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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사 - 8 차 십자군 1





 (주의 : 앞서 이야기 했듯이 5/6 차 를 합쳐서 보는 경우에는 이 경우가 8 차가 아닌 7 차 십자군이 됨. 여기에서는 십자군을 모두 9 차로 정리할 예정입니다) 


 1. 루이 9세의 재기 


 루이 9세는 사실 의심할 바 없이 유능한 군주였다. 조부인 필립 2세에 이어 그의 치세에 프랑스 왕권은 강화되었으며 국력 역시 신장되었다. 하지만 십자군 원정에 관해서 만큼은 매우 치욕적인 실패로 인해 그의 재위 기간 중에 가장 큰 오점으로 남고 말았다. 평소 신앙심이 매우 깊어 성왕 이라는 칭송을 받던 그이기에 이와 같은 사실은 매우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7 차 십자군의 재앙적인 패배 이후 10 년 이상 루이 9세는 이 상황을 타개할 새로운 십자군 모집에 골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십자군이라는 아이디어는 연이은 실패로 말미암아 유럽에서 그 인기를 진작에 상실하고 말았다. 따라서 루이 9세라도 십자군을 조기에 다시 모을 수는 없었다. 


 루이 9세는 1214 년 생으로 재위에 오른 것은 그가 12 세 였던 1226 년이었다. 그가 재위에 오른지 40 년쯤 되던 해를 전후로 성지에서는 바이바르스가 남은 십자군 잔존 세력들을 대부분 정복해 가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1268 년 무력하게 안티오크가 함락되자 루이 8세도 결심을 다음 십자군의 결심을 굳혔다. 이대로라면 성지 회복은 고사하고 아예 팔레스타인에서 십자군의 명맥이 완전히 끊길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또 나이를 생각컨데 더 이상 십자군을 미루면 (당시 평균 수명을 고려할 때) 다시 십자군에 나설 수 없을 게 분명했다. 



(성 루이라고 불리는 루이 9세의 석상   public domain ) 


 이렇게 해서 루이 9세의 마지막 십자군이 계획되었다. 사실 계획 자체는 1267 년 시작되었으나 1268 년의 사건 (안티오크 함락) 이 그의 결심을 더 굳힌 것이 확실하다. 우리는 불행히 8 차 십자군에 대해서는 7 차 십자군 만큼 상세한 내용을 알 수 가 없는데 그것은 연대기 작가로 7 차 십자군을 상세히 기록한 장 드 주앵빌 (Jean de Joinville) 같은 연대기 작가들이 수행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8 차 십자군에서 가장 뜬금없는 일을 고르라면 첫번째 목표가 아이러니 하게도 이집트도 성지도 아닌 튀니스였다는 사실이다. 이전에 7 차 십자군의 경험으로 루이 9 세는 프랑스 본토에서 매우 멀리 떨어진 이집트를 바로 공략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간 거점으로 지중해 중간 지역인 튀니스를 먼저 점령해서 일종의 중동 침공의 전진 기지로 삼으려 했던 것이다. 지금의 우리가 본다면 정말 어이없는 생각처럼 여겨질지 모르지만 루이 9세가 이런 군사적 도박이 가능할 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그의 동생인 샤를 1세 였다. 



 (참고로 구글 맵에서 본 프랑스, 튀니스 (A 로 표시된 지역으로 튀니지의 수도), 남이탈리아, 이집트의 상대적 거리를 보면 그래도 튀니스가 프랑스 본토에서 좀 가까운 편이며 남이탈리아와는 바다 건너 바로 옆이다.)  



 2.  샤를 1세 


 앞서 7 차 십자군에서 샤를 1세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한 바가 있다. 루이 8세의 살아남은 아들 가운데 막내인 샤를 1세는 군사적으로는 가장 뛰어난 군주로 이름을 떨친 인물이다. 이쯤에서 그에 대해서 간단하게 알아보는 것이 좋겠다. 샤를 1세는 앙주 백작의 신분으로 7 차 십자군 원정에 참여했는데 그 때만 해도 특별히 언급할 만한 내용이 없는 인물이었으나 난세를 만나 본격적으로 정복자의 길을 걷게 된다. 


 1254 년 프리드리히 2세의 아들 콘라드 4세가 죽자 신성 로마 제국은 대혼란에 빠지고 각지에서는 황제를 자칭하는 인물들이 등장했다. 이 시기를 대공위 시대라 말하는데 이 혼란기에 한 몫 챙기려고 덤벼든 것은 프랑스 왕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프랑스 왕실은 교황 우르바노 4 세 (Urban IV) 로 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그것은 시칠리아 왕위를 루이 9세에게 양도할 테니 제발 와서 기벨린 파 (황제파) 들을 몰아내 달라는 요청이었다. 루이 9세가 이 요청을 거부했으므로 다시 그들은 앙주 백작에게 같은 요청을 했다. 


 샤를 1세는 기회가 왔음을 깨닫고 군대를 일으켜 혼돈 상태인 이탈리아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1265 년 교황이 클레멘스 4세 (Clement IV) 로 바뀌어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1266 년 샤를 1세는 기벨린 파의 만프레디를 격파하므로써 사실상 시칠리아 왕국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이후 콘라드 4세의 아들로 정당한 후계자였던 콘라딘이 로마로 진군하자 샤를 1세는 그 역시 격파하고 콘라딘을 참수했다. (1268 년) 



(샤를 1세의 석상  CCL 에 따라 복사 허용 저자 표시   저자   Raffaele Esposito  )

 사실 교황청은 다급한 마음에 프랑스 왕실을 이탈리아로 불러들인 것이었지만 이것은 나중에 늑대 대신 이리를 불러들인 상황이라는 점이 밝혀진다. 결국 프랑스의 교황청에 대한 영향력이 과거 신성 로마 제국 만큼이나 커졌기 때문이었다. 훗날 프랑스 왕실은 아예 교황청을 자신들이 콘트롤 하기 유리한 아비뇽으로 이전하는 일까지 서슴치 않았는데 이는 신성 로마 제국 시절에도 못했던 일이었다.


 이것은 나중에 이야기고 아무튼 이런 사정으로 인해 샤를 1세는 과거 프리드리히 2세의 근거지였던 남부 이탈리아를 사실상 손아귀에 넣고 시칠리아 국왕 및 나폴리 국왕 (King of Sicily, King of Naples) 을 칭하게 되었다. (1266 년 이후) 그리고 나중에는 알바니아 국왕 (King of Albania) 까지 겸하게 되는 등 지중해 중부의 강자로 떠오르게 된다. 


 이제 지도를 다시 본다면 사실상 샤를 1세의 지배 지역 바로 밑이 튀니스라는 사실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따라서 샤를 1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면 튀니스는 물론 지금의 튀니지 일대를 정복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 샤를 1세의 무용은 이미 널리 알려진 데다 형의 도움을 받아 정복할 땅이 추가로 생기는 상황에 대해서 샤를 1세가 굳이 반대할 이유도 없을 것이었다. 특히 튀니스를 정복하게 되면 이제 동서 지중해로 넘어가는 길목은 완전히 샤를 1세가 지배하게 되므로 그 지리적 이점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전후 사정을 이해하면 왜 루이 9세가 굳이 튀니스에 전진 기지를 건설하려 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샤를 1세가 지금까지 정복한 지역과 튀니스는 종교나 인종, 기후가 너무나 큰 차이가 있어 간단히 정복할 수 있는 지역이라곤 할 수 없었다. 8 차 십자군 원정은 이 평범한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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