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Volkswagen VW) 이 지난 7월 4일 포르쉐의 잔여 지분 50.1% 를 인수해 명실공히 포르쉐를 인수 합병했다고 공개했습니다. 이미 2009 년에 지분의 49.9% 를 39 억 유로에 인수한 이후 나머지 지분을 44.6 억 유로에 인수한 것입니다.
폭스바겐 그룹은 이제 모회사인 폭스바겐은 물론 아우디, 벤틀리, 부가티, 두카티, 람보르기니, SEAT, 포르쉐, Škoda , 주지아로 (Giugiaro) 를 소유하게 되어 유럽 전역에 걸친 거대 자동차 그룹으로 거듭났습니다.
폭스바겐의 오랜 합병 역사에서 가장 인상적인 합병 사건은 바로 이번 포르쉐 인수인데 그 이유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죠. 폭스바겐의 시초는 1937 년 나치 시절 국민차 계획이었습니다. 당시 990 제국 마르크 가격의 누구나 살 수 있는 국민차를 보급하려는 나치의 계획에 의해 독일 노동 전선 ( Deutsche Arbeitsfront ) 산하에 폭스바겐이 세워졌는데, 당시 설계를 맡았던 사람이 바로 독일의 천재 자동차 공학자 페르난디트 포르쉐 박사였죠.
페르난디트 포르쉐 ( Ferdinand Porsche ) 는 독일계이지만 정확히 말하면 독일어를 사용하는 체코 공화국의 일부였던 마페스도르프 (Maffersdorf) 에서 태어났고 실제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히틀러와 약간 다르지만 아무튼 오스트리아 - 독일계 라고 할 수 있는 경우죠. 아무튼 포르쉐 박사는 Austro - Daimler 사의 수석 개발자로 근무하면서 엔지니어링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이후 다임러사가 벤츠에 합병되면서 다임러 벤츠에서 메르세데츠 벤츠의 SS/SSK 를 설계했습니다.
(페르난디트 포르쉐 박사 CCL 에 따라 복사 허용 저자 표시 저자 Deutsches Bundesarchiv (German Federal Archive), Bild 183-2005-1017-525 )
이후 폭스바겐의 국민차 계획에 참여한 포르쉐 박사는 폭스바겐 비틀이라는 전설적인 자동차를 설계해서 그 명성을 날리게 됩니다. 하지만 1931 년 이미 포르쉐 박사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자동차 회사를 설립했는데 물론 포르쉐 (Porsche) 입니다. 어찌 보면 포르쉐와 폭스 바겐의 관계는 알텍 렌싱과 JBL (둘다 천재 사운드 엔지니어 James B. Lansing 과 관련된 회사) 와도 비슷했습니다.
이후 폭스바겐이나 포르쉐 모두 2차 대전 때는 무기 생산에 참여했으며 포르쉐 박사 역시 티거 I/II 를 비롯 엘러판트 (Elefant) 그리고 초중전차 마우스 (Maus) 등의 개발은 물론 심지어 전투기 개발에도 참여했죠. 그리고 전쟁 이후에는 이들은 모두 자동차 산업으로 돌아옵니다.
페르난디트 포르쉐 박사 슬하에는 1남 1녀가 있었는데 장녀 루이제 (Louise) 는 안톤 피에 (Anton Piech ) 와 결혼해서 그 중 현재 폭스바겐 그룹 회장이 된 페르난디트 피에 ( Ferdinand Karl Piech ) 를 낳았습니다. 사실 피에 회장은 처음에 포르쉐에서 근무했지만 이후 아우디로 옮긴 후 아우디를 벤츠, BMW 와 견줄 새로운 메이커로 키운 공로로 폭스바겐 그룹의 회장 자리 까지 올랐습니다.
포르쉐와 폭스바겐은 본래 꽤 끈끈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는데 2005 년 포르쉐가 폭스바겐 인수를 시도하면서 양사의 관계가 틀어졌으나 결국 이번 합병을 통해 완전히 하나로 흡수되게 되었습니다. 물론 포르쉐라는 상표는 워낙 가치가 높기 때문에 없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두회사가 이전부터 신차 개발에서 꽤 끈끈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왔을 뿐 아니라 점차 자동차 산업에서 규모의 경제가 중요해짐에 따라 합병은 시간 문제였다는 시각이 많습니다. 포르쉐는 폭스바겐의 생산력과 자본력이, 그리고 폭스바겐은 포르쉐의 기술력이 상호간 필요했으므로 이번 합병건은 독일 자동차 산업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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