하락 시키면서 재산 수준이 감소하자 모두들 소비를 줄였던 것입니다.  


 추가로 한가지 더 언급하자면 일본의 정치적 리더쉽 부재 역시 이유 중에 하나로 지목되곤 했습니다. 여러 정파가 야합해서 만들어진 자민당은 당내 계파간의 대립으로 타협과 막후 협상으로 총리가 들어서곤 했기 때문에 실세 총리가 아닌 얼굴 마담 같은 역활을 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고 위기 상황에서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습니다.


 가끔 실세 총리가 있어도 오래 집권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고 실세라도 다른 선진국에 비해 권한이 작았습니다. 일본 정치권이 위기 극복에서 보인 무력감으로 인해 결국 자민당은 정권은 무너지게 되지만 자민당 이후 정권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경제 회복이라는 과업을 수행하기엔 모두 부적합했습니다.  


 여기에 일본 경기가 살아나지 못한 여러 이유 가운데서도 항상 논의의 중심에 서게 되는 것은 바로 엔고 현상입니다. 일본 경제는 사경을 헤메는데 일본 화폐의 국제시장에서의 가치는 계속 높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 이상한 현상은 80 년대 부터 지금까지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면서 일본 경제를 압박해 오고 있습니다. 


 유동성의 함정, 엔고 현상과 일본의 높은 부채 문제는 어느 정도 밀접한 연관 관계를 가지기 때문에 이야기를 다시 80 년대 플라자 합의 때로 돌려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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