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일본의 국가 부채 문제는 괜찮은가 ? (1)



 예고했던 대로 일본 국가 부채에 대해 연재 포스팅을 시작해 봅니다. 이전에 말했던 것 처럼 글쓴이가 경제나 회계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이점을 참조해서 그냥 참고로만 보시기 바랍니다. 



 1. 일본 국가 부채의 기원


 일본이 2차 세계 대전 후 폐허에서 1980년대까지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는 것은 특별히 설명이 필요없을 만큼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여기에는 1950 년 6.25 동란도 한 몫을 했고 1950 년대 전반적으로 선진국 경기가 좋았던 것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미국에 대항해서 전쟁을 치뤘을 때 보다 오히려 미국의 보호를 받으며 있었을 때 일본 경제는 더 고도 성장을 했습니다. 


 미국의 주도하는 글로벌 경제안에서는 일본에게 특히 필요한 두가지가 해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첫번째는 자원이었는데 2차 대전 전에 일본은 이를 식민지에서 모두 충당하려 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일이었고 오히려 식민지 획득을 위한 엄청난 소모전을 벌이면서 얼마 되지 않는 자원을 모두 소진했습니다. 


 2 차 대전 시기 일본은 석유 자원을 얻기 위해 이른바 남방 자원지대 확보에 광분했지만 성과는 미미했습니다. 식민지에서 자원을 안정적으로 수입하기 위한 시도는 결국 미국의 압도적 해군력과 미 잠수함대의 활약으로 일본이 패망 직전에는 거의 고립되는 상황으로 결말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여러 산유국에서 막대한 석유 자원을 수입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글로벌 경제가 성장하면서 일본 처럼 부존 자원이 부족한 국가도 산업화에 필요한 막대한 자원을 얻기 쉬워졌습니다.


 전쟁 직후 일본에 두번재로 부족한 것은 물건을 내다팔 시장이었습니다. 일본의 내수시장이 완전히 붕괴된 시점에서도 일본은 수출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일궈냈습니다. 일본이 이전에 가지고 있던 식민지와 점령지는 대개 경제적으로 낙후되어 있었지만 새로 열린 선진국 시장은 보다 큰 구매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은 역설적으로 전쟁에서 패배한 후 경제적으로 더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1930 년대 일본의 전체 GDP 는 미국의 10 분의 1 수준 (달러화에 대한 엔화의 가치에 따라 변동) 에 불과했습니다. 1955 년 일본 경제 성장 초기에 일본의 1 인당 GDP 수준도 사실 미국의 10%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1995 년에 (물론 엔고 덕이긴 하지만) 일본의 1 인당 GDP 는 미국의 151.5% 에 달하게 됩니다. 일본의 1 인당 GDP 가 미국을 넘어선 것은 사실 2차 대전 이전 시기라면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1935 년 일본의 1인당 GDP. 당시 식민지였던 한국과 타이완은 빼고 계산. 1인당 GDP 자체가 미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았고 인구도 절반 수준에 불과   출처 : Wiki)

 이와 같은 원료 시장에 대한 접근성 확대 및 소비 시장으로의 접근성 확대의 이점은 좀 더 후에 경제 성장을 시작하는 한국도 같이 누린 이점이었습니다. 아무튼 일본은 이와 같은 시스템의 가장 큰 수혜자였습니다. 1960 년대 일본은 이전이라면 생각하기 힘들었던 연 10% 의 고도 성장을 달성했으며 오일 쇼크가 몰아 닥친 1970 년대에도 4-6% 대의 성장을 이룩했습니다.


 물론 일본의 고도 성장이 위의 2가지 요인에 의해서만 가능했던 것은 아닙니다. 당시 일본이 대량으로 고학력의 근로자들을 배출해냈던 것과 경제 성장을 지상과제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 규모에 경제에서 앞서간 일본의 대기업 등 여러 요소가 같이 작용한 결과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경제 기적을 바탕으로 1980 년대 일본의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으로 급부상했습니다. 1980년대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을 배우자는 의견이 강했을 만큼 일본은 앞서가는 경제 대국이었고 이런 인식은 오랬동안 우리에게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왜 일본이 지금처럼 거대한 부채더미 위에 올라서게 되었는지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일본 경제의 전성기이던 1980 년대 일본의 경제는 정점을 찍고 하락세로 반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제 성장율도 점점 둔화되어 4% 정도로 감소했는데 고도 성장기가 지나면서 생기는 문제들이 고스란히 일본 경제에도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일본의 GDP 성장율  日本の実質GDP経済成長率の推移 (1956年~2008年)
(正式系列で作成) 68SNA: 1956年~1981年の実質GDP経済成長率 (平成2年(1990年)基準) 93SNA(H7) : 1981年~1995年の実質GDP経済成長率 (平成7年(1995年)基準)
93SNA(H12): 1995年~2008年の実質GDP経済成長率 (平成12年(1995年)基準)  CCL 에 따라 복사 허용 저자 표시  저자  :  Wushi-En )


