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키프로스 구제금융 그 복잡한 이야기




 2013 년 3월 25일 지중해의 소국 키프로스가 마침내 트로이카 (IMF, ECB, EU) 로 부터 100 억 유로의 구제 금융을 받기로 합의했습니다. 당초 요구 조건이었던 예금 과세를 제외한 플랜 B 에 합의하는 수준에서 구제 금융이 결정된 것은 나름 타당한 결정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예금 과세 자체가 유래가 없는 조치일 뿐 아니라 이를 강요할 경우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으로 치닫을 수 있는 사태였기 때문입니다. 다만 앞으로 막대한 손실을 감당하고 구조조정을 통해 재기하는 일이 키프로스 정부와 은행들에 앞에 남아있습니다.  

 초기에 키프로스 문제가 부각될 때만 해도 GDP 가 240 억 달러 정도 되는 작은 경제 규모로 인해 국지적인 문제로만 여겨졌으나 예금 규모가 상당히 큰 700 억 달러에 달하고 이 중 상당수가 해외 특히 러시아 예금이라는 사실이 부각되면서 국제적인 문제로 비화되었습니다. 만약 이 돈이 디폴트로 인해 날아가게 되면 러시아 측이 입을 타격도 상당하지만 그리스 역시 키프로스에 막대한 돈을 빌려준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라 다시 그리스 리스크가 부각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더 관심을 끌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우려되는 사태는 사상 초유의 예금 과세로 인해 유로존내 취약 국가인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예금주들과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를 키웠다는 점입니다. 더구나 한 국가라도 유로존 탈퇴시 유로존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다시 부각될 것이라는 우려가 되살아 나면서 키프로스 구제 금융 사태는 예상외로 세계적인 이슈가 되었습니다.  


 특히 관심을 끌었던 것은 독일과 러시아의 복잡한 사정입니다. 구제 금융시 그 돈을 가장 많이 내게 되어 있는 독일의 경우 이전 그리스를 비롯한 유로존 취약 국가들에 막대한 돈을 투입한데 대해서 국민적 불만이 적지 않았습니다. 일단 전후 사정이 어찌되었든 간에 막대한 돈을 채권의 형태로 국민들에게 부담시킨 건 사실이니 이걸 좋아라고 할 국민들은 별로 없겠죠. 독일의 앙겔라 마르켈 총리도 여기에 대해서 상당한 정치적 부담을 보였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와중에서 액수는 전보다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또 유로존 내 취약 국가를 위해 구제 금융을 하자고 하면 독일이나 주로 돈을 내는 처지인 다른 회원국 국민들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것임은 자명합니다. 더 복잡한 사정은 키프로스 위기의 문제가 된 은행들이 가지고 있는 예금 중 1/3 이 러시아 돈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예금 과세에 대해서 러시아의 반발이 극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러시아에서 멀쩡한 자기나라 은행 놔두고 키프로스에 굳이 예금을 넣어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검은 돈들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실제로 마피아 자금 등 검은 돈의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되었든 이렇게 되면 유로존 국민들의 세금으로 검은 돈을 살려주는 셈이라서 문제가 더 복잡해 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구제 금융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유로존 국가에서 국민적인 반대가 더 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죠.  


 예금 과세라는 사상 초유의 해결책은 그래서 나온 것이지만 이는 러시아는 물론 키프로스 측에서도 반발이 매우 심해 결국 키프로스 의회에서 단 한표의 찬성도 없이 부결되었습니다. 결국 키프로스 측 대표로 브뤼셀에서 유럽 재무 장관들과 마라톤 회의를 거친 니코스 아나스티아데스 키프로스 대통령은 예금 과세를 뺀 나머지 대책을 묶은 플랜 B 를 들고 나가 배수진을 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실제 키프로스 대통령은 이 플랜 B 에 대해서 승인하지 않고 구제 금융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대통령직을 사퇴할 의사를 보였으며 자신이 한가지 제안만 할 것이고 트로이카가 이를 거부하면 다시 같은 안을 내놓겠다면서 물러나지 않겠다는 의사를 보였다고 합니다. 국내 여론과 현실을 감안할 때 이 이상은 어차피 통과시킬 수가 없었기 때문일 텐데 이 사실을 어느 정도 인지한 트로이카도 결국 여기서 한발 물러선 모습입니다. 


