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턱이 없는 물고기 이야기



 초기 어류의 조상뻘이 되는 척삭 동물은 5억년 이전인 캄브리아기에 이미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당시에는 딱딱한 뼈도 없고 턱도 없는 생물로 척추동물의 특징이라곤 척삭과 아가미 외에는 없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 씩 현생 척추동물의 특징을 갖춰나가게 됩니다. 그 가운데 턱이 없는 가장 원시적인 어류는 지금까지도 살아남았는데 이들을 무악류(無顎類, Agnatha)라고 부릅니다. 


 현생 무악류는 칠성장어와 먹장어류를 포함한 원구류 (Cyclostomes) 일부만 살아남았지만, 고생대 초기에는 매우 다양한 무악류가 번성했습니다. 아무래도 턱이 있는 쪽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유악류가 진화한 후에는 마이너 그룹이 되지만, 지금도 번성하는 무악류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제 책인 포식자에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단순하게 다뤘지만, 여기서는 더 상세한 설명을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1. 먹장어류


 먹장어(Hagfish, Myxini/Hyperotreti)는 사실 꼼장어 요리로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어류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장어류는 아니지만, 아무튼 외형은 장어와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이는 물론 수렴 진화에 의한 것입니다. 먹장어는 다른 무악류와 마찬가지로 턱이 없는 것은 물론 척삭이 평생동안 사라지지 않습니다. 여기에 두개골은 있어도 척추뼈가 없기 때문에 과연 척추동물이 맞는지도 논쟁이 된 생물입니다. 다만 최근의 DNA 분석은 척추동물아문에 속한다는 점을 지지합니다. 그래도 일부 학자는 이들을 척추동물과 다른 부류에 넣기도 합니다. 


(Pacific hagfish at 150 m depth, California, Cordell Bank National Marine Sanctuary. Linda Snook, 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 (NOAA) / Cordell Bank National Marine Sanctuary (CBNMS) )


 이런 복잡한 분류와 상관없이 이들은 그다지 무서운 생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꼼장어라고 하면 공포감보다는 식욕이 돋는 분들이 더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이들은 빨판처럼 생긴 입으로 먹이의 살과 피를 먹기 때문에 사냥하는 모습은 꽤 공포스러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꼼장어를 먹을 때는 인지하지 못하지만 사실 입 구조도 꽤 징그럽습니다. 



(The Hagfish Is the Slimy Sea Creature of Your Nightmares)


 먹장어는 좁은 곳에 숨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데, 사실 발달된 척추동물인 경골 어류에 비해서 경쟁력을 갖춘 생물은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주로 먹는 것도 죽은 물고기나 오징어 같은 연체 동물인 경우가 많습니다. 나름 바다의 시체 청소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획은 주로 좁은 곳에 숨는 특성을 이용해 통발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먹장어의 화석 기록은 적어도 3억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아마도 더 원시적인 무악어류 조상이 있겠지만, 석회화된 골격이 적은 무리라 화석 기록이 충실하지는 않습니다. 비록 원시적인 척삭 동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몇 억년 간 전혀 진화하지 않는 건 아니기 때문에 이들의 진화 과정 역시 앞으로 더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하겠습니다. 




(무악류의 진화. Evolution of jawless fishes. The diagram is based on Michael Benton, 2005)


 먹장어는 몸안에 난소와 정소를 동시에 갖춘 생물로 보통은 하나가 우세해져 암컷이나 수컷이 되지만, 자웅동체도 가능한 여러 가지 원시적 특징을 갖춘 척삭동물입니다. 비록 지금은 경골어류의 그늘 아래 살아가는 마이너 그룹이지만, 나름 독특한 생태학적 지위를 차지한 생물로 앞으로도 오랜 세월 살아남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2. 칠성장어


 현생 칠성장어를 포함한 그룹을 Hyperoartia라고 부르는 데 역시 고생대 초기로 올라가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갑주어의 일종인 결갑류 (Anaspida)의 후손으로 보기도 하지만, 대개는 독립적인 그룹으로 분류합니다. 칠성장어는 이름처럼 7쌍의 아가미가 있으며 원형의 입으로 물고기에 붙어 피를 빨아먹는 기생 동물이라 크기가 먹장어보다 작은 편입니다. 그래도 입은 꽤 징그럽습니다. 


(칠성장어의 원형의 입. Petromyzon marinus (Lamprey) mouth in Sala Maremagnum of Aquarium Finisterrae (House of the Fishes), in Corunna, Galicia, Spain. 출처: wikipedia)

(다른 물고기에 붙어 피를 빨아먹는 칠성장어. 출처: wikipedia)


(Paddlefish Parasites)


 칠성장어 역시 식용으로 사용되긴 하지만 사실 기생 생물로 악명이 높은 생물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역시 나름의 생존 전략이지요. 이 방식으로 칠성장어는 수 억년의 세월을 버텨온 셈입니다. 


