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역대 정권별 정부 부채 증가
한국의 정부 부채는 앞서 이야기 했던 대로 1997 년에는 GDP 의 11.9% 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정부 부채가 과연 얼마나 되는 것이 적정한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그럴 듯한 평가는 다른 부채에 대한 평가와 마찬가지로 빚과 이자를 갚아나갈 수 있는 능력, 즉 상환 능력에 달려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 재산이 1억원인데 부채가 1 억원인 경우와 재산이 10 억인데 부채가 5억인 경우를 가정해 보면 전자가 후자보다 재정 상태가 더 나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연소득이 5천만원인 사람과 1억인 사람이 1억 정도의 빚을 가지고 있을 때 전자보다는 후자가 더 부채에 대한 부담이 적다는 것은 복잡한 설명이 없어도 이해가 가능한 이야기 입니다.
일반적으로 개발 도상국 단계에서는 국가 조세 수입이 상대적으로 적고 국가 재정도 빈약하기 때문에 GDP 대 부채가 40 -60 % 정도 수준이 장기적으로 건전한 재정 운용이 가능한 수치로 생각되는 반면 재정 확보가 용이한 선진국의 경우에는 GDP 대비 85 - 90% 까지도 수용이 가능할 수 있으나 EU 나 IMF 등은 60% 정도를 재정 건전화 목표로 권고하고 있습니다.
OECD 국가들의 경우 2008 년 글로벌 경제 위기가 닥치기 전까지는 평균 60% 이하 수준을 그럭 저럭 유지할 수 있었으나 경제 위기와 더불어 공격적인 적자 재정을 편성하여 2010 년에는 GDP 대비 74% 수준까지 상승했고 이는 현재도 계속 상승 중에 있습니다.
아무튼 1997 년 당시 GDP 대비 11.9% 라는 국가 부채는 어떤 기준으로 해도 매우 낮은 수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액수로 보면 60 조원 가량이었는데 당시엔 일반회계 및 공적 자금에서 생기는 부채는 0 원이었고 외환시장 안정용 및 국민 주택기금, 기타 등이 대다수를 차지합니다.
(참고 : 일반회계 - 일반적 국가활동에 관한 세입/세출을 포괄하는 정부 회계를 기준으로 하는 예산. 즉 국가 재정의 근본 수입인 조세를 세입으로 하고 국가 존립과 유지를 위한 기본적 경비를 세출로 하는 예산임. 예를 들어 국방비 같은 경우.
이와 대비되는 개념은 특별회계로 현대에 들어와 국가의 구조가 복잡해지고 나라에서 관리하는 사업이 많아짐에 따라 국가가 특정사업을 운영하거나 특별자금을 보유, 운용할 때, 특정 세출을 특정 세입에 의해서만 충당할 경우를 의미함. 정부 예산은 일반회계와 특별회계를 합쳐 말하는 의미)
현재 한국 역시 국가 채무의 대부분 (90% 이상) 형태는 국가에서 발행하는 채권인 국채의 형태입니다. 여기에 정부가 직접 중앙은행으로 부터 빌린 차입금과 기타 국고 채무 부담행위 + 지방 정부 채무 (물론 여기서 지방정부의 대중앙 정부 채무는 제외한 금액) 를 합쳐 국가 채무라고 지칭합니다.
아무튼 한국의 국가 채무가 갑작스럽게 증가하는 이벤트가 1997 년 발생하니 모두들 짐작하실 수 있듯이 바로 외환 위기입니다. 당시 외환위기는 국가 채무가 아니라 막대한 단기 외채를 갑자스럽게 갚지 못해서 생긴 것이기 때문에 1998 년에도 국가 채무는 생각보다 급격히 증가하지는 않아서 80.4 조원에 이르렀습니다.
(1997 년에서 2015 년 까지의 국가 채무 - 2011 년 이후는 추정치임. 클릭 하면 원본, 출처 : 기획재정부 )
그러나 이후 한국의 국가 채무는 계속 증가할 수 밖에 없었는데 여기에는 지금 우리가 흔히 기억하듯이 부실 금융 기관 및 기업을 살리기 위해 막대한 공적 자금 (Public fund) 가 투입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에 포함해서 당시 경제가 심각하게 위축됨에 따라 불가피하게 세수가 감소하여 일반 회계에서도 적자가 발생하기 시작했으며 외환 시장 안정용의 채권 역시 외환 보유고 확대를 위해 점차 확대되었으므로 국가 부채가 이후 5 년 이상 증가되는 중요한 원인이 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당시에 부실 금융 기관들과 일부 기업들의 과도한 차입경영으로 인한 손실은 다음 년도 회계에 바로 모두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1998 - 2003 년 사이 국민의 정부 (김대중 정부) 시절 마지막 2003 년을 제외하곤 공적 자금으로 인한 국가 부채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이 때 들어간 공적자금은 지금까지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당시 한국이 부실 금융 기업 및 부실 기업으로 인한 손실은 막대한 수준이었는데 이들을 모두 파산 처리하면 국가 경제가 마비될 우려가 있으므로 대부분은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회생 절차를 겪게 됩니다. 이 때까지 한국에는 공적 자금이라는 개념이 없었으나 당시 IMF 와 구조 조정에 합의하면서 MOU 에 이와 같은 내용이 명시되고 공적 자금이 조성 투입되게 됩니다.
