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히틀러의 바다의 전사들 - 독일 U 보트 전사(戰史) 1



 음 아직 이전 연재 포스트들이 끝나지 않았지만 잠수함 영화에 대해서 쓰고 보니 마침 생각이 나서 이전부터 한번 써보려 했던 독일 U 보트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히틀러의 바다의 전사들 - 독일 U 보트 전사(戰史)' 라는 그럴 듯한 제목의 연재 포스트입니다. 지금 안쓰면 또 피일 차일 미루게 될 것 같으니 생각난 김에 쓰는게 좋겠죠 ^^   편의상 포스트에서 경어는 생략합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1. 독일 유보트의 시작


 일단 U 보트 (이후 편의상 유보트라고 명칭 통일) 은 사실 그냥 바다 밑의 선박, 그러니까 잠수함이라는 뜻의 Unterseeboot 에서 나온 단어이다. 그러나 워낙 유명해지다보니 그냥 그게 고유 명사로 변해서 유보트 하면 독일의 전설적 잠수함대인 유보트를 뜻하게 되었다.


 언제나 그러하듯이 훗날 잠수함 역사상 가장 큰 명성을 누리게 될 유보트 이지만 그 시작은 미미했다. 초창기 실험적인 잠수함이 만들어지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만들어진 여러 잠수함중 하나였을 뿐이니 말이다. 최초의 유보트인 U - 1 은 1906년에 크룹 (Krupp) 사에 의해서 키엘 (Kiel) 의 조선소에서 제작되었다.




(U - 1 의 사진 : This image (or other media file) is in the public domain because its copyright hasexpired)


 이 유보트는 길이 42m 에 너비 3.8m, 배수량 238톤 정도의 작은 잠수함이었다. 독특하게도 당시 사고를 많이 내던 가솔린 엔진 대신에 케로신을 이용한 엔진을 썼다는 것이 특이한 잠수함이었다. 당시 승무원은 장교 2명에 사병 10명에 불과했으며, 1919년까지 훈련용으로만 사용된 잠수함이었다.



 사실 당시 잠수함은 말이 잠수함이지 가끔 물속으로 들어가는 반잠함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창기 독일 잠수함들은 이후에 발생한 1차 대전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두어 그 능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1차 대전 발발시 독일군 잠수함은 29척이었는데, 당시 최초로 큰 성과를 거둔 잠수함은 바로 U - 9 이었다.



( U- 9 의 모습, 역시 초창기 반잠함이었다.  This work is in the public domain )



(전쟁 초기 U - 9 에 격침당한 Aboukir 와 Hogue 의 모습. 그래도 완전히 잠수한 U - 9 의 모습을 볼수 있다. 그림안의 사진은 함장  Weddigen 의 모습이다. This work is in the public domain )



  1914년 9월 U - 9 은 한번에 작전에서 영국군함 Aboukir, Hogue, Cressy 세 척을 격침시키는 놀라운 전과를 올렸다. 불과 한시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 잠수함은 종전시까지 4만4천톤의 영국 군함 5척을 수장 시키고 이외에도 13척을 수장시킨 슈퍼 에이스 잠수함이었다. 당시의 초보적인 잠수함을 이용해 이런 성과를 거둔 것은 놀랍기만 하다.


 1915년 5월 7일 U - 20 이 상선 루시타니아 (Lusitania) 호를 공격 한번의 어뢰공격으로 배를 침몰시켜 1198명이 죽었는데, 이중 138명이 미국인이었다. 이로 인해 미국내 반 독일 감정은 격화되기 시작한다. 이는 앞으로 있을 일을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당시 격침된 루시타니아호, 영국 국적의 큐나드 사의 배로 당시 이 사건은 타이타닉 호 사건 이후 가장큰 여객선 침몰 사고 였다. This image is in the public domain)


 결국 1917년 독일 정부가 무제한 잠수함 작전 (Unrestricted Submarine Warfare) 를 실행에 옮겨서 미국 상선들이 격침되자 미국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뛰어들게 되면서 전쟁은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으니, 어떤 의미로든 당시 신무기였던 잠수함은 전쟁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셈이었다.







 2. 2차 대전 이전까지의 유보트의 진화


 일단 전쟁이 독일의 패배로 끝나자 유보트의 말로는 거의 정해전 것이나 다름 없었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독일 해군은 잠수함을 건조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독일은 비밀리에 네덜란드에서 잠수함에 대한 연구를 하고, 스웨덴에서는 어뢰에 대한 연구를 진행시켰다.


