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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을 뒤흔든 주식 사기 - 사우스 시 음모 사건



 
 요즘 금융위기가 한창이다. 많은 이들을 힘들게 하는 이 글로벌 금융위기는 사상 최악의 경제 위기였던 역사적인 대공황을 떠올리게 할 만큼 위력적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에게 친숙하지는 않지만 이미 17/18세기 부터 금융 버블 붕괴나 공황 사태는 있어왔다. 이미 자본주의의 초기 부터 과도한 수익율을 기대한 금융 거품이나 혹은 아예 작정하고 친 금융 사기들이 있어왔단 이야기다. 그 중에서 오늘 이야기할 사우스 시 회사 (South Sea Company : 남해회사) 사건은 300년전 18세기 초 영국을 파산 지경으로 몰아간 사건이었다.




 (사우스시 사건을 풍자하는 그림)




 1. 사우스시 회사의 설립 배경


 자본주의의 선두 주자인 영국에서는 이미 17세기 후반인 1690년대에 주식회사 설립 붐이 일어날 정도로 초기 자본주의가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주식회사라는 것은 동인도 회사 같이 확실한 수입원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보물 찾기나 황당한 발명품을 소재로한 벤처 회사였다. 이를 테면 바다에 침몰한 보물선을 찾기 위해 설립한 회사라든가 한꺼번에 여러마리의 쥐를 잡는 획기적인 신형 쥐덧을 개발한 회사라든지 하는 엉뚱한 회사들이 많았다. 이들은 1690년대 말 대부분 파국을 맞게 된다.


 그러나 비록 산업 혁명 전이라도 17세기 네덜란드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영국은 점차 바다의 제왕으로 초기 자본주의의 무역 대국으로 성장하는 중이었다. 따라서 동인도 회사나 영국 최초의 보험 회사인 선 파이어등 성공적인 주식회사들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인 사우스 시 회사 (South Sea Company) 도 사실 설립될 당시에는 영국 정부에 의해서 설립되는 멀쩡한 회사였다. 다만 이 회사의 설립 목적은 이윤 추구는 아니었다.  1711년 사우스 시 회사가 설립된 이유는 당시의 잦은 전쟁으로 많은 부채를 떠안은 영국 정부를 구제하기 위해서였다.


 즉, 처음 설립 당시에는 1000만 파운드라는 당시 돈 가치로는 엄청난 부채를 정부 대신 떠안기 위해 설립된 것이다. 대신 이 회사는 라틴 아메리카의 스페인 식민지와의 독점 무역권을 보장 받았고, 수년 후에는 해당 지역의 흑인 노예 공급의 독점권도 같게 된다. 한마디로 당대의 블루칩(우량주)로 잘나가던 동인도 회사 (East india Company) 의 남미판을 새로이 만들었던 것이다.





 (사우스 시 회사의 주무대는 남미와 남 대서양이었다)




 사우스 시 회사는 영국정부의 국채를 일정 일자를 받는 조건으로 사들이고, 다시 이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했다. 즉 정부 국채를 보유한 사람이 결국은 사우스 시의 주식으로 국채를 전환해 국채를 줄이고 영국 정부의 빚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쉽게 예를 들어 내가 정부 채권 100 파운드를 가지고 있다고 하자. 그 채권에 대해 정부는 지급을 보증해야 하고 이자도 지불해야 한다. 한마디로 국가의 부채다. (영국은 이미 이 시기 이런 근대적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사실 이건 오늘날의 국가에서도 흔히 보는 사례다.


 다만 당시 영국 정부는 현재의 영국 정부처럼 빚더미에 올라 있었다. 그래서 이런 제안을 한다. '당신이 가진 채권 100 파운드를 국영기업 주식 100파운드로 바꿔 주겠다. 그런데 이 회사는 전도 유망한 회사라서 현재 주식 100 파운드를 가지고 있으면 더 오를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바꾸는게 당신도 이득이다.'


