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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코박터 파일로리도 적응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



 최근 밴더빌트 의대 (Vanderbilt University Medical Center) 의 연구자들이 저널 PNA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헬리코박터균의 균주 (strain) 가 향후 위암 발생의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인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부분은 이것이 공진화 (co evolution) 와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Helicobacter pylori) 는 과거 캄필로박터 파일로리 (Campylobacter pylori) 라고 불렸던 그람 음성 미호기성 (Gram negative microaerophilic) 세균으로 1982 년 위 점막에 붙어서 살고 있는 것을 배리 마셜 (Barry Marshall) 과 로빈 워렌 (Robin Warren) 이 발견했는데 이때까지도 발견이 안될 만큼 사실 생각하기 어려운 위치에서 서식하는 박테리아였습니다. (이들은 이 세균에 관한 업적으로 2005 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습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의 현미경 염색 사진  Histopathology of Helicobacter pylori infection in a gastric foveolar pit demonstrated in endoscopic gastric biopsy. Anti-Helicobacter immunostain.  


 인간의 위에서 분비되는 강력한 위산은 음식물은 소화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살균 작업 까지 겸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웬만큼 생존력이 강한 박테리아라도 위에서 장기간 생존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지만 이 세균은 놀랍게도 위산에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몇가지 비결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요소 분해제 (urease) 를 생산해서 위안에 요소 (urea) 를 암모니아와 이산화탄소로 분해 시키고 이 과정에서 나오는 요소가 산을 중화시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반응은 헬리코박터균을 진단하는데도 도움을 줍니다. 두번째는 헬리코박터균이 점막 상피세포위에 있는 점액층으로 파고 들어 산을 피하는 것입니다. 본래 이 점액 (mucin) 은 위벽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 안으로 파고들면 위산의 공격을 같이 피할 수 있습니다. 이때 요소 분해제가 역시 도움을 줍니다. 마지막으로 헬리코박터균은 pH 가 높은 곳에 대한 화학주성 (chemotaxis) 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낮은 pH (즉 산성도가 심한 곳) 을 피하는 것입니다. 헬리코박터균은 몇개의 긴 편모를 가지고 있어 운동성이 뛰어난 편입니다. 




(위벽의 점액층으로 파고드는 헬리코박터균의 다이어그램.  A team of researchers from Boston University, Harvard Medical School and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have shown that the bacterium that causes human stomach ulcers uses a clever biochemical strategy to alter the physical properties of its environment, allowing it to move and survive and further colonize its host.Contact with stomach acid keeps the mucin lining the epithelial cell layer in a spongy gel-like state. This consistency is impermeable to the bacterium Heliobacter pylori. However, the bacterium releases urease which neutralizes the stomach acid. This causes the mucin to liquefy, and the bacterium can swim right through it.  Illustration Credit: Zina Deretsky, National Science Foundation )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균에 대한 유전자 분석은 아마도 현재 존재하는 많은 균주들이 60000 년 정도 전에 동아프리카에서 유래한 균주의 후손이라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즉 현생 인류의 발생지에서 부터 아주 오래전에 인간에 기생한 균이기 때문에 숙주에 적응할 시간이 충분합니다. 따라서 대부분 감염되어도 아무 증상이 없습니다. 오랬동안 기생한 균일수록 더 안전하죠. 


 상대적으로 최근에 다른 동물에서 온 균이나 바이러스 - 대표적으로 HIV - 는 매우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들은 숙주에 적응해서 충분히 진화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일단 기생 생물의 목적은 숙주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숙주를 효과적으로 이용해서 널리 증식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랬동안 적응 기간을 가진 세균이나 바이러스일 수록 치명적일 가능성이 적습니다. 숙주가 죽으면 기생 생물도 갈 곳이 사라질테니 말이죠.   


 하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장기간의 적응으로 약독화 되어 증상이 없을진 모르지만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는 장기적으로는 꽤 유해할 수 있는 세균입니다. 요소 분해제 때문에 생성되는 암모니아는 그 자체로 위점막에 염증을 일으키며 이 세균이 만드는  proteases, vacuolating cytotoxin A (VacA) 와 일부 phospholipases 역시 만성 염증반응에 관여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Cytotoxin Associated gene [CagA] 는 염증은 물론 위암의 발생과 관련이 있어 오랬동안 주목을 받았습니다. 


 (참고로 헬리코박터 감염이 되면 위궤양, 십이지장 궤양은 물론 위암이 잘 생긴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 세균을 가진 사람 중 대부분은 위암에 걸리지 않습니다. 따라서 아무 가족력과 질병이 없는 상태의 단순 보균자는 현재까지 예방적 치료의 대상이 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전세계 인구의 거의 반이 감염된 아주 흔한 세균인 만큼 무조건적인 제균 요법은 문제의 소지가 있기 때문이죠.) 


 밴더빌트 대학의 바바라 슈나이더 (Barbara Schneider) 와 그녀의 동료들은 콜롬비아에 위치한 두 마을에서의 연구로 H. pylori 균주의 차이도 위암 발생률의 차이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H. pylori 균주가 서로 발암성 (Carcinogenic) 이 다르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이들의 연구가 새로운 점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병원체가 숙주에 적응할 시간의 차이, 즉 공진화 정도의 차이에 주목한 것입니다.  


 연구팀은 콜롬비아의 산악 지대에 위치한 투쿼레스 (Tuquerres) 와 해안가에 위치한 투마코 (Tumaco) 두 지역에서 역학 조사를 벌였는데 이 지역의 거리는 약 200 km 정도 입니다. 두 마을은 모두 90% 수준의 H. pylori 감염률을 보였는데 위선암 (gastric adenocarcinoma) 의 발생률은 투쿼레스 쪽이 무려 25 배가 높은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투쿼레스 주민들은 대부분 아메리카 인디언의 후손인데 그들의 가지고 있는 H. pylori 균주는 유럽과 동아시아의 것이었습니다. 이들 균주는 아마도 15 세기 스페인인들이 가지고 온 것으로 생각됩니다. 반면 투마코 주민들은 대부분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노예의 후손들로 이들은 아프리카에서 유래한 H. pylori 균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일반적으로 시간이 흐를 수록 세균을 바롯한 병원체는 더 안전해 집니다. 하지만 헬리코박터 파일로리는 장기적으로 본다면 꼭 그렇진 않다고 생각되어 왔습니다. 위암을 비롯해서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니까요. 


 슈나이더 팀의 연구는 여기에 대해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합니다. 즉 투마코 주민들이 가진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균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숙주에 대해서 독성이 덜해 졌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면 투쿼레스 주민들이 가진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균은 비교적 최근에 전해진 균주로 유전적으로 본래 이들이 있었던 숙주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숙주에 속해 있어 더 독성이 강할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즉 공진화가 덜 이뤄졌다는 것이죠.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면 재미있는 연구긴 하지만 국가별로 위암 발생률의 차이가 나는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다소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위의 두 마을 같은 사례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위암 유병률이 높은 국가들에서 흔한건 아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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