 사실 1차 대전 당시 유보트는 다양한 초보적인 잠수함들의 집합체였다. 그러나 점차 잠수함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서 독일 군은 개발 시기와 목적에 따라 잠수함을 Type I ~ XXVI 까지 숫자를 붙여서 표시하고 그 안에서 여러 파생형들을 만들었다.


 일단 나치의 재집권 이후 재군비가 선언되자 독일은 영국과 협상을 벌여 1935년 영독 해군 협정 (Anglo-German Naval Agreement ) 을 맺게 된다. 이 협정에서 독일은 영국 해군의 총 톤수의 35% 정도 되는 해군을 보유하도록 허락 받았다.


 사실 히틀러의 목적은 해상 제국인 영국과의 경쟁이 아니라 동방의 슬라브족 (즉 소련) 을 정복하여 훗날 독일 제국의 생활권 (Lebensraum) 을 확장하려는데 있었다. 따라서 육군위주의 재군비 계획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이런 조약에 쉽게 동의했던 것이다. 물론 기회만 되면 조약 따위는 휴지 조각보다 못하게 생각하는 히틀러 입장에서야 사실 조약 자체는 별 의미가 없었을 수도 있지만.


 아무튼 이 계획에 의해 독일은 다시 잠수함을 보유할 수 있게 된다. 2차 대전 이후 최초로 건조한 잠수함은 Type I 이었다. U -24/25 이라는 2척의 실험용 잠수함이 이 Type I 의 전부였다.



(Type I, U - 25 약 800톤 급 잠수함이다. This artistic work created by the United Kingdom Government is in the public domain )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잠수함들이 실험용으로만 사용되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U -25 의 경우 1940년 8월 침몰할 때 까지 총톤수 33200톤의 연합군 선박을 침몰시켰고, 이중 1척은 전함이었다.


 한편 독일 해군 (German Kriegsmarine : war navy 란 뜻) 은 장차전에서 사용할 잠수함들은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3. 2차 대전 직전 독일 유보트의 전력


 일단 2차 대전 이전까지 독일군의 유보트들에 대해서 알아보자. 이를 미리 설명해야 이후의 설명이 편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II, VII, IX 형을 소개할 것인데, 전쟁 이후의 버전까지 그냥 한꺼번에 같이 설명하겠다.


 Type II : 이 연안용 잠수함들은 대략 200  - 400 톤 정도의 아주 작은 잠수함들이었다. A/B/C/D 네개의 파생형이 있으며 A형 6척, B형 20척, C형 8척, D형 16척이 생산되었고, 1940년까지 생산되었다가 더 생산되지는 않았다. 이 연안용 유보트는 사실 큰 역활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간단히 넘어간다.



(Type II 잠수함 중의 하나, 구체적으로 어느 잠수함인지는 표시가 없다. This image is in the public domain)



 Type VII : 이 Type VII 유보트들이야 말로 유보트의 가장 핵심적인 전력이라고 할 수 있다. 모두 700척 이상이 생산된 것으로 생각된다. 보통 영화에서 보는 유보트들은 이들이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영화 특전 유보트에 나온 U - 96 으로 실존한 Type VIIC 형 유보트였다. (http://blog.naver.com/jjy0501/100077390428 를 참조하자) 이 Type VII 는 좀더 자세히 설명하겠다.


 Type VII 유보트는 수면에서 769톤, 잠수시 871톤의 배수량을 가지고 있으며, 길이 67.1m 에 너비 6.2m 였다. 속도는 수면에서 17.7 노트, 잠수시 7.6 노트였다. 수면에서는 타입에 따라 다르지만 최대 1만 5천 km 를 갈 수 있어고, 잠수시에는 4노트의 속력으로 150km 를 갈수 있었다고 한다.


 최대 잠수 심도는 230미터 였으며, 파항심도 (잠수함이 파괴되는 심도) 는 250 - 295m 정도였다고 한다. 물론 이는 타입별로 약간 차이가 있다. 승무원은 50명 내외정도였다. 공통 무장으로 533mm 어뢰발사관 4문과 갑판의 88mm 포를 장착하고 있었다.


 Type VIIA : 이 초창기 Type VIIA 는 1935 - 1937년 사이에 제작되었다. U - 27 에서 U - 36 까지 총 10척이 제조되었다. 무장으로 21인치 (533mm) 어뢰를 11기와 88mm 포탄 220발을 적재했다. 동력은 2개의 MAN AG, 6 cylinder, 4-stroke M6V 40/46 디젤엔진으로부터 공급 받았고, 총 출력은 2100-2300마력이었다. 잠수시엔 2개의 BBC GG UB 720/8 전기 모터로 부터 동력을 공급받았고, 총 출력은 750마력이었다.




