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AK - 47 소총의 아버지 칼라슈니코프 별세


(미하일 칼라슈니코프 Michael Kalashikov/Михаил Калашников  10 November 2009   


 20 세기는 물론 21 세기까지 전세계 개인화기의 영원한 베스트셀러 AK - 47 소총 및 그 파생형의 아버지 마하일 티모페에비치 칼라슈니코프 (Mikhail Timofeyevich Kalashnikov  Михаил Тимофеевич Калашников) 가 2013 년 12월 23일 (현지시각) 에 별세했다고 러시아 우드무르티아 자치 공화국 대통령 대변인인 빅토르 출코프가 밝혔습니다. 칼라슈니코프는 지난달 17 일 부터 위장출혈로 치료를 받았다고 하며 경과가 악화되어 사망했다고 합니다. 향년 94 세 입니다.


 총기 설계자 가운데서는 보기 드물만큼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평가되는 칼라슈니코프는 1919 년 구소련의 쿠리야 (Kurya, Altai Krai) 에서 태어났습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어렸을 때 부터 기계에 능했고 문학에도 관심이 있어서 본래 어릴 적 장래 희망은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스탈린 시대 소비에트 인민의 삶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아서 그의 가족도 1930 년 시베리아로 추방되 농사와 사냥을 하면서 힘겹게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해야 했습니다. 어린 시절 미하일 역시 건강이 좋지 않아서 몇번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그런 그가 90 세 넘어서까지 정정하게 장수한 건 놀라운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1938 년 붉은 군대에 입대한 칼라슈니코프는 작은 체구와 기계에 능숙한 점 때문에 탱크 부대에 배속되었으며 이 때부터 여러가지 발명을 시작했다고 하네요. 그는 24 탱크 연대와 108 탱크 사단에서 T - 34 를 몰았는데 1941 년 10월에 있었던 브리얀스크 전투 (Battle of Bryansk) 에서 부상을 당해 1942 년 4월까지 병원 신세를 졌다고 합니다. 당시 엄청나게 많은 소련 군인이 사망한 시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나름 천운이었던 셈이죠. 


 다시 현역으로 복귀한 칼라슈니코프는 전선으로 가는 대신 무기 개발 쪽으로 배속되게 되는데 그가 이전에 제출한 서브 머신 건 설계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이 설계는 채택되지는 않았지만 이를 본 개인 화기 개발팀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불러들였던 것입니다. 마침내 전설의 AK - 47 이 탄생할 바탕이 마련된 셈이죠. 


 1944 년 칼라슈니코프는 7.62 X 39 mm 탄환을 이용한 새로운 돌격 소총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는데, 이 당시 독일의 전설적인 돌격소총의 원조 StG 44 의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 적지 않았습니다. 다만 훗날 칼라슈니코프 본인이 밝힌 바에 의하면 1942 년 병원에 입원 당시부터 AK - 47 를 구상했다고 반박한 바 있습니다. 어느 것이 진실이든 1947 년 등장한 칼라슈니코프 자동소총 (Avtomat Kalashnikova model 1947) 은 StG 44 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자동화기가 되었습니다.  



(AK - 47 소총. 초기 변형 모델 The Soviet 7.62 x 39 mm AK-47 assault rifle. This is a first model variation that features a milled receiver.  Photo : Cpl. D.A. Haynes )


(1949 년 당시의 미하일 칼라슈니코프   ) 




 이후 AK  - 47 은 널리 알려진 AK - 74 계열을 비롯해서 수많은 파생형이 개발되었으며 심지어 2012 년에는 새로운 파생형 Ak - 12 가 새로 양산되는 등 지금도 진화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미하일 칼라슈니코프는 AK - 47 / 74 계열은 물론 무려 150 종에 이르는 다양한 총기를 설계해서 구소련과 러시아에서는 조국의 영웅 대접을 받았습니다. (러시아 연방 영웅 훈장을 바롯한 수많은 훈장과 스탈린/레닌상을 비롯한 많은 상을 받았음) 


