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edit: Fernandolive on Wikimedia Commons)
기생충은 근본적으로 숙주의 영양분을 가로채 생존하기 때문에 숙주에게 나쁜 존재입니다. 숙주에게 도움을 주면 공생 관계로 보기 때문에 단어의 정의상 기생충은 나쁜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기생충이라고 숙주에게 항상 해만 끼치는 것은 아닙니다. 의도하지 않은 일이지만, 과도한 면역 반응을 낮춰 숙주에게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최근에 들어 알러지 환자가 많아진 이유 중 하나는 기생충 감염률이 크게 줄어든 데 이유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감염된 기생충이 숙주의 면역 반응을 억제하기 때문입니다. 자연 환경에서 기생충 감염에 대비해 이미 면역 반응의 세팅을 올려놨는데, 감염이 사라지니 오히려 과도한 면역 반응으로 인해 각종 알러지 질환이 발생합니다.
같은 배경을 지닌 질병으로 염증성 장 질환이 있습니다. 크론병이나 궤양성 대장염 역시 면역 반응이 기전 중 하나로 생각되고 있으며 면역 억제제가 치료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장시간 면역 억제제나 기타 약물을 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인간에 큰 해를 끼치지 않는 기생충을 새로운 대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기생충을 의료적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시도는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거머리의 경우 꽤 이전부터 사용되어 왔습니다. 최근에는 구충 (hookworm)을 염증성 장질환의 치료 목적으로 사용하려는 연구가 진행 중입니다. 뉴질랜드의 말라간 연구소 (Malaghan Institute)의 과학자들은 관해 상태로 증상이나 염증이 없는 궤양성 대장염 (ulcerative colitis) 환자에서 구충이 재발을 방지할 수 있는지 알아보는 소규모 파일럿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연구에 참가한 궤양성 대장염 환자들은 현재 증상이나 염증이 없는 상태로 각각 10명씩 구충과 위약을 복용했습니다. 그리고 1년 간 증상과 질병의 재발 정도를 측정했습니다. 1년이 지난 후 위약군의 50%, 실험군의 40%가 관해 상태로 유지했으며 재발까지 걸린 평균 기간은 231일과 259일로 둘 다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는 없었습니다. 다만 부작용이나 자각 증상면에서 큰 차이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규모 임상을 위한 사전 연구이기 때문에 사실 이 연구로 구충이 궤양성 대장염 재발을 막고 약물 치료 없이 장기간 관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지는 판단하기 이릅니다. 그보다는 기생충 투여시 큰 부작용이 없어서 대규모 임상 시험을 진행하기에 적합하다는 점을 검증하기 위한 것입니다.
만약 대규모 임상 시험을 통해 구충이 숙주에 큰 피해 없이 병의 재발을 막을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 더 이상 기생충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사실상 공생 관계이므로 공생충으로 불러야 맞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참고
https://medicalxpress.com/news/2023-06-infect-dose-hookworms-patients-inflammatory.html
https://academic.oup.com/ibdjournal/advance-article/doi/10.1093/ibd/izad110/7198522?login=fa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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