우선 1997 년말에서 1999 년 말 정부는 단기 외채 급증의 주범이었던 종금사 (종합금융사) 및 기아, 한보 철강의 연쇄부도로 재무건전성이 심각하게 저하된 제일, 서울 은행 정상화를 위해 64 조원 규모의 채권발행자금 공적 자금을 투입하고 금융 구조조정을 수행하였습니다. (이 시기 이후로 종금사는 사라짐)
그러나 다시 2000 - 2001 년 사이 외환 위기 및 지나치게 공격적인 경영으로 심각하게 부실해진 대우 계열사 부도가 발생하자 2번째 공적 자금 투입이 결정되었습니다. 2000 년 12월에만 40 조원의 공적 자금이 추가로 조성되었습니다. 따라서 2002 년 초에는 투입된 공적 자금의 양이 총 155 조원에 달했습니다. 그런데 이 금액은 바로 국가 채무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공적 자금은 회수가 가능한 금액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인데, 만약 회수 못하고 국가에서 매워주는 금액 중 예산으로 처리가 불가능한 부분은 국가 채무로 확정됩니다. 2000 년 정부와 국회는 '공적 자금 관리 특별법' 을 제정해서 2002 년 이후에는 공적 자금을 다시 회수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또 이의 회수 및 관리를 원활히 하기 위해서 2001 년 2월에 공적 자금 관리 위원회를 발족시켰습니다.
이렇게 2002 년 이후 공적 자금의 회수 - 주로 은행 및 기업의 지분 매각, 직접 자금 회수 등 - 를 통해 회수한 액수도 사실 그렇게 적지는 않습니다. 1997 년 11월 부터 2012 년 4월까지 지원된 공적 자금은 168조 6000 억원이며 이 중 회수된 것은 103 조 1000 억원으로 회수율은 61.1% 정도입니다. 이 중에서 2009 년 이후 조성된 공적자금은 이전에 외환 위기와 관련해서 생긴 액수이기 때문에 공적자금 I 이라고 분류하고 그 이후 발생한 신규 공적 자금은 공적자금 II 로 분류해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공적 자금 II 역시 부실 금융 기관 정리 등에 사용됨)
아무튼 168 조 6000 억원 중 103 조 1000 억을 회수 했다면 회수 못한 65.5 조원 중 상당 부분이 국채로 전환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공적 자금으로 인한 국채 증가가 2003 - 2007 년 사이 집중된 원인으로 회수 못한 공적 자금의 상당수가 국채 전환되어 국민 부담으로 확정된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당시 (참여 정부, 노무현 정부) 국가 채무가 증가한 가장 주된 원인은 미회수 공적 자금의 국채 전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이와 함께 1998 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는 항목이 외환 시장 안정용 관련 예산입니다. 이는 우리 나라가 발행하는 달러 및 원화표시 국채인 외국환 평형 기금 채권 (외평채 : Foreign exchange equalization bond) 에 관련된 항목입니다. 외평채 자체는 1967 년 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본래는 원화 표시 채권만 있었으나 1998 년 이후로는 부족한 외화를 조달할 목적으로 달러 표시 채권도 같이 발행하고 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외환 보유고로 사용됩니다. (다만 외평채는 외환 보유고 확보에 한 방법이지 유일한 수단은 아닙니다. 따라서 외평채 규모는 당연히 외환 보유고 보다 작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더 설명해야 하는 것은 국가 채무의 대부분을 이루는 국채에 대한 설명인데 외평채의 경우 2003 년 이후 그냥 국고채로 통합되어 현재는 달러 표시 외평채만 존재합니다. 따라서 현재 한국에서 발행하는 국채는
1. 국고채 : 시장 금리로 경쟁입찰
2. 제 1 종 국민 주택채 : 3% 금리 5년 만기 발행
3. 제 2 종 국민 주택채 : 0% 금리로 10 년 만기로 발행
4. 외평채 : 시장 금리로 10 - 20 년 만기로 경쟁 입찰. 달러 표시 국채
입니다. 아무튼 이렇게 외평채가 계속 증가했다는 것은 결국 정부가 계속 많은 외환 보유고를 확보하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말안해도 아시겠지만 1997 년 외환위기에 너무 고생을 했기 때문에 다시 그런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손에 막대한 외화를 들고 있어야 할 필요성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당장에 필요하지 않은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이자를 국민 세금으로 지급해야 하는 문제도 있기는 하지만 미래에 다시 외환 위기를 겪지는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외환 시장 안정용 채권 (외평채) 관련 항목 부채는 계속 늘어나 1997 년에는 4.2 조원에 불과하던 것이 2011 년에는 137 조원으로 증가했으며 2015 년까지 195 조원 규모로 계속 증가 국가 채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라는 점이 한국의 국가 채무의 특이한 점입니다. 