(Type VIIA 의 마지막 함인 U - 36. CCL 에 따라 복사해옴. 원자자는 미상. 출처 : Deutsches Bundesarchiv (German Federal Archive))



 Type VIIB : 이 유보트는 1936 - 1940 년 사이 총 24척이 건조되었다. 33 톤 정도의 외부 연료 탱크를 달아 항속 거리가 2500마일 정도 더 증가되었으며, 어뢰를 14기 탑재했다. VIIA 형보다 약간 빨랐으며 2개의 supercharged MAN, 6 cylinder, 4-stroke M6V 40/46 디젤 엔진을 탑재해 2800 - 3200마력의 출력을 가졌다. 이 VIIB 에는 나중에 설명할 귄터프린의 U 47 을 포함 유명한 유보트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외형은 VIIA 와 똑같다.



 Type VIIC : 이 유보트는 아마 영화 특전 유보트를 통해 가장 잘 알려진 형태일 것이다. 이전 A/B 형과 외형상의 차이는 없다. VII 형의 유보트들 중 가장 많이 생산되었기 때문에 이 안에서도 파생형이 존재할 정도이다. 생산 기간도 1940년에서 45년까지 이니 주력 유보트로 부르기에 손색이 없는 유보트로써 흔히 우리가 아는 유보트는 바로 이 Type VIIC 라고 할 수 있다.대전 말기까지 총 568척이 취역했다.



(VIIC 의 단면도. This image is in the public domain)



 Type VIID : 이 유보트들은 잘 알려지지 않은 타입이다. 총 6척만이 건조되었는데, 마치 현대 전략 원잠 비슷한 발사 튜브들을 가지고 있었다. 단 뿌리는 것은 기뢰였다. 길이 76.9m 로 다른 VII 형보다 10미터 길었다.



 Type VIIF : 이 유보트들은 어뢰 수송용으로 개발되었다. 총 4척만이 개발되었고, 길이 77.6m 에 배수량 1000톤이 넘는 대형이었다.


 Type VII 형의 특징들을 일람한 표를 위키에서 가져왔다. (아래)


Class
VIIA
VIIB
VIIC
VIIC/41
VIIC/42
VIID
VIIF
Displacement
surfaced
626 tons
753 tons
769 tons
769 tons
999 tons
965 tons
1084 tons
Displacement
submerged
745 tons
857 tons
871 tons
871 tons
1099 tons
1080 tons
1181 tons
Length
overall
64.5 m
66.6 m
67.1 m
67.1 m
68.7 m
76.9 m
77.6 m
Length
pressure hull
44.5 m
48.8 m
50.5 m
50.5 m
50.9 m
59.8 m
60.4 m
Beam
overall
5.85 m
6.2 m
6.2 m
6.2 m
6.85 m
6.4 m
7.3 m
Beam
pressure hull
4.7 m
4.7 m
4.7 m
4.7 m
5 m
4.7 m
4.7 m
Draft
4.4 m
4.74 m
4.74 m
4.74 m
5 m
5 m
4.9 m
Power
surfaced
1,700 kW[1]
2,400 kW[2]
2,400 kW[3]
2,400 kW[4]
2,400 kW[4]
2,400 kW[5]
2,400 kW[6]
Power
submerged
560 kW[7]
560 kW[8]
560 kW[9]
560 kW[4]
560 kW[4]
560 kW[10]
560 kW[6]
Surface
speed
17 knot
(31 km/h)
17.9 knot
(33 km/h)
17.7 knot
(33 km/h)
17.7 knot
(33 km/h)
18.6 knot
(34 km/h)
16.7 knot
(31 km/h)
17.6 knot
(33 km/h)
Submerged
speed
8 knots
(15 km/h)
8 knots
(15 km/h)
7.6 knots
(14 km/h)
7.6 knots

