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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대의 바다 괴물

 

 고생물학자들이 고생대의 거대 절지동물의 화석을 발견했습니다. 4억 8000만년전 지구에 살았던 이 동물의 이름은 Aegirocassis benmoulae라고 명명되었는데, 놀랍게도 아노말로카리스과(anomalocaridid)에 속하는 동물입니다. 2m에 달하는 거대 절지동물인 A. benmoulae의 더 놀라운 사실은 여과 섭식자(filter-feeding)라는 사실입니다. 여과 섭식자는 수염고래나 고래상어처럼 물속에 있는 플랑크톤을 걸러서 먹는 동물을 의미합니다. 즉, 역사상 가장 오래된 대형 여과 섭식자의 화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A. benmoulae의 복원도. Reconstruction of the giant filter-feeding anomalocaridid Aegirocassis benmoulae from the Early Ordovician (ca 480 million years old) of Morocco feeding on a plankton cloud. Aegirocassis reached a length in excess of 2 m, making it one of the biggest arthropods to have ever lived, and foreshadows the appearance much later of giant filter-feeding sharks and whales. Credit: Marianne Collins, ArtofFact )
 

(동영상) 


 이 화석은 초기 오르도비스기( Early Ordovician)의 화석으로 지금의 모로코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주로 발견된 아노말로카리스의 화석들이 캄브라이기에 속한 반면 이 화석은 좀 더 나중에 발견된 것입니다. 아노말로카리스는 절지동물의 일종으로 생각되는데, 당시에는 가장 거대한 상위 포식자입니다. 기묘한 새우라는 뜻의 이 포식자는 대부분 원형으로 생긴 잎으로 당시의 다른 불쌍한 동물들을 잡아먹는 형태로 복원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A. benmoulae 는 그보다 더 평화적인 포식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바로 여과 섭식이죠. 이 방식의 장점은 분명합니다. 먹이 사슬에서 가장 아래에 속할 수록 생물량이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즉 풍부한 먹이라는 것이죠. 이 풍부한 먹이를 직접 걸러서 먹는다면 정말 엄청나게 먹어댈 수 있습니다.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큰 고래들이 여과 섭식자라는 사실은 당연한 결과죠. 

 그런데 여과 섭식자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조건은 충분한 밀도의 플랑크톤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이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바닷물만 들이키다가 굶어죽고 말 것입니다. 이 거대 여과 섭식자의 발견은 그래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즉, 당시 바다가 충분한 수의 플랑크톤으로 넘치는 생명력 있는 환경이라는 반증이죠.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여과 섭식자가 등장할 수 있을 만큼 적응 방산이 잘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다양한 상위 포식자가 진화할 수 있는 풍요로운 환경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미 오르도비스기에 여과 섭식자가 등장할 수 있었다는 것은 거대 포식자의 개체수가 충분히 많아서 여러 먹이를 먹도로 진화했다는 이야기입니다. 



(Dorsal view of a complete specimen of Aegirocassis benmoulae, a giant filter-feeding anomalocaridid from the Early Ordovician (ca 480 million years old) of Morocco, preserved in three dimensions in a concretion. Note the presence of two sets of lateral flaps, providing critical new insights into the origins of modern arthropod limbs. Credit: Peter Van Roy, Yale University


(완벽하게 보존된 여과 섭식 부속지. Complete filter-feeding appendage of Aegirocassis benmoulae, a giant filter-feeding anomalocaridid from the Early Ordovician (ca 480 million years old) of Morocco. Note the extreme length of the ventral spines of the appendage. Credit: Peter Van Roy, Yale University)

 이와 같은 상세한 복원은 완벽하게 보존된 입부분의 여과 섭식 부속지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3차원적인 구조가 남아있는 부속지를 확인한 예일 대학 및 옥스퍼드 대학 등의 국제 과학자팀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 거대 여과 섭식자는 고생대 바다에 거대한 신사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역사상 가장 큰 절지 동물 가운데 하나였을 것입니다. 현생 절지 동물들은 곤충이나 거미류처럼 작은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거대 여과 섭식자로 남아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화석은 4억 8000만년전 지구의 생태계를 주름잡던 절지 동물의 역사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참고 

 Anomalocaridid trunk limb homology revealed by a giant filter-feeder with paired flaps, Nature, (2015) DOI: 10.1038/nature14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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