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78만년전 인류의 조상은 채식 위주의 삶을 살았다?



(780,000 year old remains of edible fruits and seeds discovered in the northern Jordan Valley. Credit: Yaakov Langsam)


 무엇을 먹느냐는 어떤 생물인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광합성을 해서 스스로 에너지를 생산하는지 아니면 식물을 먹는지 동물을 먹는지는 그 생물의 진화 방향을 결정하는 키 역할을 합니다. 그런 만큼 인류의 조상이 어떤 것을 먹고 살았는지 역시 과학자들이 궁금해할 이슈 가운데 하나입니다. 


 물론 당시 진짜 원시인이 먹었던 식단을 복원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방법은 있습니다. 당시 호미닌(Hominin)들이 먹었던 음식 잔류물은 그들의 배설물에 남아있습니다. 화석화된 배설물 속에는 이들이 어떤 것을 먹었는지에 대한 단서가 남아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히브리 대학교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의 연구자들은 요르단 계곡 북부에 위치한 Gesher Benot Ya'akov 에서 78만년 전 인류의 조상 그룹인 호미닌의 유적을 발굴하고 당시 애슐리안 (Acheulian) 문화에 속하던 이들이 채식 위주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들은 9000개에 달하는 과일, 씨앗, 견과류 등의 흔적을 찾아냈으며 이 시기 중동 지역에 살았던 인류의 조상 그룹이 초식성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당시 아프리카에서 아시아로 이동하던 호모 에렉투스와 그 연관 그룹은 잡식성이었지만, 식단의 상당 부분은 사냥보다는 채집을 통해서 마련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들이 쉽게 먹기 힘든 식물 부위를 더 잘 먹기 위해서 불을 사용한 흔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쌀을 가지고 밥을 짓거나 밀을 이용해서 빵을 만드는 것과 사실 비슷한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고기를 불에 굽는 원시인의 모습을 상상하지만, 불을 이용해 요리하는 것은 단단한 씨앗이나 껍질에 둘러쌓인 견과류를 먹는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독성 성분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도 같이 가지고 있습니다. 


 현생 인류 이전에 등장한 호미닌들이 보통 상상하는 것과는 달리 채식 위주의 식단을 했다는 점은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농경 시대 이후의 현생 인류처럼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을 지녔다는 이야기니까요. 더 흥미로운 점은 앞서 포스트에서 미국에서 유행한 원시인 식단 (탄수화물 섭취를 줄이는 것이 중요한 목표 중 하나임)이 사실 실제 원시인이 먹었던 것이 아닌 상상의 산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했는데, 이 연구가 이를 입증하는 증거를 제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오늘날 원시 부족처럼 초기 호미닌들의 식단 역시 환경에 따라 다양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물고기를 잡기 쉬운 장소에서는 물고기를 잡고 사냥을 통해 식량을 조달하기 쉬운 곳에서는 고기를 메뉴로 자주 선택했을 것입니다. 당연히 이런 경우라도 표준 원시인 식단은 상상의 산물에 불과한 것이죠. 우리의 조상들은 우리처럼 잡식성이었고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먹었을 것입니다. 다만 이번 연구는 생각보다 채식을 즐겼고 요리를 일찍부터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 셈입니다. 



 참고 


The plant component of an Acheulian diet at Gesher Benot Ya'aqov, Israel, PNAS, www.pnas.org/cgi/doi/10.1073/pnas.1607872113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9000년 전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다.

( The final reconstruction. Credit: Oscar Nilsson )  그리스 아테나 대학과 스웨덴 연구자들이 1993년 발견된 선사 시대 소녀의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유골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역의 테오페트라 동굴 ( Theopetra Cave )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9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유골의 주인공은 15-18세 사이의 소녀로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괴혈병, 빈혈, 관절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았던 시기는 유럽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이 초기 농경으로 이전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을 것이며 평균 수명 역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아무튼 문명의 새벽에 해당하는 시점에 살았기 때문에 이 소녀는 Dawn (그리스어로는  Avgi)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골에 대한 상세한 스캔과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서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모습은.... 당시의 거친 환경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긴 턱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 그랬듯이 질긴 먹이를 오래 씹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하고 억센 10대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억세보이는 주인공이라도 당시에는 전염병이나 혹은 기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평균 수명은 길지 못했겠죠. 외모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의 거친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해 흥미롭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18-01-te...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