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yronema mycelium growing over soil and charcoal. Credit: Maria Ordonez/UCR)
(Fungal cultures in the Glassman lab. Credit: Maria Ordonez/UCR)
작은 실수로 인해 발생한 산불은 순식간에 모든 것을 집어 삼킬 수 있습니다. 물론 자연적으로 발생한 산불 역시 예외일 순 없습니다. 하지만 산불이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자연 산불은 종종 어떤 식물의 번식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산불 상황에서 식물들은 뜨거운 열과 건조함을 이용하여 씨앗을 퍼뜨리는 독특한 생존 전략을 사용합니다. 수양병솔나무는 산불 시 발생하는 상승 기류를 활용해 씨앗을 멀리 날리며, 자이언트 세콰이어 나무와 솔방울은 고열(200도 이상)에 건조해진 비늘이 열리면서 씨앗을 쏟아내는 방식(화재적응성)으로 번식 합니다.
그런데 산불을 기다리는 생명체는 이들만이 아닙니다. 다른 동식물이 죽으면 파티가 열리는 곰팡이 역시 산불을 기다립니다. 곰팡이 가운데는 이런 환경에 적응해서 아예 숯 (charcoal)을 먹을 수 있게 진화한 경우도 있습니다. 시드니 글래스먼(Sydney Glassman, UCLA 미생물학 및 식물병리학 조교수)가 이끄는 캘리포니아 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UCR)의 연구팀은 산불 이후 급격히 반성하는 균류를 연구했습니다.
일부 균류는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다가 산불이 지나가고 난 후 폐허가 되면 폭발적으로 번성합니다. 이들이 불에 탄 숯이나 잔해를 분해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전부터 알려져 있긴 했으나 그 구체적인 기전은 잘 몰랐습니다. 연구팀은 5년에 걸쳐 캘리포니아의 7개 산불 현장에서 수집한 균류를 모아 유전자를 시퀀싱하고 일부를 숯에 노출시켜 실험했습니다. 그 결과, 산불 후에 번성하는 균류의 유전자가 진화하는 세 가지 주요 방식을 발견했습니다.
첫 번째 방법은 유전자 복제(gene duplication)를 통해 숯을 분해하는 효소를 더 많이 생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빵에 자주 발견되는 균류인 누룩곰팡이속(Aspergillus)은 무성 생식을 통해 유전자를 복제하며, 숯 분해 유전자를 많이 복제할수록 더 많은 효소를 만들어 냅니다. 유전자를 여러 개 만들어 효소를 여러 개 생산하는 것은 가장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생식을 통한 유전자 재조합입니다. 유성 포자를 형성하는 균류인 담자균문(擔子菌門)에 속한 버섯형 균류인 담자균류(Basidiomycota)는 성적 생식을 통해 유전자를 재조합하며, 숯을 대사할 수 있는 능력을 빠르게 진화시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놀라운 발견은, 코니오차에타 호프만니이(Coniochaeta hoffmannii)처럼 세균으로부터 유전자를 수평적으로 이전받는(horizontal gene transfer) 경우입니다. 세균의 경우 유전자를 서로 주고받으면서 분열 중 잃은 유전자를 보충하는 수평적 유전자 전달이 흔하게 일어나지만, 곰팡이와 같이 다른 종류에게 유전자를 전달해 이런 능력을 획득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문 경우입니다.
하지만 화마가 휩쓸고 지난 간 폐허 속에서 번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숯을 분해하는 능력을 획득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불에 탔지만, 아직 숯이 되지 않은 유기물도 많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필요한 것은 불을 견디는 능력입니다. 예를 들어, 일부 균류는 sclerotia라는 열에 강한 구조를 만들어 지하에서 수십 년간 휴면 상태로 있다가 적절한 조건이 되면 다시 자라납니다. 다른 균류는 더 깊은 흙 속에 숨어 있다가 불이 지나간 후 경쟁자가 없어진 영양이 풍부한 땅으로 올라와 정착합니다. 예를 들어, 피로네마(Pyronema)는 숯 분해 유전자가 적지만, 경쟁자가 없는 환경에서 빠르게 주황색 컵 모양의 작은 버섯을 만듭니다. 여기에서도 정답은 하나가 아닌 셈입니다.
사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이들은 남의 불행을 반기는 기회주의자인 것 같지만, 실은 반대입니다. 이렇게 빠르게 숯과 타고 남은 유기물을 분해해주는 균류가 없다면 새로운 식물이 다시 자라나기 힘듭니다. 이들은 자연의 순환을 돕는 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반드시 필요한 존재일 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영감을 줄 수 있습니다.
숯은 석유 유출, 광산 폐기물, 산업 폐기물 등과 비슷한 화학 구조를 가지고 있어, 균류가 숯을 분해하는 방식을 이해하면 오염된 지역을 정화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입니다. 이 단순한 곰팡이 덩어리가 인류가 직면한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연구 결과는 과학 저널 《국립과학아카데미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발표됐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26-01-fungi-charcoal.html
Ehsan Sari et al, Gene duplication, horizontal gene transfer, and trait trade-offs drive evolution of postfire resource acquisition in pyrophilous fungi,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2026). DOI: 10.1073/pnas.251915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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