 사실 플랜 B 는 당초 트로이카가 요구한 58 억 유로 - 키프로스 은행 부실을 해결하기 위해 170 억 유로 정도가 필요하다는 추정이 나온 상태에서 100 억 유로는 구제금융으로 58 억 유로는 자체적으로 해결하도록 하므로써 도덕적 해이 및 유로존 국가들의 반발을 막으려는 의도 - 에 미치지 못한 35 억 유로 정도의 자체 조달 방안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정안 조차 1 표의 지지도 못하고 의회에서 부결되므로써 강력한 반대 의지를 보인 탓인지 오히려 플랜 B 는 키프로스의 배수진으로 더 유효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 합니다. 



 아무튼 플랜 B 를 실행시키고 100 억 유로의 구제 금융을 통해 키프로스를 회생시키기 위해서는 앞으로 험난한 과정이 예상됩니다. 또 이 과정에서 키프로스에 많은 돈을 투자한 러시아와 그리스 (키프로스가 그리스의 주요 채권국이듯 그리스도 키프로스의 주요 채권국이라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하나도 큰 타격을 받게 되는 구조) 이 어떻게 나올지도 변수입니다. 결국 헤어컷 이야기가 나오고 원금을 다 돌려 받을 수 없다면 예금주와 투자자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 지도 확실치 않은 셈이죠. 


 일단 플랜 B 는 긴급 채권 발행을 위한 통합 기금 (Solidarity fund) 를 창설하는 한편 부실의 핵이라고 할 수 있는 라이키 은행을 배드뱅크와 굿 뱅크로 나누고 부실을 배드 뱅크로 옮겨 청산하는 작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또 향후 키프로스는 국가 경제 규모에 비해 과다하다는 평가를 받은 금융 부분을 축소하려는 움직임도 있습니다. 다만 일부 언론들은 키프로스가 10 만 유로 이상 예금에 대한 헤어컷을 잠정적으로 합의했다고 보도해 미래 새로운 화근의 불씨가 될 우려도 있기는 합니다. 


 그럼에도 일단 구제 금융이 승인 되므로써 키프로스 디폴트라는 사태는 막을 수 있었고 유로존을 유지하려는 유로존 회원국들에 대한 신뢰도 깨지지 않았습니다. 이번 키프로스 사태는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경제를 가진 국가라고 할 지라도 모두가 서로 엮여 있는 글로벌 경제 하에서는 작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또 다른 사례 입니다.


 현재의 국경 없는 시장에서는 서로간의 무역과 협력을 통해 긍정적인 효과를 크게 파급시킨 것도 사실이지만 (특히 우리나라처럼 부존 자원도 없고 시장도 협소한 편인 국가는 이런 글로벌 경제 시스템이 큰 이익을 본 경우라고 할 수 있음) 반대로 한 국가나 지역의 위험성이 다른 지역으로 쉽게 파급될 수 있다는 부작용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까지는 부작용 보다는 그래도 긍정적인 효과가 좀 더 큰 편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겠죠.      


 참고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세상에서 가장 큰 벌

( Wallace's giant bee, the largest known bee species in the world, is four times larger than a European honeybee(Credit: Clay Bolt) ) (Photographer Clay Bolt snaps some of the first-ever shots of Wallace's giant bee in the wild(Credit: Simon Robson)  월리스의 거대 벌 (Wallace’s giant bee)로 알려진 Megachile pluto는 매우 거대한 인도네시아 벌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말벌과도 경쟁할 수 있는 크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암컷의 경우 몸길이 3.8cm, 날개너비 6.35cm으로 알려진 벌 가운데 가장 거대하지만 수컷의 경우 이보다 작아서 몸길이가 2.3cm 정도입니다. 아무튼 일반 꿀벌의 4배가 넘는 몸길이를 지닌 거대 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메가칠레는 1981년 몇 개의 표본이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추가 발견이 되지 않아 멸종되었다고 보는 과학자들도 있었습니다. 2018년에 eBay에 표본이 나왔지만, 언제 잡힌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 벌은 1858년 처음 발견된 이후 1981년에야 다시 발견되었을 만큼 찾기 어려운 희귀종입니다. 그런데 시드니 대학과 국제 야생 동물 보호 협회 (Global Wildlife Conservation)의 연구팀이 오랜 수색 끝에 2019년 인도네시아의 오지에서 메가칠레 암컷을 야생 상태에서 발견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메가칠레 암컷은 특이하게도 살아있는 흰개미 둥지가 있는 나무에 둥지를 만들고 살아갑니다. 이들의 거대한 턱은 나무의 수지를 모아 둥지를 짓는데 유리합니다. 하지만 워낙 희귀종이라 이들의 생태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동영상)...