사실 현재도 일반회계 채무 만큼 외평채 관련 채무가 많다는 것은 1997 년의 외환 위기만 없었다면 아마도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사실 1997 년 이후의 국가 채무 증가의 단일 원인으로 가장 중요하게 지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외환 위기라고 하겠습니다. 단순히 이때 투입된 공적 자금 뿐이 아니라 이 때 이후로 외평채가 급격히 증가하게 되면서 현재까지도 국가 채무에서 담당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그 외에도 일반 회계 예산도 슬금슬금 조금씩 증가했고 주택 건설 관련 - 특히 노무현 정부 당시 아파트 가격 폭등으로 인해 주택 건설에 대한 강한 이유가 생겼던 시기 - 해서 국민 주택 기금도 조금씩 증가하게 됩니다.
그러다 한국의 국가 부채가 단시일 내로 가장 크게 증가한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2008 년 글로벌 경제 위기 입니다. 사실 액수로만 보면 2008 년에서 2010 년 사이에 83.2 조원의 국가 채무가 증가해서 국가 채무 증가를 주도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이렇게 국가 채무가 급증한 이유는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확장적인 적자 재정을 편성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당시 국가 채무 증가를 주도한 것은 바로 일반 회계 부분이었습니다.
2008 - 2010 년 사이 국가 채무의 증가의 대부분이 국채 증가 (83.2 조원 중 77.8 조원) 이었는데 그 중 외평채 보다는 국고채의 증가 (70.8 조원) 이 가장 중요한 원인을 차지했습니다. 이 시기 의도적으로 적자 재정을 편성한 것이 원인이었습니다. 반면 공적 자금으로 인한 국가 채무는 노무현 정부 시절 이미 반영이 끝났고 이후 발행한 액수는 얼마 안되는 관계로 점차 감소했습니다.
사실 2008 년 금융 위기 자체가 발생시킨 국가 채무는 1997 년 외환 위기 시절 보다 더 큰 규모라곤 할 수 없지만 반영이 즉시 된 특징 때문에 2008 에서 2010 년 사이 국가 채무가 가장 빠르게 증가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2011 년에서 2015 년 사이에는 다시 균형 재정을 달성하는데 주력할 예정이라서 만약 다시 비슷한 위기 상황만 오지 않는다면 균형 재정 달성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문제는 유럽 재정 위기가 확산되거나 기타 다른 변수로 위기가 다시 찾아오는 경우입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1997 년에서 2011 년 사이 한국의 국가 채무의 과거 추이를 바라본다면 한국은 일반 회계에서 발생하는 국가 채무는 일반적으로 크지 않으며 국가 재정은 꽤 균형을 잘 맞추고 있는 상황입니다. (의도적 적자 재정을 편성한 2008 - 2010 년 사이는 예외) 앞서 살펴본 두 국가 - 일본과 미국 - 과는 달리 정부 예산에서 나는 적자보다는 공적 자금이나 외평채등에서 나오는 채무가 상대적으로 큰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만성적으로 해결하기 힘든 이유로 인해 국가 채무가 증가한 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 채무가 증가하게 된 가장 중요한 두가지 이유는
1. 외환위기 (1997년)
2. 글로벌 금융 위기 (2008년)
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런 이벤트들에 의해 국가 채무가 크게 증가된 것이 한국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 미국이나 일본은 물론이고 유럽 선진국들 처럼 국민들에게 아주 적극적인 복지 정책과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국가는 아니기 때문에 조세 부담율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균형 재정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국가 채무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다음에 다시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다음에 계속 :
출처
2011 년 - 2015 년 국가 채무 관리 계획
부채경제학과 한국의 가계 및 정부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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