 현생 무악류는 이 정도 밖에 없지만, 사실 유악류가 진화하기 전에는 다양한 무악류가 등장해서 다양하게 적응 방산했습니다. 다음에는 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참고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통계 공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사실 저도 통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글을 쓰기가 다소 애매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통계학, 특히 수학적인 의미에서의 통계학을 공부하게 되는 계기는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아마도 비교적 흔하고 난감한 경우는 논문을 써야 하는 경우일 것입니다. 오늘날의 학문적 연구는 집단간 혹은 방법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여줘야 하는데, 그려면 불가피하게 통계적인 방법을 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분야와 주제에 따라서는 아닌 경우도 있겠지만, 상당수 논문에서는 통계학이 들어가게 됩니다.   문제는 데이터를 처리하고 분석하는 방법을 익히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물론 대부분의 학과에서 통계 수업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학부 과정에서는 대부분 논문 제출이 필요없거나 필요하다고 해도 그렇게 높은 수준을 요구하지 않지만, 대학원 이상 과정에서는 SCI/SCIE 급 논문이 필요하게 되어 처음 논문을 작성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논문을 계속해서 쓰게 될 경우 통계 문제는 항상 나를 따라다니면서 괴롭히게 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간혹 통계 공부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는 질문이 들어옵니다. 사실 저는 통계 전문가라고 하기에는 실력은 모자라지만, 대신 앞서서 삽질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입문자를 위한 책을 추천해달라  사실 예습을 위해서 미리 공부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통계는 학과별로 다르지 않더라도 주로 쓰는 분석방법은 분야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을 수 있어 결국은 자신이 주로 하는 부분을 잘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과 커리큘럼에 들어있는 통계 수업을 듣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9000년 전 소녀의 모습을 복원하다.

( The final reconstruction. Credit: Oscar Nilsson )  그리스 아테나 대학과 스웨덴 연구자들이 1993년 발견된 선사 시대 소녀의 모습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복원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유골은 그리스의 테살리아 지역의 테오페트라 동굴 ( Theopetra Cave )에서 발견된 것으로 연대는 9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유골의 주인공은 15-18세 사이의 소녀로 정확한 사인은 알 수 없으나 괴혈병, 빈혈, 관절 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 소녀가 살았던 시기는 유럽 지역에서 수렵 채집인이 초기 농경으로 이전하는 시기였습니다. 다른 시기와 마찬가지로 이 시기의 사람들도 젊은 시절에 다양한 질환에 시달렸을 것이며 평균 수명 역시 매우 짧았을 것입니다. 비록 젊은 나이에 죽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죠.   아무튼 문명의 새벽에 해당하는 시점에 살았기 때문에 이 소녀는 Dawn (그리스어로는  Avgi)라고 이름지어졌다고 합니다. 연구팀은 유골에 대한 상세한 스캔과 3D 프린팅 기술을 적용해서 살아있을 당시의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복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나타난 모습은.... 당시의 거친 환경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긴 턱은 당시를 살았던 사람이 대부분 그랬듯이 질긴 먹이를 오래 씹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강하고 억센 10대 소녀(?)의 모습은 당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야 했다는 점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억세보이는 주인공이라도 당시에는 전염병이나 혹은 기아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기 때문에 결국 평균 수명은 길지 못했겠죠. 외모 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 당시의 거친 시대상을 보여주는 듯 해 흥미롭습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18-01-te...

150년 만에 다시 울린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

  ( The katydid Prophalangopsis obscura has been lost since it was first collected, with new evidence suggesting cold areas of Northern India and Tibet may be the species' habitat. Credit: Charlie Woodrow, licensed under CC BY 4.0 ) ( The Museum's specimen of P. obscura is the only confirmed member of the species in existence. Image . Credit: The Trustees of the Natural History Museum, London )  과학자들이 1869년 처음 보고된 후 지금까지 소식이 끊긴 오래 전 희귀 곤충의 울음 소리를 재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프로팔랑곱시스 옵스큐라 ( Prophalangopsis obscura)는 이상한 이름만큼이나 이상한 곤충으로 매우 희귀한 메뚜기목 곤충입니다. 친척인 여치나 메뚜기와는 오래전 갈라진 독자 그룹으로 매우 큰 날개를 지니고 있으며 인도와 티벳의 고산 지대에 사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일한 표본은 수컷 성체로 2005년에 암컷으로 생각되는 2마리가 추가로 발견되긴 했으나 정확히 같은 종인지는 다소 미지수인 상태입니다. 현재까지 확실한 표본은 수컷 성체 한 마리가 전부인 미스터리 곤충인 셈입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 형태를 볼 때 이들 역시 울음 소리를 통해 짝짓기에서 암컷을 유인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높은 고산 지대에서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낮은 피치의 울음 소리를 냈을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이런 소리는 암컷 만이 아니라 박쥐도 잘 듣는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들은 중생대 쥐라기 부터 존재했던 그룹으로 당시에는 박쥐가 없어 이런 방식이 잘 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