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태양계 이야기 408 - 명왕성보다 3배 먼 얼음 세상. 에리스


(에리스와 위성 디스노미아의 상상도.  Artists concept of the view from Eris with Dysnomia in the background, looking back towards the distant sun. Credit: Robert Hurt (IPAC) )  



(에리스와 위성 디스노미아의 사진. Eris and its moon, Dysnomia, as imaged by the W.M. Keck Observatory in Hawaii. Credit: NASA/ESA and M. Brown/Caltech )

 나사의 뉴호라이즌 탐사선은 이제는 왜행성(dwarf planet)으로 강등된 명왕성의 모습을 밝혀냈습니다. 과학자들은 태양계 저 멀리 있는 얼음 천체들을 처음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관측했습니다. 하지만 명왕성보다 더 먼 곳에는 아직도 많은 왜행성이 탐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 명왕성의 행성 지위를 끌어내리는 데 크게 이바지한 천체가 바로 에리스(Eris)입니다. 에리스는 과거 명왕성보다 약간 더 크다고 생각되었고 이로 인해 명왕성의 지위가 애매해졌습니다. 여기에 에리스 같은 천체가 여럿 있다는 증거가 발견되면서 결국 천문학자들은 새로 발견된 모든 천체를 행성으로 인정하든가 아니면 명왕성을 행성의 위치에서 끌어내리는 두 가지 선택에 직면했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천문학자들은 명왕성을 왜행성으로 격하시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에리스의 발견은 2005년 1월로 거슬러 올라 갈수 있습니다. 천문학자 마이크 브라운(Mike Brown)과 그의 동료들은 그해 1월 29일, 2003년 얻어진 이미지를 분석하다 에리스를 비롯한 왜행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참고로 에리스와 같이 발견된 천체는 왜행성 하우메아와 마케마케.) 그래서 처음에는 2003 UB313라는 명칭이 붙었죠.  

 그리고 그해 10월에는 다시 에리스가 디스노미아(Dysnomia)라는 위성을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를 이용해서 천문학자들은 에리스의 질량을 알아냈습니다. 그런데 에리스의 질량을 측정해보니 명왕성의 질량보다 27%나 더 컸습니다. 이것만으로 에리스가 명왕성보다 더 크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명왕성보다 무겁다는 점은 확실했습니다.

 한편 발견 직후 허블 우주 망원경 측정 결과는 지름이 2,397km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명왕성보다 약간 큰 지름입니다. 이렇게 되면 명왕성을 행성에서 끌어내리든지 에리스를 새로운 행성으로 인정해야 하죠. (사실 처음에 에리스는 태양계의 10번째 행성으로 소개된 적도 있습니다) 물론 이보다 작은 준행성들의 문제도 있습니다. 결국 이들에게 왜행성이라는 새로운 지위가 부여됩니다.

 사실 에리스처럼 멀리 떨어진 천체는 정확한 지름을 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가장 큰 왜행성이 된 에리스에 대한 정밀관측이 이어졌고 나중에 얻은 결론은 처음 관측보다 조금 작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사실 명왕성은 생각보다 80km 정도 더 크다는 사실이 뉴호라이즌의 탐사 결과 밝혀졌습니다. 지금 결론은 이 둘은 거의 비슷한 크기거나 명왕성이 약간 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왜행성으로 강등된 명왕성이 억울할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게 현재까지 관측으로 이 둘은 판별이 어려울 만큼 크기가 비슷하고 질량은 분명히 에리스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결국, 둘 다 행성으로 인정하지 않을 거면 그냥 둘 다 행성보다 작은 천체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명왕성은 태양계의 행성과 비교해서 길쭉한 타원 궤도를 공전합니다. 이것 역시 행성에서 강등된 이유 중 하나죠. 그런데 에리스는 이보다 더해서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근일점이 37.91AU(1AU는 지구 - 태양 거리로 약 1.5억km), 가장 먼 원일점이 97.65AU에 달합니다.