 당시 나타난 첫번째 문제는 오랜 경제 호황으로 인해 증가한 막대한 자산들이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되어 거대한 버블을 형성한 것입니다. 이는 미국의 대공황 직전이나 2000 년대 중반 미국 부동상 과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장기간 호황기 이후에 자주 나타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경제적으로 부유해지면 좋은 주택에 대한 수요가 늘기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오르는게 일반적이긴 하지만 일본은 본래 토지가 부족해서 이 상승 속도가 더 컸고 이렇게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르자 미래 가격 인상을 기대한 투기성 자본이 유입되어 부동산 가격은 더 급격히 치솟게 됩니다.   


 여기에 일본 정부가 86 년의 일시적 경기 후퇴를 극복하기 위해 - 여기에는 나중에 설명할 플라자 합의도 연관이 있었음 - 금리를 낮추고 유동성을 공급한 것도 80 년대말의 자산 버블과 연관이 있습니다. 또 한가지 더 언급한다면 80 년대 말에는 기업도 자금이 풍부해서 이를 부동산등에 투자했고 금융 기관이나 개인 모두 자산 거품에 투자하는데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막대한 여유 자금이 다시 주식 시장으로 유입되어 일본의 닛케이 지수도 3만선을 넘는 등 큰 호황을 맞게되고 일본 국민들은 NTT 를 비롯한 우량주의 가치를 예상보다 더 크게 확신해서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게 됩니다. 80년대 말은 일본 경제의 최대 활황기 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실제보다 더 거대한 버블이 탄생한 시기였습니다. 


 일본인 스스로도 이를 버블 경기 (バブル景気 baburu keiki ) 라 불렀는데 이런 버블을 특히 꺼질 때 매우 고통스러운 법입니다. 1989 년 12월 29일 닛케이 지수는 장중 한 때  38,957.44 로 4만 근처에서 정점을 찍었습니다. 비슷한 시기 일본 부동산을 모두 팔면 미국 부동산을 다 살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두는 수년 만에 1/2 - 1/3 로 가격이 폭락했고 여기에 엄청난 투자를 했던 일본인들은 천문학적 손실을 보게 됩니다. 언젠가 꺼질 버블이긴 했지만 특히 일본 정부는 엄청난 버블에 놀라 1989 년 이자율을 높였고 자금 공급이 끊기자 버블은 역시 급격히 가라앉게 됩니다. 


 일본 경제에서 두번째로 나타난 심각한 문제는 바로 엔고 현상입니다. 일본은 수출 위주로 경제를 성장시켰고 어느 시점 부터는 매년 막대한 무역 흑자가 발생했습니다. 이는 결국 일본의 엔화 가치를 크게 상승시켰는데 여전히 수출 위주의 경제 시스템을 가진 일본으로써는 다시 말해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는 일본내 기업들이 중국등 다른 국가에 공장을 이전하게 만드는 동기였으며 일본내에는 산업공동화가 점차 일어나게 됩니다. 

 여기에 엔고의 틈세를 타고 한국이나 대만, 중국 기업들이 일본 기업들이 차지했던 시장을 점차 잠식해 들어가는 것도 문제 였습니다. 

 특히 일본의 버블 붕괴이후 내수 시장이 위축되자 일본 기업들은 더 수출에 매달렸고 결국 엔고현상은 더 심해졌습니다. 궁극적으로 이런 극심한 엔고현상은 일본 경제를 더 파국으로 몰고 갔는데 기여했습니다. 잃어버린 10년 이라 불리는 1990 년대 (그리고 사실 지금 시점에서는 잃어버린 20 년이라고 해도 괜찮은 상황) 일본은 침체된 내수 경기를 살리기 위해 여러 차례 경기 부양책을 내놓게 되는데 이 경기 부양책이 오히려 일본을 더 수렁으로 몰고 가게 됩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9000년 전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다.

( The final reconstruction. Credit: Oscar Nilsson )  그리스 아테나 대학과 스웨덴 연구자들이 1993년 발견된 선사 시대 소녀의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유골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역의 테오페트라 동굴 ( Theopetra Cave )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9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유골의 주인공은 15-18세 사이의 소녀로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괴혈병, 빈혈, 관절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았던 시기는 유럽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이 초기 농경으로 이전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을 것이며 평균 수명 역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아무튼 문명의 새벽에 해당하는 시점에 살았기 때문에 이 소녀는 Dawn (그리스어로는  Avgi)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골에 대한 상세한 스캔과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서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모습은.... 당시의 거친 환경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긴 턱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 그랬듯이 질긴 먹이를 오래 씹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하고 억센 10대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억세보이는 주인공이라도 당시에는 전염병이나 혹은 기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평균 수명은 길지 못했겠죠. 외모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의 거친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해 흥미롭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18-01-te...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