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40억년 전 고대 지구의 생화학 반응



(Scientists constructed this metabolism-like chemical network from non-enzymatic reactions that could have occurred in Earth's 4-billion-year-old oceans. The network shows that the reaction types depend on pH and the reaction rates depend on iron concentration (arrow thickness and red color intensity indicate the relative acceleration). Credit: Keller, et al. Science Advances)​


 오랜 세월 과학자들을 괴롭힌 문제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최초의 생명체가 어떻게 탄생했느냐는 질문이죠. 최초의 단세포 생명체에서 인류에 이르는 진화과정은 많은 부분이 밝혀져 있지만, 무생물에서 생물에 탄생하는 경이로운 과정에 대해서는 아직 수많은 가설들이 존재할 뿐입니다. 이 과정은 화석으로 남을 수도 없고 고대 지구의 환경을 현대에 똑같이 복원할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러 연구를 통해서 과학자들은 몇 가지 중요한 가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중에서 고대 지구의 바다 밑 진흙에서 중요한 생화학 반응이 일어났다는 가설이 있습니다. 물을 비롯한 여러 물질들이 높은 농도로 존재하기 때문에 각종 화학 반응이 일어나기 안성맞춤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지금도 실험실에서 각종 유기물이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과정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캠브리지 대학의 마커스 켈러와 마커스 랄서(Markus A. Keller and Markus Ralser from the University of Cambridge )는 이전에 발표한 논문에서 이런 진흙 환경에서 유기물 화학 반응이 효소 없이도 일어날 수 있음을 증명했습니다.


 글루코오스를 산소 없이 혐기적으로 분해하는 해당과정(Glycolysis)는 오늘날 대부분의 생명체에서 볼 수 있는 매우 기본적인 대사 과정으로 수많은 효소들이 관여하는 복잡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1개의 글루코오스 분자가 2개의 젓산 분자가 되면서 2개 ATP 및 부산물들을 내놓게 됩니다. 생화학을 배우면 빠지지 않는 매우 중요한 반응이죠.


 그런데 해당과정 전체가 효소없이 완벽하게 일어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복잡한 과정에 필요한 모든 효소가 저절로 생성된다는 것 역시 매우 기대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따라서 가장 논리적인 해결책은 과거 초기 생명체는 복잡한 효소가 없는 보다 단순한 과정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연구팀은 이전 연구에서 초기 지구에 풍부했던 (당시에는 산소가 적어서 철 이온이 산화철이 되지 않고 풍부하게 존재할 수 있었음) 철 성분이 촉매의 역할을 해서 글루코오스를 피루빈산(Pyruvate)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피루빈산은 해당과정의 중간 산물로 여러 대사 과정에 사용되는 중요한 물질입니다.
 이런 과정이 복잡한 효소없이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은 초기 생물체의 탄생에 중요한 과정이 처음에는 효소없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연구팀은 여기서 더 나아가서 피루빈산 생성과정과 해당과정의 다른 경로인 오탄당인산경로(pentose phosphate pathway)가 철과 유기물이 풍부한 진흙 환경에서 효소의 도움 없이 철을 촉매로 하여 발생할 뿐 아니라 pH에 따라 반응의 종류가 바뀔수 있음을 입증했습니다. (위의 개념도)
 연구팀에 따르면 철의 농도는 반응 속도에 영향을 주고 pH는 (즉 산과 염기, 중성) 반응의 종류와 반응 중단에 영향을 준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반응 조절은 현대의 세포 내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지만 무생물 환경에서는 보기 어려운 현상입니다. 
 아마도 초기 생물체는 이렇게 복잡한 효소 없이 여러 가지 생화학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에서 탄생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정밀하고 효율적인 화학 반응을 위해서 효소를 하나씩 도입해서 현재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처음부터 복잡한 효소의 존재가 필요하다면 생명체는 사실 탄생할수가 없는 것이죠.
 다만 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아직도 논란이 많은 분야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쩌면 이 문제의 답은 지구에서 찾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일부 과학자들은 이 과정이 유기물이 풍부한 운석이나 혜성 같은 우주공간에서 진행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니까요.
 진실이 어떤 것인지를 알기는 쉽지 않지만, 언제나 그러했듯이 인류가 언젠가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참고 ​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세상에서 가장 큰 벌

