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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만 먹고도 살수 있는 흡혈 박쥐의 비결 - 유전자


 

 (A Common Vampire Bat, Desmodus rotundus, feeding on an animal. Showcase of taxidermied animals, Natural History Museum, Vienna.)



 포유류 가운데서 오직 피만 먹고 살아가는 동물은 흡혈 박쥐 3종 뿐입니다. 이들은 흡별박쥐아과에 속하는데, 각각 서로 속이 다릅니다. 사실 모기, 파리, 거머리, 등 피를 빨아먹고 살아가는 동물이 많기 때문에 간과하는 점이지만, 매우 복잡한 포유류가 피라는 한정된 에너지원을 살아가는 경우는 흡별 박쥐가 유일합니다. 



 큰 동물의 피는 작은 기생 동물이 한 번에 막대한 양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사실 에너지 밀도가 생각보다 낮을 뿐 아니라 매우 편중된 영양소로 이에 특화된 여러 가지 변화가 없다면 보통 동물은 생존하기 어려운 먹입니다. 피를 빨아먹는 흡혈 동물이 대부분 작은 절지동물인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독일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모리츠 블루머 (Moritz Blumer, Max Planck Institute of Molecular Cell Biology and Genetics)와 그 동료들은 중남미에 서식하는 흡혈 박쥐 (common vampire bat (Desmodus rotundus))의 유전자를 27종의 다른 박쥐들과 비교했습니다. 



 그 결과 흡혈 박쥐가 오직 피만 먹는 식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여러 개의 유전자를 잃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새롭게 발견된 유전자 소실은 인슐린 분비와 관련된 유전자 (FFAR1, SLC30A8), 글리코겐 저장을 제한하는 유전자 (PPP1R3E), 위와 관련된 유전자 (CTSE), 한정된 영양소에 적응하는 데 관련된 유전자 (ERN2, CTRL) 등입니다. 



 특히 흥미로운 유전자 소실은 REP15 유전자로 철을 배설하는 데 관련된 유전자입니다. 철 성분이 매우 풍부한 피를 먹으면서 살기 때문에 철을 과도하게 저장할 경우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CYP39A1 유전자는 뛰어난 인지 기능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적당한 숙주에 몰래 다가가 피를 빨아먹는데 필요한 기능입니다. 



 흡혈 박쥐는 외형이나 피를 빨아먹는다는 사실 때문에 솔직히 징그러운 동물이지만, 그래도 놀라운 특징을 지닌 동물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이에 대한 많은 사실들이 밝혀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참고 



https://phys.org/news/2022-03-scientists-figure-vampire-blood.html


Moritz Blumer et al, Gene losses in the common vampire bat illuminate molecular adaptations to blood feeding, Science Advances (2022). DOI: 10.1126/sciadv.abm6494


M. Lisandra Zepeda Mendoza et al, Hologenomic adaptations underlying the evolution of sanguivory in the common vampire bat, Nature Ecology & Evolution (2018). DOI: 10.1038/s41559-018-04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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