 아닌게 아니라 이 회사 주식은 당대의 테마주 였다. 100 파운드 가지면 몇 배나 오를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국가에서 보증하는 안전한 회사다. 그러면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모두 자신의 국채를 이 회사 주식으로 전환해 달라고 아우성 치지 않겠는가?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국가도 부채를 덜어 정부 재정도 건전해 지고 국채의 낮은 수익율에 실망한 투자자들도 훨씬 고수익을 올릴 수 있으니 이거야 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고가 아닌가?



 (사우스 시 회사 본사의 모습. 본래는 제대로 된 국영 무역 회사였다)




 설립 당시 이런 좋은 취지로 설립된 회사인 사우스 시 회사는 언듯 듣기엔 제법 그럴 듯 해 보인다. 그런데 이렇게 국가 부채를 해결할 좋은 묘책이 있는 데 왜 현대 국가들은 이런 좋은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걸까? 결론 부터 말하면 이 사우스 시 사건이 대재앙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 보면 정부도 이익이고 국채에 투자한 사람도 이익 같지만 이 세상에 모두가 이익만 보는 그런 환상적인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 법이다.




 2. 사우스 시 음모 사건


 당시 사우스 시 회사가 동인도 회사 처럼 잘 나갔다면 그래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아무리 식민지 무역이라지만 무슨 황금알을 낳는 거위도 아니고 더군다나 라틴 아메리카는 영국 식민지도 아니지 않는가. 이 지역이 잘사는 지역도 아닌데 이 지역과의 무역이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설립 목적 자체가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는 것인 만큼 어떻게든 채권을 가진 사람들이 주식으로 전환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할 가장 확실한 방법은 주식이 오르는 것이다. 주식이 오르거나 오를것이라고 믿는 다면 모두가 주식으로 전환하려 할 테고 그렇다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닌가?


 이 회사의 이사진들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한가지 변수가 나타난다. 이 회사의 임원들이 단지 채권만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도 올릴 묘책을 생각한 것이다. 1720년 당시 영국 정부의 채권 규모는 3000만 파운드였다. 만약 회사가 3000만 파운드 채권을 다 사들이다고 가정하자. 여기서 100 파운드 짜리 주식으로 만들어 전환한다면 30만 주가 된다. 100 파운드 채권을 사들여 100 파운드 주식으로 전환한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100파운드 채권을 200 파운드 액면가 주식으로 팔면 어떨까. 즉 회사가 3000만 파운드 채권을 사들인 다음 200 파운드 액면가 주식을 만들어 15만 주만 전환하는 것이다. 나머지 15만주는 시중에 팔아서 회사의 이익이 되고 이 이익은 회사와 정부가 나눠 갖는다. 한마디로 주식회사가 사업을 통해 돈을 버는게 아니라 주식을 새로 대거 발행하여 돈을 벌겠다는 뜻이다.


 오늘날에 이렇게 무모한 수준의 신주 (당시 영국 정부의 거대한 부채 수준의 주식) 를 발행한다면 주가가 폭락해 아무런 이득을 볼 수 없고 주주들의 항의는 빗발칠 것이다. 그러나 당시가 자본주의의 초기임을 생각해 보자. 주식 시장을 감독할 기관도 없고, 주식의 가치를 설명한 투명한 회계나 지표도 전혀 모르는 상태이다. 그런데 이 주식이 많이 오를 거라는 루머가 돌기 시작한다. 그리고 묻지마 투자를 감행할 투자자만 있다면 이 계획도 성공 가능성이 있다. 한마디로 정부 주도하에서 일어난 주식 사기인 셈이다.