 공전주기는 무려 558년으로 명왕성의 2배입니다. 1977년 원일점을 돌았기 때문에 현재 거리는 명왕성의 거의 3배에 정도입니다. 태양에 가장 가까이 오는 시점은 2256년에서 2258년입니다. 이렇게 먼 거리에 있어서 에리스는 매우 관측이 어렵고 탐사선을 보내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많은 과학자 그룹이 가장 강력한 망원경을 동원해 이 천체를 연구했습니다. 과학자들은 적어도 에리스가 명왕성과 표면색이 다르다는 점은 알고 있습니다. 명왕성의 옅은 대기는 태양 에너지와 반응해서 톨린(tholin)이라는 분자를 만드는데, 이로 인해 표면이 적갈색 내지는 어두운 분홍색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에리스는 거의 대기가 없고 이런 반응이 일어나기에는 너무 멀고 온도가 낮아서 거의 흰색에 가까운 표면을 가진 얼음 천체입니다. 참고로 에리스의 표면 온도는 -243.2°C에서 -217.2°C 정도입니다. 햇빛이 밝다면 하얀 얼음 세상을 볼 수 있겠지만, 태양에서의 매우 먼 거리로 인해 표면은 어둡게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 어두운 얼음 세상에도 친구는 있습니다. 명왕성이 카론을 비롯한 위성을 거느리는 것과 같이 에리스도 디스노미아라는 위성이 있습니다. 이 위성은 에리스의 1/5 정도 크기로 지름이 340km 입니다. 3만 7천km 거리에서 에리스를 16일 정도 주기로 공전하는데, 크기나 주기로 봤을 때 지구 - 달의 축소 모형 같은 느낌입니다.

 물론 명왕성과 마찬가지로 에리스 역시 다른 위성을 거느리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다만 현재 거리가 멀어 확인이 쉽지 않습니다.  


 나사의 뉴호라이즌스호는 명왕성까지 가는 데 9년이 걸렸습니다. 같은 속도로 에리스까지 가려면 대략 2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런 이유로 현재 에리스 탐사선은 구체적으로 논의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이미 과학자들은 에리스 이외에 비교적 큰 천체들을 명왕성 궤도 너머에서 다수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이 천체 가운데 에리스와 명왕성보다 더 큰 것은 아직 없죠. 물론 아직 발견되지 않은 천체가 더 많을 것이기 때문에 더 큰 천체가 어딘가 숨어있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다만 당분간 이 천체들을 탐사할 우주선은 거리 때문에 발사가 힘들 것입니다. 대신 앞으로 발사될 제임스 웹 우주 망원경과 지상에 건설될 대형 망원경을 통해서 더 상세한 관측을 기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에리스보다 더 멀리 떨어진 더 큰 왜행성이나 사실상 행성 급의 천체가 발견될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습니다.


   과연 우주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직 말할 순 없지만, 언젠가 그 답을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참고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9000년 전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다.

( The final reconstruction. Credit: Oscar Nilsson )  그리스 아테나 대학과 스웨덴 연구자들이 1993년 발견된 선사 시대 소녀의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유골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역의 테오페트라 동굴 ( Theopetra Cave )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9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유골의 주인공은 15-18세 사이의 소녀로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괴혈병, 빈혈, 관절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았던 시기는 유럽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이 초기 농경으로 이전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을 것이며 평균 수명 역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아무튼 문명의 새벽에 해당하는 시점에 살았기 때문에 이 소녀는 Dawn (그리스어로는  Avgi)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골에 대한 상세한 스캔과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서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모습은.... 당시의 거친 환경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긴 턱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 그랬듯이 질긴 먹이를 오래 씹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하고 억센 10대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억세보이는 주인공이라도 당시에는 전염병이나 혹은 기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평균 수명은 길지 못했겠죠. 외모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의 거친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해 흥미롭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18-01-te...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