몸에 철이 많으면 조기 사망 위험도가 높다?

 철분은 인체에 반드시 필요한 미량 원소입니다. 헤모글로빈에 필수적인 물질이기 때문에 철분 부족은 흔히 빈혈을 부르며 반대로 피를 자꾸 잃는 경우에는 철분 부족 현상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철분 수치가 높다는 것은 반드시 좋은 의미는 아닙니다. 모든 일에는 적당한 수준이 있게 마련이고 철 역시 너무 많으면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철 대사에 문제가 생겨 철이 과다하게 축적되는 혈색소증 ( haemochromatosis ) 같은 드문 경우가 아니라도 과도한 철분 섭취나 수혈로 인한 철분 과잉은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높은 철 농도가 수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이야스 다글라스( Iyas Daghlas )와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데펜더 길 ( Dipender Gill )은 체내 철 함유량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적 변이와 수명의 관계를 조사했습니다. 연구팀은 48972명의 유전 정보와 혈중 철분 농도, 그리고 기대 수명의 60/90%에서 생존 확률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유전자로 예측한 혈중 철분 농도가 증가할수록 오래 생존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유전자 자체 때문인지 아니면 높은 혈중/체내 철 농도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높은 혈중 철 농도가 꼭 좋은 뜻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하는 결과입니다.   연구팀은 이 데이터를 근거로 건강한 사람이 영양제나 종합 비타민제를 통해 과도한 철분을 섭취할 이유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어쩌면 높은 철 농도가 조기 사망 위험도를 높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임산부나 빈혈 환자 등 진짜 철분이 필요한 사람들까지 철분 섭취를 꺼릴 필요가 없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연구 내용은 정상보다 높은 혈중 철농도가 오래 유지되는 경우를 가정한 것으로 본래 철분 부족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낮은 철분 농도와 빈혈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은 이미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철...

사막에서 식물을 재배하는 온실 Ecodome

 지구 기후가 변해가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비가 더 많이 내리지만 반대로 비가 적게 내리는 지역도 생기고 있습니다. 일부 아프리카 개도국에서는 이에 더해서 인구 증가로 인해 식량과 물이 모두 크게 부족한 현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사막 온실입니다.   사막에 온실을 건설한다는 아이디어는 이상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사막 온실이 식물재배를 위해서 시도되고 있습니다. 사막 온실의 아이디어는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큰 사막 환경에서 작물을 재배함과 동시에 물이 증발해서 사라지는 것을 막는데 그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막화가 진행 중인 에티오피아의 곤다르 대학( University of Gondar's Faculty of Agriculture )의 연구자들은 사막 온실과 이슬을 모으는 장치를 결합한 독특한 사막 온실을 공개했습니다. 이들은 이를 에코돔( Ecodome )이라고 명명했는데, 아직 프로토타입을 건설한 것은 아니지만 그 컨셉을 공개하고 개발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사막에 건설된 온실안에서 작물을 키움니다. 이 작물은 광합성을 하면서 수증기를 밖으로 내보네게 되지만, 온실 때문에 이 수증기를 달아나지 못하고 갖히게 됩니다. 밤이 되면 이 수증기는 다시 응결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에코돔의 가장 위에 있는 부분이 열리면서 여기로 찬 공기가 들어와 외부 공기에 있는 수증기가 응결되어 에코돔 내부로 들어옵니다. 그렇게 얻은 물은 식수는 물론 식물 재배 모두에 사용 가능합니다.  (에코돔의 컨셉.  출처 : Roots Up)   (동영상)   이 컨셉은 마치 사막 온실과 이슬을 모으는 담수 장치를 합쳐놓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도 잘 작동할지는 직접 테스트를 해봐야 알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