 1720년 사우스 시 주식의 3차 전환이 일어난다. 당시 재무장관 에이슬레이비는 이 계획의 지지자 중 하나였다. 당시 영국 의회에서는 이 회사 주식의 전환 조건을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즉 100 파운드 채권을 얼마짜리 액면가 주식으로 팔지 미리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식적인 가격으로 주식을 팔면 회사가 이득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사우스 시 회사는 재무장관은 물론 의회의 유력 의원과 관료들에게 일종의 스톡옵션을 제공하여 이미 매수를 해놨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들에게 현찰이 아니라 주식을 줌으로써 이들이 주식을 올리는데 동참하겠금 만든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회사의 내재 가치를 측정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주식의 적정가는 알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워 전환 비율을 끝내 정하지 않았다. 이후 주식이 오르기 시작하자 당대의 애널리스트들은 주식이 오늘 수록 그 주식의 내재가치가 커진다는 허무 맹랑한 논리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당시의 언론을 동원한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음모 세력 (요새말로 하면 작전 세력)들은 이 회사의 주식이 앞으로 크게 오를 것이며, 매우 전도 유망하다는 증권가 루머를 퍼트렸다. 결국 투자자들이 몰리며 이 회사 주식은 급등하기 시작한다.




      (1720년 사우시 시 주식은 크게 올랐다가 곤두박질 친다)




3. 사우스 시 회사의 파국과 종말


 이를 검증할 능력이 되지 않는 일반 대중들에게 사우스 시 주식은 정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일단 정부가 보증하는 회사이니 절대 망할리 없다는 신념이 있었다. 여기에 당시 언론과 루머들은 이 회사 주식을 사두면 많이 오를 거라고 했다. 실제로 이 회사 주식은 1720년 상반기 가파르게 상승했다. 여기 저기서 사우스 시 주식을 사들여 부자가 됐다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과거 우리의 펀드나 벤처 열풍을 능가하는 주식 광풍이 영국을 휩쓴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사우스 시 버블을 묘사한 그림)



 사우스 시 회사의 임원으로 이 음모의 주동자인 블런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가를 끌어올리는 게 회사의 이익을 위해 좋은 일' 이라는 경영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주식 회사란 주식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서 사업에 투자하여 이익을 내고 이를 배당금으로 배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회사이지 정부의 채권을 해결해 주거나 사업에선 손해를 봐도 주식을 팔아서 돈을 버는 회사가 아니다. 이것이 오늘날 사우스 시 같은 회사가 없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버블 붕괴 후의 생각이고 이때 당시 영국인들 사이에는 광풍처럼 사우스 시 주식 열풍이 불었다.


 심지어 이 사우시 시 주식을 사들인 사람 중에는 노년의 아이작 뉴튼 경도 있었다. 당시 아이작 뉴튼 경은 많은 손해를 보고 난 후 " 천체의 운행은 예측할 수 있지만 인간의 광기는 알 수가 없다" 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아이작 뉴튼 경)



 아무튼 당시 영국의 주식 거래 장소인 익스체인지 앨리에는 전국에서 사우스 시 주식을 사러온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다들 일확천금의 꿈에 눈이 멀어있는 상태였다. 이들은 사우스 시 주식만 아니라 다른 소위 '유망주' 들을 매입했다. 이른바 대세 상승장이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꾼들이 돈을 벌기는 식은 죽 먹기였다. 여기 저기서 기존의 정상적인 사업을 하던 회사들의 주식이 갑자기 유망주로 바뀌며 급등했다.


 여기에 분명히 사기인게 확실한 새로운 벤처 기업들도 등장한다. 당시 등장한 회사들 중에는 사우스 시 주식을 매매하는 것을 주업으로 주식을 공모한 기업도 있었다. 그러나 이건 약과였다. 어떤 회사는 '모든 영국인에게 장례를 치뤄주는 게 목적' 인 사업으로 주식을 팔았고, 심지어는  납에서 은을 추출하는 신기술을 개발한 회사나 영구적으로 돌아가는 바퀴를 개발한 회사의 주식까지 등장한다. 그러나 이중에서도 가장 황당한 사기는 '엄청난 이익을 올릴 수 있지만 무엇인지는 공개할 수 없는' 회사의 주식이었다.