( Wallace's giant bee, the largest known bee species in the world, is four times larger than a European honeybee(Credit: Clay Bolt) ) (Photographer Clay Bolt snaps some of the first-ever shots of Wallace's giant bee in the wild(Credit: Simon Robson)  월리스의 거대 벌 (Wallace’s giant bee)로 알려진 Megachile pluto는 매우 거대한 인도네시아 벌로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말벌과도 경쟁할 수 있는 크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암컷의 경우 몸길이 3.8cm, 날개너비 6.35cm으로 알려진 벌 가운데 가장 거대하지만 수컷의 경우 이보다 작아서 몸길이가 2.3cm 정도입니다. 아무튼 일반 꿀벌의 4배가 넘는 몸길이를 지닌 거대 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메가칠레는 1981년 몇 개의 표본이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추가 발견이 되지 않아 멸종되었다고 보는 과학자들도 있었습니다. 2018년에 eBay에 표본이 나왔지만, 언제 잡힌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 벌은 1858년 처음 발견된 이후 1981년에야 다시 발견되었을 만큼 찾기 어려운 희귀종입니다. 그런데 시드니 대학과 국제 야생 동물 보호 협회 (Global Wildlife Conservation)의 연구팀이 오랜 수색 끝에 2019년 인도네시아의 오지에서 메가칠레 암컷을 야생 상태에서 발견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메가칠레 암컷은 특이하게도 살아있는 흰개미 둥지가 있는 나무에 둥지를 만들고 살아갑니다. 이들의 거대한 턱은 나무의 수지를 모아 둥지를 짓는데 유리합니다. 하지만 워낙 희귀종이라 이들의 생태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동영상)...

몸에 철이 많으면 조기 사망 위험도가 높다?

 철분은 인체에 반드시 필요한 미량 원소입니다. 헤모글로빈에 필수적인 물질이기 때문에 철분 부족은 흔히 빈혈을 부르며 반대로 피를 자꾸 잃는 경우에는 철분 부족 현상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철분 수치가 높다는 것은 반드시 좋은 의미는 아닙니다. 모든 일에는 적당한 수준이 있게 마련이고 철 역시 너무 많으면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철 대사에 문제가 생겨 철이 과다하게 축적되는 혈색소증 ( haemochromatosis ) 같은 드문 경우가 아니라도 과도한 철분 섭취나 수혈로 인한 철분 과잉은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높은 철 농도가 수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하버드 대학의 이야스 다글라스( Iyas Daghlas )와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의 데펜더 길 ( Dipender Gill )은 체내 철 함유량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적 변이와 수명의 관계를 조사했습니다. 연구팀은 48972명의 유전 정보와 혈중 철분 농도, 그리고 기대 수명의 60/90%에서 생존 확률을 조사했습니다. 그 결과 유전자로 예측한 혈중 철분 농도가 증가할수록 오래 생존할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유전자 자체 때문인지 아니면 높은 혈중/체내 철 농도 때문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높은 혈중 철 농도가 꼭 좋은 뜻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하는 결과입니다.   연구팀은 이 데이터를 근거로 건강한 사람이 영양제나 종합 비타민제를 통해 과도한 철분을 섭취할 이유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어쩌면 높은 철 농도가 조기 사망 위험도를 높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임산부나 빈혈 환자 등 진짜 철분이 필요한 사람들까지 철분 섭취를 꺼릴 필요가 없다는 점도 강조했습니다. 연구 내용은 정상보다 높은 혈중 철농도가 오래 유지되는 경우를 가정한 것으로 본래 철분 부족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낮은 철분 농도와 빈혈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은 이미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철...

사막에서 식물을 재배하는 온실 Ecodome

 지구 기후가 변해가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비가 더 많이 내리지만 반대로 비가 적게 내리는 지역도 생기고 있습니다. 일부 아프리카 개도국에서는 이에 더해서 인구 증가로 인해 식량과 물이 모두 크게 부족한 현상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사막 온실입니다.   사막에 온실을 건설한다는 아이디어는 이상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사막 온실이 식물재배를 위해서 시도되고 있습니다. 사막 온실의 아이디어는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큰 사막 환경에서 작물을 재배함과 동시에 물이 증발해서 사라지는 것을 막는데 그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막화가 진행 중인 에티오피아의 곤다르 대학( University of Gondar's Faculty of Agriculture )의 연구자들은 사막 온실과 이슬을 모으는 장치를 결합한 독특한 사막 온실을 공개했습니다. 이들은 이를 에코돔( Ecodome )이라고 명명했는데, 아직 프로토타입을 건설한 것은 아니지만 그 컨셉을 공개하고 개발에 착수했다고 합니다.   원리는 간단합니다. 사막에 건설된 온실안에서 작물을 키움니다. 이 작물은 광합성을 하면서 수증기를 밖으로 내보네게 되지만, 온실 때문에 이 수증기를 달아나지 못하고 갖히게 됩니다. 밤이 되면 이 수증기는 다시 응결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에코돔의 가장 위에 있는 부분이 열리면서 여기로 찬 공기가 들어와 외부 공기에 있는 수증기가 응결되어 에코돔 내부로 들어옵니다. 그렇게 얻은 물은 식수는 물론 식물 재배 모두에 사용 가능합니다.  (에코돔의 컨셉.  출처 : Roots Up)   (동영상)   이 컨셉은 마치 사막 온실과 이슬을 모으는 담수 장치를 합쳐놓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실제로도 잘 작동할지는 직접 테스트를 해봐야 알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