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명왕성 (anti - Pluto) 라고 불리는 천체가 있습니다. 오늘 소개할 90482 오르쿠스 (90482 Orcus) 가 바로 그것으로 현재 유력한 왜행성의 후보입니다. 다만 아직 정확한 크기에 대해서 이론이 있어서 조금 더 관측이 필요한 상태입니다. 이 행성이 반 명왕성이라고 불리는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명왕성과 상당히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위치가 반대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물질 - 반물질의 관계나 이성질체 (isomer) 같은 관계라고 할까요.
(오르쿠스의 실제 관측 모습 (녹색 원안) 90482 Orcus. The location of Orcus is shown in the green circle (top, left). Courtesy of NASA))
명왕성에 대해서는 이전 포스트들에서 설명한 것 처럼 현재 뉴 호라이즌스 호가 2015 년에 도착하면 상세한 내용들이 밝혀질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명왕성은 절반 지름의 위성 카론과 거의 쌍성계 같은 시스템을 가지고 있으며 카론을 포함해 무려 5 개의 위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명왕성에 대해서는 이전 포스트 참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2004 년 제미니 천문대의 마이클 브라운 (Michael Brown of Caltech) 과 챠드 트루질로 (Chad Trujillo), 예일 대학의 데이빗 레비노위츠 (David Rabinowitz of Yale University) 는 지금 명왕성이 있는 곳의 반대쪽에서 새로운 천체를 찾아냈습니다.
이 천체는 명왕성과 비교되는 여러가지 재미있는 특징들을 가지고 있어서 로마와 이탈리아 신화에서 명세를 저버린자를 심판하는 신이자 로마 신화의 명왕신인 플루토와 동일하게 여겨지는 신의 이름을 따 오르쿠스라는 명칭이 붙었습니다. 참고로 이 신은 로마에 큰 영향을 준 이탈리아 북부의 부족인 에트루리아 인의 저승신이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일설에 의하면 오르쿠스가 오크 (Orc) 라는 단어의 기원이라는 주장도 있음. 실제로 반지의 제왕의 작가 J.R.R. 톨킨이 주석에 남긴 바에 의하면 중간계의 오크는 영어의 오크와 연관이 없으며 후자는 라틴어의 오르쿠스에서 나온 단어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오히려 이것이 반대로 연관성을 시사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음. )
오르쿠스는 근일점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 에서 30.27 AU (약 45 억 km), 원일점 (태양에서 가장 먼 위치) 에서 48.07 AU (약 72 억 km) 떨어진 지점에서 태양을 공전합니다. (Semi-major axis 39.173 AU) 이심률은 0.227 정도로 지구에서 보면 20 도 가량 기울어진 궤도로 공전중입니다. 명왕성의 근일점이 29.657 AU (약 44.37 억 km) 이고 원일점이 48.871 AU (약 73 억 km) 인 것과 묘하게 비슷합니다. 명왕성의 이심률도 0.244- 0.248 정도이고 궤도의 기울어짐 역시 17 도 수준으로 큽니다. 공전 궤도 역시 오르쿠스가 245.18 년이고 명왕성이 247.68 년입니다.
그렇다면 서로 궤도가 겹치는 만큼 충돌 위험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게 서로 반대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명왕성이 근일점 일때 오르쿠스는 원일점에 위치하며, 오르쿠스가 근일점일 때는 명왕성이 원일점에 위치합니다. 또 궤도의 기울어짐도 서로 반대 방향입니다.
(노란색의 해왕성 궤도와 붉은색의 명왕성 궤도, 그리고 푸른색의 오르쿠스의 궤도. 글자 그대로 명왕성과 오르쿠스는 반대의 위치에 있음 http://en.wikipedia.org/wiki/File:TheKuiperBelt_Orbits_Orcus2.svg )
이와 같은 독특한 궤도는 태양계 외각에 있으면서 명왕성과 오르쿠스 모두에 중력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해왕성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명왕성과 오르쿠스 모두 해왕성과 2:3 궤도 공명 (2:3 orbital resonance) 을 하는데 이는 해왕성이 태양 주위를 3 번 공전할 때 명왕성과 오르쿠스는 2 번 공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천체를 가르켜 플루티노 (Plutino) 라고 부르는데 그 공전 궤도는 대략 247.3 년 정도가 됩니다. 즉 해왕성 때문에 공전 주기가 고정된 경우라고 할 수 있죠. (해왕성의 공전 주기는 164.79 년)
오르쿠스는 현재 (2014 년) 시점에서 원일점에 가까워져 태양에서의 거리가 약 48 AU 에 있습니다. 이대로면 원일점에 도달하는 것은 2019 년이 될 예정입니다. 반면 명왕성은 현재 32 AU 정도의 거리로 매우 가까운 위치이며 이미 근일점을 지난 상태입니다. 그러니 서로 마추지치 않고 궤도도 사실 틀립니다. 충돌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그런데 궤도만이 오르쿠스를 반 명왕성이라고 불리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연의 일치치곤 기묘하게도 오르쿠스는 거대한 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르쿠스의 지름은 761 - 807 km 정도 된다고 여겨지는데 (약간 측정이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음) 위성인 반스 (Vanth) 는 267 - 378 km 에 달하는 크기입니다. 대략 모성과 위성의 질량비가 1:12 에서 1:33 사이로 명왕성 - 카론의 경우보다는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약간 쌍성계에 가까운 행성 시스템이라고 하겠습니다.
오르쿠스는 명왕성처럼 집중적인 관측의 대상이 되지 못했고 그 크기도 실제로는 명왕성 보다 다소 작기 때문에 아직도 모르는 부분이 많습니다. 더구나 앞으로 한동안 탐사위성을 보낼 형편이 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지식은 지구에서 관측한 결과를 토대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재미있는 특징 때문에 명왕성의 동생이라 불릴만 합니다.
수십년 후에는 여기에도 탐사선을 보내 이 독특한 천체에 대해서 연구하는 날도 올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일단 지금은 명왕성이 먼저지만 말이죠.
참고
고든님의 블로그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문이 드는것이 허블은 수천 수억광년의 별을 관측 할 정도로 정밀한데 상대적으로 굉장히 가까운 명왕성은 자세히 관찰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답글삭제밝기의 차이입니다. 예를 들어 지구는 태양 빛의 22억분의 1을 받는데 명왕성은 다시 지구가 받는 에너지의 수만분의 1도 안되는 에너지만을 반사할 뿐입니다. 수백광년/수천광년 떨어진 별보다 훨씬 어둡죠. 별은 육안으로 보여도 명왕성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 좋은 증거입니다. 그리고 허블 우주 망원경도 수억 광년 정도면 은하 정도만 관측이 가능합니다. 초신성 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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