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내가 가진 DNA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여기서 '보통'이라는 것은 그외에도 유전자를 전달받는 경로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앞서 포스트에서도 설명했듯이 DNA가 서로 다른 개체 사이를 이동하는 수평적 유전자 이동(Horizontal gene transfer, HGT)이 가능합니다. 상세한 내용은 이전 포스트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평적 유전자 이동에서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들입니다. 특히 바이러스는 인체 세포 안으로 침투한 후 핵 DNA에 자신의 DNA를 슬쩍 끼워넣는 방식으로 무임승차를 합니다. 이렇게 해서 바이러스 RNA를 대량으로 생산하게 만드는 것이죠.
그런데 만약 이런 DNA 삽입이 체세포가 아니라 생식세포에서 일어나게 되면 바이러스의 DNA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게 됩니다. 비록 생식 세포는 잘 보호되기 때문에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실제로 인간을 비롯한 여러 생물체에서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났던 것 같습니다.
최근 터프트 의대와 미시간 의대의 연구자들은 2,500명의 자원자에서 모은 DNA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고대에 인류에 침입해 흔적을 남긴 레트로바이러스의 증거를 발견했습니다. HERVs (human endogenous retroviruses)라고 불리는 이 바이러스들은 일부 유전자만 남긴 경우도 있었지만, 놀랍게도 수천세대에 걸쳐 완전한 바이러스의 유전정보를 전달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완전한 바이러스 유전정보는 프로바이러스(provirus)라고 불리는데, 쉽게 말해 바이러스 유전자가 인간 유전자에 삽입되어 무임승차를 하는 것이죠. 이 유전정보는 사실 현재는 아무 기능이 없습니다. 유전자가 발현되고 RNA를 합성하게 만들어 새로운 바이러스를 생성하지도 않는 고대의 유물인 것이죠.
이번 연구에서는 X 염색체의 Xq21 위치에서 HERV-K이라는 새로운 프로바이러스를 찾아내는데 성공했습니다. 그외에 여러 조각의 바이러스 DNA가 발견되었는데, 많은 바이러스 DNA가 시간이 지나면서 돌연변이가 생기고 파편화되어 현재 남아있는 완전한 프로바이러스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과연 이런 외래 DNA가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아마도 이런 유전자들이 암의 발생이나 혹은 다른 유전 질환에 영향을 미칠수도 있습니다. 더 길게는 어쩌면 진화 과정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밝혀내야할 연구 과제입니다.
참고
Julia Halo Wildschutte et al. Discovery of unfixed endogenous retrovirus insertions in diverse human population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2016). DOI: 10.1073/pnas.160233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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