(14 km/h)
7.3 knots
(14 km/h)
7.9 knots
(15 km/h)
Surface
range
11,470 km
16,095 km
15,170 km
15,725 km
23,310 km
20,720 km
27,195 km
Submerged
range
175 km
175 km
150 km
150 km
150 km
130 km
140 km
Maximum
operating depth
220 m
220 m
230 m
250 m
270 m
200 m
200 m
Crush depth
230–250 m
230–250 m
250–295 m
275–325 m
350–400 m
220–240 m
220–240 m
Complement
42–46
44–48
44–52
44–52
44–52
46–52
46–52
Deck gun
C35 88 mm/L45, with 220 rounds
none
Anti-aircraft
guns
Various
2 × C30 20 mm,
with 4,380 rounds
3.7 cm Flak,
with 1,195 rounds
2 × C30 20 mm,
with 4,380 rounds
Bow tubes
[11]
Stern tubes
[12]
Torpedoes
(maximum)
11
14
14
14
16
14
14 / 39 [13]
Mines
22 TMA mines
or 33 TMB mines
26 TMA mines
15 SMA mines in
vertical chutes and
either 26 TMA mines or
39 TMB mines
none
Number
commissioned
10
24
568
91
[14]
6
4




 Type IX : VII 형과 더불어 역시 독일 잠수함대의 주력이 된 유보트이다. 총 모두 283척이 건조되었다. IX 형은 VII 보다 더 먼 항속거리를 가진 이른바 '대양용 잠수함' 으로 일부는 일본 잠수함대에서도 취역했고, 거의 지구 한바퀴를 돌 수 있는 항속거리를 자랑했다. (IXC형의 경우 최대 47450km 를 갈 수 있었다)

 무장으로는 갑판에 105mm 포와 6개의 어뢰 발사기를 가지고 있었고, 총 110발의 105mm 포탄과 22기의 어뢰를 가지고 다녔다. 1937년부터 1944년까지 생산되었다. 보통 승무원은 48- 56명이었다.

  평균적인 크기는 76미터 (XID 형만 87.6m)이고 폭 6.5 - 6.9 m (XID은 7.5m), 배수량은 수면에서 1000 - 1100톤, 잠수시 1100 - 1200 톤이었다. (XID 형은 1610/1799톤) 이었다. 출력은 2개의 MAN M9V40/46 supercharged 9-cylinder 디젤엔진이 담당했고 총 4,400 마력었다. 속도는 물위에서 최대 18 노트, 물속에선 7노트 정도였다. 최대 잠수 심도는 230m 정도 이다.


 Type IXA : 이 초기 IX 형 유보트는 8척만 취역했다.


 Type IXB : 이 유보트들은 사실 IXA 형과 거의 비슷했으나 항속거리 등에서 약간 향상이 있었다. 기존 형보다 5000km 더먼 41000만km 의 항속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U - 107 를 비롯한 이 타입의 잠수함들은 아프리카나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어 평균 무려 10만톤의 상선을 침몰시키는 대업을 이루어냈다. 전 모델 중에서 가장 놀라운 전과를 거두었으나 생산 댓수는 14척 뿐이었다.


(Type IXB 에 속하는 U - 107, 무려 39척의 연합군 선박을 격침시켜 총 톤수 20만톤의 대기록을 달성했다. CCL 에 따라 복사.
출처 : Deutsches Bundesarchiv (German Federal Archive), Bild 101II-MW-3956-05A
원저자 : Meisinger)


Type IXC : VIIC 와 더불어 가장 대중적인 유보트이다. 역시 43톤 정도의 연료를 더 실어 항속거리가 최대 47000km까지 늘어났다. IXC 가 54척, 파생형 IXC/40 이 87척 건조되어 IXC 형의 생산댓수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이중 U - 534 는 격침된 후 다시 인양되어 전시되어 있다.



(Type IXC 형인 U - 534. This image has been (or is hereby) released into the public domain by its author. Author : Paul adams)



Type IXD : 위에서 보신 분들은 눈치챘겠지만 이는 대형화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녀석이다. 그러나 오히려 항속거리는 짧다. 주로 수송용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총 30척이 취역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9000년 전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다.

( The final reconstruction. Credit: Oscar Nilsson )  그리스 아테나 대학과 스웨덴 연구자들이 1993년 발견된 선사 시대 소녀의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유골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역의 테오페트라 동굴 ( Theopetra Cave )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9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유골의 주인공은 15-18세 사이의 소녀로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괴혈병, 빈혈, 관절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았던 시기는 유럽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이 초기 농경으로 이전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을 것이며 평균 수명 역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아무튼 문명의 새벽에 해당하는 시점에 살았기 때문에 이 소녀는 Dawn (그리스어로는  Avgi)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골에 대한 상세한 스캔과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서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모습은.... 당시의 거친 환경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긴 턱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 그랬듯이 질긴 먹이를 오래 씹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하고 억센 10대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억세보이는 주인공이라도 당시에는 전염병이나 혹은 기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평균 수명은 길지 못했겠죠. 외모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의 거친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해 흥미롭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18-01-te...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