 '해적판' 을 포함 지금까지 생산된 AK - 47 계열 총기의 생산 대수는 총 1 억대로 추정되며 전세계 소총 5 정 가운데 한정이 AK - 47 계열이라는 추정이 있을 만큼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총기가 되었죠. 다만 칼라슈니코프 본인은 이에 대한 라이센스가 없어서 이로 인한 경제적 이득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아무튼 눈이오나 비가 오나 먼지가 들어가나 물이 들어가나 어떤 열악한 환경에서 조차 방아쇠를 당기면 나가는 신뢰성과 어린이도 한시간만 배우면 조작법을 익힐 만큼 단순한 조작법, 그리고 저렴함의 삼위일체로 인해 AK - 47 은 개인 화기계의 가장 유명한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모잠비크 국기에는 아예 이 소총이 등장합니다. 


(모잠비크 국기 )    


 그런데 소총이 가져야할 모든 미덕을 두루 갖춘 덕에 AK 소총과 칼라슈니코프는 처음 의도와는 상관없이 비난의 표적이 되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국제 분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 덕분에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한 총기로도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이죠. 이에 대해서 칼라슈니코프는 이것이 본래 자신이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는 점을 여러번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했던 시기에 군에 복무했던 칼라슈니코프는 조국을 지킬 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남은 인생동안 최선을 다해 소총을 설계한 것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살아 생전 칼라슈니코프는 '나는 내 발명이 자랑스럽지만 테러리스트에 의해 사용된다는 점은 슬프다' '내가 총기 설계자가 된 것은 나치 독일 때문이다. 나는 항상 농기계를 만들기를 원해왔다' 라고 이야기 하기도 했죠.


 분명 구소련과 러시아의 자랑스런 영웅이기도 하지만 또한 수많은 무고한 민간인을 죽게 만든 무기를 설계한 장본인이기도 하다는 건 어느 한쪽을 두둔하기 힘든 딜레마입니다. 아무튼 한 시대를 풍미한 무기의 설계자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밀리터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무시하고 넘어가기는 힘든 뉴스겠죠. 제 생각에 한가지 확실한 것은 칼라슈니코프 자동소총이 아마 21 세기 초반은 말할 것도 없고 어쩌면 100 년 이상 사용되는 개인화기가 될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많이 만들어진 무기가 쉽게 없어질 순 없는데다 현재는 물론 근 미래에 사용하기에도 전혀 모자람이 없는 무기이기도 합니다.   


 참고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세상에서 가장 큰 벌

( Wallace's giant bee, the largest known bee species in the world, is four times larger than a European honeybee(Credit: Clay Bolt) ) (Photographer Clay Bolt snaps some of the first-ever shots of Wallace's giant bee in the wild(Credit: Simon Robson)  월리스의 거대 벌 (Wallace’s giant bee)로 알려진 Megachile pluto는 매우 거대한 인도네시아 벌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말벌과도 경쟁할 수 있는 크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암컷의 경우 몸길이 3.8cm, 날개너비 6.35cm으로 알려진 벌 가운데 가장 거대하지만 수컷의 경우 이보다 작아서 몸길이가 2.3cm 정도입니다. 아무튼 일반 꿀벌의 4배가 넘는 몸길이를 지닌 거대 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메가칠레는 1981년 몇 개의 표본이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추가 발견이 되지 않아 멸종되었다고 보는 과학자들도 있었습니다. 2018년에 eBay에 표본이 나왔지만, 언제 잡힌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 벌은 1858년 처음 발견된 이후 1981년에야 다시 발견되었을 만큼 찾기 어려운 희귀종입니다. 그런데 시드니 대학과 국제 야생 동물 보호 협회 (Global Wildlife Conservation)의 연구팀이 오랜 수색 끝에 2019년 인도네시아의 오지에서 메가칠레 암컷을 야생 상태에서 발견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메가칠레 암컷은 특이하게도 살아있는 흰개미 둥지가 있는 나무에 둥지를 만들고 살아갑니다. 이들의 거대한 턱은 나무의 수지를 모아 둥지를 짓는데 유리합니다. 하지만 워낙 희귀종이라 이들의 생태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동영상)...