 물론 당시에 모든 이들이 이런 사기에 속지는 않았다. 아무리 테마주니 유망주니 해도 비상식적으로 오르기만 할수 없는게 분명했다. 그들은 이 소동을 냉소적으로 바라봤다. 이 중에서도 '걸리버 여행기'를 쓴 풍자작가 조나단 스위프트의 풍자는 날카로웠다.  그의 편지에 있는 내용중에 하나다.


 <어느날 런던에서 온 사람들에게 누군가 그들의 종교는 무엇인지 물어보자 "사우스 시 주식이오" 라고 대답했다. 다른 누군가가 영국 정부의 정책은 무엇인지를 묻자 "사우스 시 주식이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영국의 주요 무역품과 주 산업은 무엇인지를 묻자 역시 "사우스 시 주식" 이라는 대답만 되풀이했다>


 한마디로 당시의 영국은 미쳐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생업을 내팽개치고 주식을 사기 위해 익스체인지 앨리로 모여들었다. 주식이 너무 오르자 많은 이들이 비 상식적으로 올랐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주식을 사는 일을 멈추진 않았다. 자신도 멍청할 정도로 비싸게 주식을 샀지만 누군가 더 멍청한 이가 등장해 이 주식을 더 비싸게 사리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결말은 더 이상 바보는 등장하지 않고 주식을 가지고 있는 모든 이가 바보가 되는 것이다.


 마침내 하늘 무서운 줄 오르고 상승하던 사우스 시 주식은 곤두박질 치기 시작했다. 물론 다른 사기성 벤처기업들도 마찬가지로 폭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규모 면에서 이들은 당대 테마주인 사우스 시에 비하면 새발에 피였다. 고점에서 주식을 사들인 이들은 자신이 1000 파운드에 산 주식이 200 파운드 밑으로 폭락하는 것을 망연자실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주식을 파는 이는 있어도 사는 이는 없으니 대부분 그들이 가진 주식은 요즘 말로 반토막은 양반이고 1/4 토막 이하로 떨어져 '갈치' 만도 못한 상황이었다. 영국은 거의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사우스 시 버블을 풍자한 그림)




 당시 국영기업이라 믿고 이 회사 주식을 사들인 수많은 투자자들은 재산을 날리고 분노에 가득차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에서 회사 임원을 포함한 관련자 처벌을 주장했다. 당시 국민들의 분노에 놀란 영국 의회는 진상 조사단을 차리고 관련된 책임자를 엄중 문책한다. 회사는 사라지고 임원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모은 재산들은 몰수 되었다. 그리고 이후 영국 의회는 투기를 제한하기 위한 각종 법률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불법적인 공매도, 선물 ,옵션거래를 금지하는 버나드 법과 반버블법이 제정되어 19세기 까지 이어지기에 이른다.



 이러한 사우스 시 음모가 가능했던 것은 당시 자본주의와 주식시장의 초기 단계로 일단 시장이 미숙한 탓이 제일 컸다. 그러나 이 사우스 시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그것만이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이 때 있었던 묻지마 투자나 주식 투기 광풍은 오늘날의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다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주식이 오를 땐 고점에 가까워 져도 더 오를 수 있다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무장하고 주식을 사라고 권유하는 모습은 왠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근거없는 루머와 대세 상승장이라는 말에 휩쓸려 너도 나도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는 모습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비교적 상식적인 10% 미만의 수익율을 보이는 국채나 은행 이자에 답답해 하면서 수십 - 수백 %의 고수익을 꿈꾸고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주식에 투자하는 수많은 개미 투자자의 모습 또한 우리에게 친숙한 모습이다. 이들은 결국 고점에서 사들여 폭락장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다. 사우스 시 사건에서 마지막에 농부, 마부, 푸줏간 주인같은 서민들이 주식을 사들였다 결국 가장 큰 피해를 보았듯이 말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사우스 시 사건이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사우스 시 사건은 인간의 어리석음이 시간이 지나면서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규모만 확대되어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과거의 잘못을 역사라는 이름으로 공부해야만 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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