몸에 철이 많으면 조기 사망 위험도가 높다?

 철분은 인체에 반드시 필요한 미량 원소입니다. 헤모글로빈에 필수적인 물질이기 때문에 철분 부족은 흔히 빈혈을 부르며 반대로 피를 자꾸 잃는 경우에는 철분 부족 현상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철분 수치가 높다는 것은 반드시 좋은 의미는 아닙니다. 모든 일에는 적당한 수준이 있게 마련이고 철 역시 너무 많으면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철 대사에 문제가 생겨 철이 과다하게 축적되는 혈색소증 ( haemochromatosis ) 같은 드문 경우가 아니라도 과도한 철분 섭취나 수혈로 인한 철분 과잉은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높은 철 농도가 수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이야스 다글라스( Iyas Daghlas )와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데펜더 길 ( Dipender Gill )은 체내 철 함유량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적 변이와 수명의 관계를 조사했습니다. 연구팀은 48972명의 유전 정보와 혈중 철분 농도, 그리고 기대 수명의 60/90%에서 생존 확률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유전자로 예측한 혈중 철분 농도가 증가할수록 오래 생존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유전자 자체 때문인지 아니면 높은 혈중/체내 철 농도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높은 혈중 철 농도가 꼭 좋은 뜻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하는 결과입니다.   연구팀은 이 데이터를 근거로 건강한 사람이 영양제나 종합 비타민제를 통해 과도한 철분을 섭취할 이유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어쩌면 높은 철 농도가 조기 사망 위험도를 높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임산부나 빈혈 환자 등 진짜 철분이 필요한 사람들까지 철분 섭취를 꺼릴 필요가 없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연구 내용은 정상보다 높은 혈중 철농도가 오래 유지되는 경우를 가정한 것으로 본래 철분 부족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낮은 철분 농도와 빈혈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은 이미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철...

사막에서 식물을 재배하는 온실 Ecodome

 지구 기후가 변해가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비가 더 많이 내리지만 반대로 비가 적게 내리는 지역도 생기고 있습니다. 일부 아프리카 개도국에서는 이에 더해서 인구 증가로 인해 식량과 물이 모두 크게 부족한 현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사막 온실입니다.   사막에 온실을 건설한다는 아이디어는 이상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사막 온실이 식물재배를 위해서 시도되고 있습니다. 사막 온실의 아이디어는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큰 사막 환경에서 작물을 재배함과 동시에 물이 증발해서 사라지는 것을 막는데 그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막화가 진행 중인 에티오피아의 곤다르 대학( University of Gondar's Faculty of Agriculture )의 연구자들은 사막 온실과 이슬을 모으는 장치를 결합한 독특한 사막 온실을 공개했습니다. 이들은 이를 에코돔( Ecodome )이라고 명명했는데, 아직 프로토타입을 건설한 것은 아니지만 그 컨셉을 공개하고 개발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사막에 건설된 온실안에서 작물을 키움니다. 이 작물은 광합성을 하면서 수증기를 밖으로 내보네게 되지만, 온실 때문에 이 수증기를 달아나지 못하고 갖히게 됩니다. 밤이 되면 이 수증기는 다시 응결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에코돔의 가장 위에 있는 부분이 열리면서 여기로 찬 공기가 들어와 외부 공기에 있는 수증기가 응결되어 에코돔 내부로 들어옵니다. 그렇게 얻은 물은 식수는 물론 식물 재배 모두에 사용 가능합니다.  (에코돔의 컨셉.  출처 : Roots Up)   (동영상)   이 컨셉은 마치 사막 온실과 이슬을 모으는 담수 장치를 합쳐놓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도 잘 작동할지는 직접 테스트를 해봐야 알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